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기 시작한 한 사내의 소심한 시심
시인 김경주. 결혼과는 사뭇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방랑자의 풍모를 자랑하는 그가 책 한 권을 썼습니다. 책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이야 반복되는 그의 생계이니 뭐 별스럽다 하겠냐만, 이번 책은 쓰고 만들어 내미는 손에 절로 분홍빛을 번지게 하는 그런 재주를 가진 듯합니다. 쓴 자는 부끄러움으로, 읽는 자는 경탄으로 받아들게 되는 책, 사내에서 아비가 되기까지 40주간의 순간순간을 시심으로 기록한 책. 시인 김경주의 『자고 있어, 곁이니까』는 호들갑스럽게 제 아이의 태어남을 낱낱이 고한 아버지의 출산일기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만든다는 당연한, 그럼에도 곱씹으면 놀랍기 그지없는 우주의 섭리에 근거하여 이 신비를, 이 두려움의 속내를 샅샅이 밝히는 책입니다. 누군들 한 사람의 피와 살과 뼈로부터 빚어지지 않은 자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이를 낳는 일의 희망과 아이를 낳는 일의 절망을 함께 말합니다. 읽는 내내 마음의 시소가 오르고 내림을 반복한다면 바로 그런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우리 모두 ‘심’으로는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시인 김경주의 『자고 있어, 곁이니까』말입니다.
남자에서 아비가 되어가는 40주 동안
숭고와 불안과 고독과 자책과 헌신과 감동을 기록하다!
이 책은 2011년 1월 24일 일요일에 시작됩니다. 아내가 임신 6주차에 접어들어 남긴 첫 기록은 양귀비 씨앗만한다고 한 아이의 심장 크기와 심장 소리를 처음 맞닥뜨린 날의 떨림이지요. 시인은 제 삶에 출연한 아이의 존재에 형언할 수 없는 경이로움과 함께 엄청난 혼란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내 앞에서는 뜨겁게 손을 잡아주며 아이와 함께하는 미래의 밝음에 대해 떠들어댈 줄 아는 사내라지만 잠든 아내를 뒤로한 채 서재로 올라온 그는 제 앞에 놓인 생명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고민하는 사내라지요. 2011년 9월 16일 아이가 태어나는 그날까지 시인의 이러한 낮과 밤, 밝음과 어둠의 양면적 고심은 계속됩니다.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가장에, 가족의 화합을 도모하는 수장이어야 한다는 게 사회적으로 그가 맡은 임무라지만 한편으로 제 존재에 깊숙이 천착해야 하는 글쟁이인 까닭에 때때로 홀로여야 한다는 게 개인적으로 그가 누릴 의무이기도 했거든요.
오류로 범벅인 내 삶에 너라는 질서가 들어와 조금 정돈된 듯했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이 불안감과 황량함은 어디에 근원이 있는 것일까? 배후를 모르는 스산한 결들이 밤마다 나의 문장에 찾아오고 있다. 우리는 너로 인해 충분히 외롭다. 이 서글픈 역능을 아는지 엄마는 밤에 내 옆에서 돌아눕기 시작했다.
-「가끔 우리는 너로 인해 충분히 외롭다」 중에서
태동, 태담, 태교라는 큰 제목 아래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쓰인 이 책은 롤러코스터처럼 잦은 감정적 변동의 그래프를 고스란히 끌어안고 있습니다. 아이를 갖고 낳는 40주간 시인은 마치 제 자신의 태어남을 다시 경험한 듯 제 아버지를 받아들이고 제 어머니를 사랑하게 됩니다. 부모가 되어봐야 부모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어른들의 흔한 입말은 사실 이렇게나 진리였던 거지요.
