“산에도, 들에도, 내 마음에도
봄이 오고 있어요.”
세상 구석구석에는
‘고백’하고 싶은 심장들이 가득하니까
계동? 계동이 어디더라. 사실 우리에게 계동은 아직 그렇게 익숙한 동네 이름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요즘 압구정동이나 홍대처럼 사람이 붐비는 곳을 피해 골목으로 더 골목으로 찾아든다. 삼청동, 부암동,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 서울 구석구석의 골목을 따라 소소한 상권이 발달하고, 사람들이 모인다. 그중에서도 아직은 그리 유명세를 타지 않은 골목길, 종로구 계동에서 묵묵히 동네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새롭게 둥지를 튼 ‘카페무이’도 있다.
이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목하열애 중인 부부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이 책에서는 처음 가게를 시작할 장소를 물색하고,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공사를 하고, 드디어 가게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한 식탁을 준비하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나가는 과정을 겨울, 봄, 여름, 가을 그리고 다시 겨울의 순으로 적어내려가고 있다.
가게를 열긴 열었는데, 사실 우리는 무얼 해야 할지 잘 몰랐다. 나는 사진을 찍고, 아내는 맛있게 요리를 하고 스타일링을 하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카페를 열고 무엇을 팔지, 어떻게 팔지, 하루 매출은 얼마가 되어야 할지, 손익분기점은 어떻게 맞출지, 뭐 이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우리 두 사람의 뇌는 너무 낭만적이었다.
_ 본문 중에서 (30쪽)
오로지 이 가게의 존재 이유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하루’를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은 주체할 수 없는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기 위한 젊은이들이기도 했고, 반백이 되도록 함께 살아준 고마운 아내를 위한 중년의 사내이기도 했다.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은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목적은 단 하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였다.
“남자친구 생일이어서요. 남자친구는 밥을 먹어야 좋아하니까, 한식이었으면 좋겠어요. 한식도 되나요? 생일이니까 미역국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게장을 좋아하거든요.”
나는 누군가 찾아와서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들려주는 이 시간이 좋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이 사람이 그를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그에 대해 얼마나 꼼꼼히 배려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인들은 참 예쁘구나 싶기도 하고, 이 연인들은 좀 위태위태한걸 하는 조짐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개 이렇게 우리를 찾아와 누군가를 위한 식탁을 차려주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한 관계들이다. 혹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온다.
_ 본문 중에서 (124-125쪽)
뿐만 아니라, 계동 골목길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도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가게 앞에서 반짝 떡볶이 판을 열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듯 모여드는 아이들에서부터, 강아지 한 마리와 날마다 산책을 다니시는 쭈쭈할머니, 골목 곳곳 저마다의 공방에서 작업을 하는 플로리스트, 제과제빵 셰프, 빈티지숍 주인, 액세서리 디자이너, 그리고 사십 년 된 목욕탕의 로맨티스트 아저씨 등…… 이렇게 따뜻함이 넘치는 ‘계동 골목길’이라는 영화에서 조연처럼 묵묵히 제 할 일을 해내는 숨은 장인들까지.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 책은, 동시대를 통과하고 있는 우리 이웃에 대한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카페무이 주인장만의
특별한 레시피와 공간 스타일링 팁
수많은 사연과 이야기들 사이로, 몇 가지 요리 레시피recipe를 친절하게 적어 독자들이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능도 더러 하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약 30개의 레시피들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요리들이 아니다. 프러포즈 식당에서 소개하는 음식이라고 해서, 언젠가 작정하고 어렵게 준비해야 하는 특별한 요리가 아니라 그냥 냉장고에 남은 재료들로 뚝딱뚝딱 만들어내기 쉬운 것들이 대다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제 가족을 위해 차린 것과 같은 정성스러움에 한 끼 식사로 손색없는 든든함과 영양은 물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먹음직스럽게 그릇에 담아낸 스타일링까지 꼼꼼하게 적어두었다.
적은 돈으로 효과적으로 공간을 꾸미는 스타일링 팁styling tip도 들어 있다. 꼭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집에서 밋밋한 식탁을 한결 로맨틱하게 꾸미고 즐거운 식사가 가능해진다. 고속터미널이나 동대문종합상가 등 조금만 발품을 팔아도 저렴한 가격에 충분히 훌륭한 아이템들을 구할 수 있고, 또 안주인의 꼼꼼하고 세련되면서도 야무진 안목과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를 간단하게나마 전달 받게 된다.
★ 돌에 스탬프를 찍는다. 그냥 동글동글하게 생긴 돌인데 스탬프를 찍으니 멋진 소품이 된다. 냅킨을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눌러놓는 용도로 쓰기도 한다.
★ 솔방울은 겨울에 만만하게 쓰기 좋은 소품이다. 모양이 예쁜 향수병, 화장품용기, 음료병에 눈꽃 모양이나 솔방울을 달고 가느다란 초를 꽂아 모으면 예쁘고 따뜻한 촛대가 되니까. 와인병도 역시 눈꽃 모양이나 솔방울 등을 달아 손쉽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_ 본문 중에서 (92, 254쪽)
사실, 이제와 고백하건대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 글쓴이는 ‘카페무이’의 주인이 아니다. 이 부부를 곁에서 오래도록 보아온 한 지인작가 김주현이 주인장사장 최홍준의 시점을 빌려와 써내려가고 있다. 아마 살뜰히도 지켜본 모양이다. 조금도 어색하거나 모자란 부분이 없다.
계동의 이 작은 가게가 사라져버릴까 두려워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 작가와 주인장 사이에 ‘너와 나’의 구분은 불필요해 보인다. 글쓴이가 곧 주인장이며, 주인장이 곧 요리하는 아내이며, 아내가 곧 글쓴이이다. 이 세 명은 이미 혼연일체가 되어, 서로의 이야기를 또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고, 사진 찍고, 요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