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노 교코는 최근에 번역 출간된 『무서운 그림으로 인간을 읽다』를 끝으로, ‘무서운 그림’ 시리즈를 완결 지었다. 그런 그녀가 이번에 공포에 시달리는 인간이 보일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행동, 바로 ‘잔혹함’을 들고 돌아왔다.
인간의 가장 큰 공포는 무엇일까. 인간은 언제 가장 큰 공포를 느낄까. 모든 것을 가진 존재의 주변에는 그것을 빼앗으려는 존재가 필연적으로 따라다닌다. 모든 것을 가진 존재 역시,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지금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많은 인간일수록, 빼앗길 것도 많아진다. 그럴수록 그가 느낄 공포는 최고점에 이른다.
가진 것이 많은 인간이 공포를 느끼는 순간, 어떤 감정 상태에 빠지는가. 권력자가 공포를 느끼는 순간,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 공포의 절정에서 권력자가 보이는 최고의 위악이 바로 잔혹함이다.
나카노 교코가 이 책에서 들고 온 ‘잔혹함’은 ‘무서운 그림’에서 한 발 나아간 소재이다. 그녀는 앞서 무서운 그림을 통해, 인간의 공포를 아주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이는 기존의 서양 회화가 늘상 경고했던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포를 기억하라’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공포가 불러온 다섯 가지의 잔혹한 사례를 들어, 인간의 마음을 한층 더 깊숙이 파고든다.
왕실에서 방심은 금물이다!
몇 백 년이 지나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변형되고, 재해석되는 유럽의 5대 왕실이 있다. 지금도 끊임없이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이야기.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스튜어트의 경쟁, 벨라스케스의 명작 「라스 메니나스」 속 귀여운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짧은 생애, 아들을 때려죽인 러시아 이반 뇌제와 일곱 황비 이야기, 독일 선제후였다가 영국의 왕이 된 조지 1세가 자신의 왕비를 평생 유폐시킨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너무나도 유명한 헨리 8세와 앤 불린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유럽 5대 왕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들 왕실 이야기는 화려하거나 아름답지 않다. 특히 왕과 왕비, 즉 남녀 관계를 다루지만,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 각자에게 사랑은 언제나 자신에게 치명상을 입힐 뿐이다. 특히 눈앞에 있는 강자에게 먹히지 않으려면, 사랑 따위는 가벼운 놀이 정도로 넘기거나 들키지 말아야 했다. 그렇지 못했던 메리 스튜어트, 조피아 도로테아, 앤 불린은 잔혹한 왕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한마디로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다.
왕실은 자신보다 강한 자가 있으면 그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곳이었고, 방심하는 순간, 가련한 존재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음을 이 책은 생생하게 보여준다. 방심의 순간, 운명은 잔혹한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