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명료‧깊이‧위트’ 4박자의 향연
지휘자‧연주자에서 공연 뒷이야기까지 현장감 넘치는 클래식 동네 이야기
* 가장 많이 듣고 본 음악 전문기자의 현장 리포트
클래식은 실은 약점이 많은 음악이다. 듣는 사람을 열광시키는 록큰롤의 열정도, 작곡과 연주가 실시간에 이뤄지는 재즈의 즉흥성도, 입에 착착 붙는 멜로디와 몰입감 넘치는 연기로 관객에게 호소하는 뮤지컬 음악의 대중성도 부족하다.
하지만 클래식음악은 아이를 가진 예비엄마들의 태교음악으로 널리 쓰이고, 아이들이 꼭 들어봤으면 하는 부모들이 바라는 장르의 음악이자, 어른들 자신에게도 어렵지만 들어보려고 애쓰는 음악이기도 하다. 클래식음악에 어떤 특성이 있기에 사람들이 ‘듣기는 어렵지만 꼭 듣고 싶은’ 음악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서양 고전음악에는 대중음악이 지니고 있지 못한 결정적 비교우위가 있습니다. 바로 수백 년에 이르는 역사라는 풍부하고 기름진 토양이지요. 유수한 세월의 풍화작용을 딛고 꿋꿋이 살아남은 클래식음악은 수만 가지 매력과 이야깃거리를 지층에 가득 담아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_´책을 내며´에서
<스마트 클래식 100>의 지은이가 지적하는 클래식음악의 ‘비교우위’ 장점이다. 일간지의 클래식음악 전문기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지은이는 바로 이런 클래식음악의 매력을 전달하는 것을 전문기자로서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기 위해 음악학자나 역사학자처럼 연대순으로 클래식음악사를 훑어가기보다는, 기자답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서 서양 고전음악이 탄생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와 클래식음악의 연관고리를 엮고 맥락을 짚어보고자 한다. 다루는 내용은 지극히 고전적이되, 다루는 방법은 일상적이고 현대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지은이는 ‘가장 많이 듣고 본’이란 수식어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공연장에 자주 출몰하는 클래식음악 마니아다. 2010년 가을부터 1년 동안은 파리에 체류하며 무려 172편의 공연을 볼 정도로 클래식음악을 탐닉한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바로 이런 현장에서 듣고 본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기에 더욱 신뢰가 간다. 이 책을 구성하고 있는 100편의 짧은 글들은 수많은 공연 및 음악인 취재와 음반/DVD를 통한 청취를 바탕으로 한 경험과 노력의 결실로서 <조선일보>에 ´클래식ABC´라는 제목으로 2009년 4월부터 2013년 1월까지 연재했던 글들을 ‘깎고 고치고 다듬어’ 펴낸 것이다. 2009년에 펴냈던 <클래식 수첩>의 형제 같은 책으로, 이번에는 특히 클래식음악의 진입장벽으로 꼽히는 낯설고 까다로운 전문 언어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해설해내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 또한 이 글들이 쓰이는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의 연수 기간이 겹쳤기에 그 당시의 체험 또한 책의 면면에 스미어 있기도 하다.
* 접근하기 어려운 미인 같은 클래식, 어떻게 공략할까?
2013년 5월 23일에 LG아트센터에서 열린 현대음악을 소개하는 음악회에서 해설을 맡은 지은이는 “클래식은 우리 일상에 스미어 있다”는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 특히 클래식 중에서도 청취층이 유독 적은 현대음악이라 해도 괜스레 겁을 먹거나 편견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반문했다. 실상은 펜데레츠키와 존 케이지 등의 음악을 쓴 <셔터 아일랜드>, 필립 글래스의 음악을 쓴 <디 아워스>, 중국의 현대음악가 탄둔의 오리지널 넘버를 쓴 <와호장룡> 등 영화음악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스티브 라이히 같은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의 음악은 실은 힙합이나 테크노 같은 대중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는 고전음악이든 현대음악이든, 소위 ‘클래식’이라는 것이 우리 삶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늘 강조하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풍부하고 깊이 있으며 다양한 음악의 매력에 흠뻑 빠지기를 바란다. 이전에 발간한 전작들도 모두 클래식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특히 <클래식 수첩>과 <스마트 클래식 100>은 기자다운 글쓰기가 가장 돋보인다. 일례로, 작곡가의 탄생이나 서거에 맞춰 음반과 공연을 쏟아내는 ‘기념일 마케팅’에 대해 “클래식 음악의 영역이 점차 축소되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하는 한편으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던 작곡가의 숨은 매력까지 드러내는 효과”도 있다는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짤막한 길이의 글에 수많은 정보와 곱씹어볼 만한 내용까지 담은 <스마트 클래식 100>은 클래식을 이해하기 위한 입문서로 손색이 없다.
‘클래식도 환불이 되나요?’ ‘클래식 올림픽이 열린다면 어느 나라가 1위를 할까?’ ‘헬리콥터도 악기가 된다고?’ ‘대중가수와 오페라 가수는 어떻게 다를까?’ 같은 흥미를 돋울 만한 질문들을 던지고 나서 오늘날 클래식음악계의 풍경을 스케치하는 식의 글들은 클래식이 접근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입문자에게 문턱을 낮춰줄 것이며, 간단하지만 명료하고, 깊이 있지만 위트 있게 풀어내는 글들은 클래식 팬들에게 즐거운 독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 클래식, 이 한 권으로 준비운동 끝!
이 책은 모두 다섯 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은 ‘클래식음악에 대해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정작 누구도 정색하고 묻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담았다. 클래식 공연장에 우리 아이는 언제쯤 처음 데려가면 좋을지, 가기 전엔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음악감독과 상임지휘자의 차이는 무엇인지부터, ‘아티큘레이션’과 ‘프레이징’ 그리고 ‘루바토’ 등 외국어로 돼 있어 알쏭달쏭한 음악 용어까지 쉽게 풀어 설명하고 있다.
2장에서는 우아하고 도도해 보이지만 역시 사람 사는 동네인 클래식음악계의 커튼 뒤편 이야기들을 담았다. ‘3대 테너’ ‘4대 교향악단’ 등 클래식음악계에 난무하는 수식어들의 신빙성과 그런 수식어들이 붙는 이유는 무엇인지, 요즘 오페라는 왜 다소 선정적으로 변해가는지 등 클래식음악 마케팅과 관련된 것부터, 피아노 조율사‧오케스트라 살림꾼 등 클래식음악계의 조연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3장에서는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에서 유일하게 소리를 내지 않는 음악인’인 지휘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묶었다. 게오르그 솔티, 마리스 얀손스, 마이클 틸슨 토머스, 게르기예프 등 기라성 같은 지휘자들을 소개하고 이들의 대표작들을 들어볼 수 있는 음반도 추천하고 있다.
4장은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걸작들에 숨어 있는 사연들에 주목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게 되고, 또 느끼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얘기처럼, 음악에 깃들어 있는 이야기를 알고 나서 듣는 음악은 이전과 같지 않다. 푸치니의 오페라 <자니 스키키> 가운데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제목과 달리 부모의 뜻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내용의 노래라거나, <나비부인>의 내용이 소설가 김승옥의 <무진기행>과 겹쳐지는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어차 있다.
5장에서는 연주자와 성악가 이야기를 다룬다. 작곡가가 신이라면 연주자는 신의 음성을 들려주는 사제, 관객은 사제의 음성을 통해 신의 뜻을 되새기는 신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과 신도 사이에서 전달자 역할을 맡아 음악을 세상에 불러오는 연주자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는 음반과 영상 등도 충실히 소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