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을 타고 가는 도둑고양이>는 “빨강내복처럼 몸에 착 달라붙어 있는 관습적인 상상력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다”던 김륭 시인이 동시와 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며 거침없이 실험정신을 보여 준 첫 번째 동시집이었다. 다소 낯선 시도로 동시의 경계를 확장한 작품들은 기존 동시 문단에 경쾌한 반란이 되어 동시인들의 호응과 주목의 대상이 됐고, 아무도 가지 않았던 미지의 영역을 탐색했던 패기 넘치는 그의 동시가 장차 어떤 열매를 맺어 갈지 주시하게 했다.
물통을 매단 자전거가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달리듯이 마구 내달리는 상상력
지독하게 새로웠던 김륭 시인의 동시는, 다양한 시도와 색깔의 동시를 기다리던 동시 문단과 독자들에게 반가웠지만, 새로웠기에 울퉁불퉁했고, 울퉁불퉁한 만큼 난해했다. 꼬박 3년의 숙성시간을 거친 후 출간되는 두 번째 동시집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 역시 예쁘기만 한 동시들이 아니다. 그의 상상력은 여전히 자유분방하고, 시적 대상에 대한 집요한 응시 끝에서 출발하는 대상들 사이의 이미지 연상 놀이는 독자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그의 동시를 읽다 보면 어느새 컴퓨터 게임보다 더한 집중력과 치열함과 전투력을 아이템 삼아 낯설고 흥미로운 세계로 짜릿하게 내달리게 된다.
아파트 단지로 쳐들어온 트럭에서 군인들이 통통 뛰어내렸어요. 꾸벅꾸벅 졸고 있던 경비 아저씨 허겁지겁 뒤를 쫓지만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용감한 군인들의 포로가 되었어요. 번쩍,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어요. 화단에 핀 해바라기와 나팔꽃도 파르르 겁에 질렸어요. 눈 깜빡할 새 아파트를 점령한 군인들이 807동 504호 우리 집까지 쳐들어왔어요. 투항하라, 투항하라, 너희들은 독 안에 든 쥐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던 엄마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어요. 피─웅 피─웅 하늘에서 불화살 쏘아 대던 태양마저 백기를 들었어요. 수박이 왔어요! 달고 시원한 수박이 왔어요!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 생쥐처럼 숨어 있던 여름이 몽땅, 잡혀가요.
- <수박> 전문
그동안 시인이 자기 개성을 흔들림 없이 묵묵하게 밀어붙이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동시이다.
하지만 어디로 뻗어나갈지 짐작조차 어려웠던 상상력은 “물통을 매단 자전거가 자갈길을 달리듯 마구 내달리는” 경쾌한 공감을 얻게 되었으며, 그의 시어들은 더욱 풍성해졌으며, 무엇보다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돼.
혼날 줄 알았는데 뜻밖의 엄마 말 한마디에
날아갈 뻔했다
기분이 너무 좋아 날아가는 줄 알았다
너무너무 좋아 진짜로 날아갔다,
날아왔다
팔랑팔랑 나는, 나비
한 번씩 날아다니지 않으면
길가의 꽃들이 갸웃갸웃
이상하게 쳐다본다
- <나는, 나비> 전문
“사람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는 동시를 쓰고 싶다.”
- 시인의 눈에 아버지의 가슴을 더한, 위안과 공감의 동시
<삐뽀삐뽀 눈물이 달려온다>는 김륭 시인이 헌사에서 밝혔듯이 딸에게 동생 대신 주는 동시집이다. 하나뿐인 딸에게 형제가 되어 주고 그 삶에서 경광등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다. 눈물길이 될지 모를 인생길, 정면에서 달려오는 눈물보다 한발 앞서 삐뽀삐뽀 소리 내어 경고해 주기를 바라는. 그래서인지 낯선 실험정신이 가득했던 김륭 시인의 동시에 부모의 마음이 담기게 되었다. 우리는 이 두 번째 동시집에서 멀리 김해시 장유면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집과 놀이터와 학교, 엄마 아빠와 동생과 친구와 이성친구를 세세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공부하라며 잔소리하는 엄마한테서 도망치고 싶은, 좋아하는 이성친구를 떠올리며 수줍어하는, 고단한 부모를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아이의 속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1.
아빠가 가장 좋아하는 게장을
어른들은 밥도둑이래요
통통하게 살 오른 꽃게 등딱지가
쪽쪽 손가락 빨아 가며
밥 맛있게 비벼 먹던 우리 아빠
얼마나 맛있는지 너도 한번 먹어 봐라
다리 하나 건네지만
절레절레 나는 게걸음을 쳐요
가엾은 꽃게, 예쁜 이름을 가졌지만
끙끙 밥그릇 업고 다니다
밥도둑이 된 꽃게
2.
아빠가 회사를 그만둔 뒤
식당일 나가는 엄마가
저만치 와요
둥근 달을 등에 업고
꽃게처럼 와요
살금살금 나는 지붕 위로 올라가
두 팔을 쭉 뻗어 올려요
꽃게 등딱지 같은 달을 환하게
받아 들어요
엄마가 웃어요
꽃게가 웃어요
- <꽃게> 전문
“고백건대 아이들처럼 맑은 눈과 깨끗한 마음을 가졌다면 나는 감히 동시를 쓰지 못했을 것입니다. … 내게서 도망친 동심을 잡아 와 함께 살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던 김륭 시인은 지금 “아이들에게 뭔가를 배우는 일보다 유쾌한 일은 없다. 아이들을 통해 철이 든다는 것은 또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일인가.”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흩어지지 않게 동심을 그러모으고 싶었던 동시인은 이제 아이들과 더불어 유쾌해지고 싶은, 아이들을 향해 너희는 엄마 배 속에서부터 꽃을 피울 줄 아는 존재들이었다며 보듬고, 위로하고, 편들어 주는 아버지 시인으로 진화했다. 김륭 시인은 아이들과 삶의 내면을 더욱 깊고 뜨겁게 꿰뚫으며, 더욱 기발한 상상력과 풍부한 언어로 경쾌하게 노래하며 어린 독자들을 향해, 헬리콥터처럼 달려간다.
“부─다─다─다─다─”
오늘도 헬리콥터가 날아올라요.
부─다─다─다─다─
언제 어디서나 헬리콥터는
빙빙
밥보다 치킨이 먹고 싶은 내 머리 위를 맴돌아요. 꾸벅꾸벅 졸다 책상과 박치기하는 이마 위로 부─다─다─다─다─ 내려앉아요.
아무도 못 말리는 헬리콥터
아프지도 않아요. 천하무적 헬리콥터는
늙지도 않아요.
게임방에 가고 싶어 잔머리 굴리는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다 부─다─다─다─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 꽁꽁 폭탄을 투하하는 헬리콥터, 대형 트럭을 몰고 다니는 아빠마저 꼼짝 못하는 천하무적 헬리콥터가 떴어요. 부─다─다─다─다─
엄마가 떴다!
- <헬리콥터>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