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새로운 문법과 재미를 지닌 신인의 동화가 등장하다
역동적으로 서사를 펼치는 패기와 톡톡 튀는 재치를 두루 겸비한 신인 동화작가가 오랜만에 등장했다.『도깨비 느티 서울 입성기』를 쓴 천효정 작가는 현직 초등학교 교사이자 꽤 오랫동안 어린이문학을 공부하며 문학적 훈련을 해 온 준비된 신인이다. ‘도깨비’라는 익숙한 소재를 등장시키면서도, 작품의 배경과 세계관을 현대로 가져와 기존의 옛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이야기를 풀고 있다. 비장한가 하면 발랄 유쾌하고, 소름이 오소소 돋는가 하면 뭉클한 감동이 이어지는 이 ‘의외성’ 있는 작품은 마치 생활동화와 판타지동화, 옛이야기 속에서 재미만을 쏙쏙 뽑아 혼합한 듯하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을 정령이나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빗대어 표현했던 것처럼, 이 작품 역시 도깨비라는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판타지적이고 관념적인 세계와 지극히 물질적인 우리의 일상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어린이문학 평론가 김지은은 ‘마음의 긴장과 몸의 움직임을 두루 담은 활력 넘치는 동화가 등장했다.’라고 했는가 하면, 동화작가 송언은 ‘누구라도 아차 하는 사이 촘촘하게 짜인 이야기 그물에 걸려들게 될 터이고, 결국엔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처럼 파닥거리며 헤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도깨비 느티 서울 입성기』의 출간을 반겼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난 도깨비, 김도령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외모 꾸미기에 관심이 많다는 것과 살짝 예민한 편이라는 것을 빼곤 특이한 점 없는 초등학생 김도령. 도령이는 어는 날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죽음으로 시골집에 내려가게 되고, 그때부터 하나둘 심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처음 본 할아버지의 작업실이 꿈속에서 본 곳이었는가 하면,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자그마한 활을 할아버지가 유일한 유품으로 남긴 것이다. 게다가 도령이에게 남긴 짧은 편지는 해석할 수 없는 수수께끼 같기만 하다. 도령이는 신발을 물고 달아난 개를 쫓다 우연히 큰 나무의 가지를 하나 꺾는다. 그런데 집안의 어른은 집안의 특별한 나무를 건드렸다며 도령이의 아버지를 찾아와 몹시 언짢아한다. 그것 때문일까, 서울로 돌아온 도령이는 날마다 나무 괴물이 나오는 꿈에 시달리는데…….
도령이는 이 나무 괴물이, 시골에서 꺾은 나무에 깃들어 사는 오백 살이 넘은 도깨비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도깨비들처럼 초자연적인 존재들과 소통할 수 있는 ‘보는 자’들이 있으며, 자신은 보는 자 중에서도 도깨비를 몸에 씌울 수 있는 ‘도깨비 도령’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란다. 도령이는 밤마다 자신을 괴롭히는 도깨비를 물리치려 기지를 발휘해 도깨비와 씨름을 해 이기고, 주인과 종 관계를 맺은 뒤 도깨비에게 ‘느티’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그런데 알고 보니 느티와 도령이네 집안은 오랫동안 함께해 온 관계였다. 집안의 첫 번째 ‘도깨비 도령’이었던 도령이의 19대조 할아버지는 느티와 함께 다니며 각지의 악귀들을 물리치고 다녔는데, 그중 도령이 가문의 실수로 가족을 잃은 한 여자의
반짝반짝거리는 사랑스러운 캐릭터들
『도깨비 느티 서울 입성기』는 캐릭터의 매력이 돋보이는 동화다. 직설적이고 까칠하지만 위험에 빠진 가족과 친구를 위해서라면 용기 있게 나서는 도령이와, 오백 살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귀여운 외모와 엉뚱하고 소란스러운 행동을 일삼는 느티라는 도깨비는 시종일관 활발하게 움직이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주변 인물들도 재미나다. 강압적인 부모의 전형적인 상이라고 할 만큼 독불장군이지만 자기 나름의 상처를 안고 있는 도령이 아빠와, 도령이네 반 1등으로 꽉 막힌 공부벌레 같았지만 사실은 ‘보는 자’로서 돌 도깨비를 데리고 다니는 이진이라는 존재는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시험 소동을 비롯한 여러 사건 등을 겪으며 도령이와 느티는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며 서로를 배워간다. 도령이가 필요로 할 때면 늘 곁에 있어 준, 오백 년 동안 김씨 가문을 지켜주겠다는 약속을 지켜 온 느티는 마땅히 마음 나눌 친구가 없던 도령이에게 처음으로 사귄 소중한 친구가 된다.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자한녀와 느티, 도령이가 정면으로 맞붙은 마지막 싸움 장면이다. 도령이는 할아버지의 활을 사용해 자한녀를 완전히 제거할 방법을 깨닫는다. 그러나 도령이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다른 선택을 하는데…….
도령이는 자한녀를 없애는 대신, 자한녀의 기억과 감정을 공유하는 법을 택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과거에 있었던 일을 생생히 지켜보며 자한녀의 고통을 지켜보고, 자한녀를 가둔 것은 스스로가 만든 한이라는 것을 알아채고는 자한녀를 그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 그녀의 가족과 편안히 떠날 수 있게 돕는다. 힘의 대결로도 해결할 수 없었던 선대조의 과업을 도령이는 공감의 능력으로 해결하고, 몇 대에 걸쳐 대물림된 가족 내의 불화를 극복해낸 것이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도령이는 한층 성숙한다.
마음의 모험과 성장을 돕는 동화
이 작품은 매 순간이 긴장감 넘치는 데다 다소 으스스한 내용이 담겨 있기도 한데, 이런 긴장감과 공포는 어린 독자들에게 건강한 마음의 모험의 기회를 제공한다. 김지은 평론가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은 용기와 상상력을 키우는 밑천’이라며 ‘『도깨비 느티 서울 입성기』는 도깨비를 동반자 삼아 보이지 않는 전설의 깊은 곳을 탐험하는 이야기이며, 책 안의 안전한 공포를 겪으며 긴장을 견디는 것이 장차 내 안의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된다’고 설명한다. 이런 건강한 모험이 가능한 것은 군더더기 없는 문장, 익살스럽고 진지한 에피소드들의 결합, 그리고 속도감 넘치는 빠른 전개로 독자를 이야 기 속으로 빨아들이는 작가의 솜씨 덕분일 것이다. 또한 재미 뒤에 숨은 감동도 놓칠 수 없다. 도령이네 가족과 자한녀가 갈등을 뛰어넘어 화해하는 대목이나, 느티가 오백 년의 약속을 지켜가는 모습, 물과 불처럼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었던 도령이와 도령이네 아빠가 서로를 아껴주는 모습 등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서 삶을 포용하는 작가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세심한 느낌의 선과 강렬한 터치가 함께 어우러진 오정택 화가의 그림은 책의 활기를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