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가는 길 - 코끼리 아빠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을까?
코끼리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간다. 머리에는 파란 물방울이 담긴 물동이를 이고 있다. 물동이에 가득한 물은 모두 100개의 물방울이다. 양쪽 귀 옆으로 흘러내린 겨우 세 가닥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눈팔지 않고 달려가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바쁜데, 아저씨의 길은 갈수록 험해진다.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에 금방 지치고, 귀신이 숨어 있을 것 같은 캄캄한 동굴을 지나고,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고도 당하면서 물은 한 방울 두 방울 야속하게도 물동이 밖으로 튀어나온다. 벌떼에 쫓기고, 무서운 뱀을 만나기도 하고, 게다가 소중한 물을 도둑맞기까지 한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런 고난들은 바로 그 앞 장면에 예고되어 있다. 그래도 안타까운 사정의 개미떼를 만나면 소중한 물을 나눠줄 줄 아는 코끼리 아저씨다. 집은 점점 가까워지는데 아저씨 물동이의 물은 점점 줄어든다. 그래도 아저씨는 자전거를 멈추지 않는다. 두려움의 무게 때문에 자꾸만 아래로 처지는 코를 힘주어 바짝 세우고, 달리고 또 달린다. 집에서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갈수록 바닥이 드러나는 물동이를 이고 가는 요령 없는 아저씨일망정 네 아이의 아빠인 것이다.
그래도 아빠는 달린다 - 코끼리 아저씨의 이름은 뚜띠, 즉 ‘모든’ 아빠이다
한눈에 보아도 이 코끼리 아저씨는 겁 많고 어리숙하고 눈치 없고 굼뜨고 둔하기까지 하다. 매 순간마다 감정과 속마음이 숨김없이 드러나는 그의 풍성한 표정만으로도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어쨌든 네 아이의 아빠가 되기에는 심각하게 부실투성이 남자다. 이런 코끼리 아저씨를 계속 달리게 하는 것은, 그를 아빠라는 존재로 만드는 아이들이다. 한 조각의 의심이나 불안 없이 온전한 믿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그를 향해 “아빠”라고 부르며 반길 때, 그는 마침내 100개의 물방울이 가득한 물동이를 내밀 수 있었다. 아마도 아이들은 코끼리 아빠가 흘린 눈물 한 방울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그 눈물이, 한줄기의 비, 오랜 가뭄을 끝내는 단비를 불러왔다는 것도 모를 것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도 가뭄 속에 물을 구하러 떠났던 ‘아빠의 길’을 알지 못할 것이다. 이 코끼리 아저씨의 이름은 뚜띠(Tutti), 즉 ‘모든’ 아빠들이다. 착하지만 어리숙한 코끼리 아저씨에게 일어난 일을 자연스럽고 경쾌하게 그린 이 그림책은 우리에게 아빠라고 불리는 남자들이 아빠라고 불리지 않는 곳에서 어떤 모습일지 떠올려 보게 하고, 마침내 고개 숙여 감사하게 한다.
조각조각 픽셀들이 쌓여 완성된 아름다운 그림과 이야기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은 그동안 출간된 여는 그림책에서 보기 힘든 픽셀아트 그림책이다. 주인공인 코끼리와 코끼리가 타고 가는 자전거를 제외하고는 모든 사물들은 픽셀로 이루어져 있다. 사물을 구성하는 픽셀의 모양은 다양하다. 작은 점, 짧은 선, 속이 빈 네모, 심지어 놀란 표정의 얼굴에서 해골까지.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픽셀들이 쌓여 나무를 만들고, 수풀을 만들고, 개미와 벌을 만들고, 키 큰 기린을 만들고, 시원한 빗줄기를 만들었다. 다양한 농도와 크기와 모양의 픽셀들이 각 장면에서 연출되는 상황과 분위기에 어울리게 선택되어 사용되었다. 1밀리미터 크기의 작고 네모난 점, 픽셀 100개 이상을 쌓아야만 하나의 작은 나무 그림이 완성된다. 수많은 조각들이 모이고 쌓여서 사물 하나하나가 만들어지고 하나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진다. 무수한 픽셀들이 모이고 모여, 집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에게 반드시 물을 먹이겠다는 코끼리 아빠의 간절한 마음을, 집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낸다.
픽셀들 사이사이에 숨은 그림,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
나무에 매달린 코끼리, 풀을 뜯는 사막여우, 거꾸로 매달린 동굴의 박쥐…… 코끼리 아저씨가 달리는 길에는 많은 동물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옆을 돌아보지 못하는 융통성 없는 코끼리 아저씨만 알아채지 못할 뿐, 독자들 눈에는 금방 띄는 그림 속 그림들은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작가가 책을 보는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숨은그림을 찾는 재미와 점점 줄어드는 물방울 세어 보는 재미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