아내의 출산일기와 다르게 남편의 기록은 아이에 아내가 더해지는 무게를 갖게 됩니다. 엄마야 제 몸에 변화무쌍함을 남기는 아이의 존재감을 어렴풋하게나마 따라갈 수 있다지만 아비의 경우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저 깜깜하게 칠해둘 수밖에 없을 그것이 아이와 엄마가 한데 있는 그 몸이라는 공간일 거거든요. 다행히 아비의 직업이 시인이 까닭에 보다 예민하고 보다 섬세한 감성으로 여러 ‘발견’을 해냅니다. 예컨대 아이를 가진 산모만이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구나, 하는 사실 같은 것들이요.
당신은 지금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 안에는 당신의 심장도 있고 아기의 심장도 뛰고 있습니다. 한 몸에 두 개의 심장을 지닌 당신의 몸은 매일 어떤 상상으로 움직이고 있을까요? 당신은 앞으로 9개월을 두 개의 심장으로 살아갈 텐데 내 쪽에서 서툴게 짐작해보면 산모의 예민하고 섬세한 반응들은 아마도 두 개의 심장으로 지내는 동안 생겨나는 몸의 새로운 상상력이 아닐까요? 당신의 몸은 두 개의 심장이 나누는 대화일 것입니다. 사내인 나는 그 대화를 엿들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황홀한 경이와, 때로는 두서없이 나타날 불안의 감정들 또한 두 개의 심장이 보여주는 태동일 것입니다. 두 개의 심장이 나누는 그 태동은 불현듯 우리 앞에 삶이 되어 나타날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습니다」 중에서
나는 이제 아비입니다.
나는 우리의 아이를 우리가 만들어낸 곁이라고 불러도 좋을 사내입니다!
한 여자를 사랑했고 그렇게 사랑한 한 여자를 아내로 곁에 두었고 그 곁에서 생겨난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시인은 수많은 갈등 속에 놓인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아내 역시 처음으로 가져본 아이로 말미암아 길을 가다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는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 자주 놓였고, 그때마다 그 울음을 그치게 해주는 역할의 주인공이 자신임을 잘 알면서도 시인은 종종 멀찌감치 도망친 날이 잦기도 했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서로의 곁을 서로에게 내어줘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에 두 사람 다 서툴렀기 때문일 겁니다. 이런 두 사람 사이에 대화 없는 시간이 생겨나고, 그런 연유로 두 사람이 겪는 외로움은 나날이 커지고… … 임신 중기에 벌어지는 이들 부부의 ‘빗김’은 결국 곁에 있는 아이로 ‘포옹’이 되지만 수술실 문이 닫히고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까지 시인의 고뇌는 계속됩니다. 아마도 이 책이 시와 편지와 에세이와 동화의 형식을 빌려 다양하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연유에는 다각도로 표출될 수밖에 없는 시인의 폭발적인 감수성이 한몫했을 겁니다. 비단 부모가 되는 일이 아니고서라도 우리는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이런 과도기를 매 순간 겪게 되겠지요.
이 책의 표지는 임신한 아내의 둥근 배를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그에 덧붙여 안쪽의 표지는 임신한 아내의 곁을 지키는 사내로서 시인 김경주의 느낌을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그 흔한 아이의 초음파 사진 한 장 없이 텁텁한 재생 종이에 묵묵히 시인의 마음을 담아낸 건 부부가 되어 가족을 이루기까지의 그 과정이 내내 잔치이지만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였습니다. 더없이 평범한 일상이 더없이 평범치 않다는 걸 말하기 위함 속에 가족이라는 건 엄마와 아빠와 아이가 하나라는 억지 강요가 아니라 저마다 하나하나의 방점으로 저마다 제각각의 거리를 유지할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기적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바라건대 이 책은 눈으로만 읽지 마시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어주시길, 그렇게 목젖을 통과한 울림들이 사방으로 퍼질 때 세상 모든 아비들의 진심이 방울방울 퍼져나갈 것이니, 그 아름다움으로 우리들 곁에 있고 언제고 곁이 될 아이들의 미소가 환해질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