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학교를 세워 나라에 필요한 인재를 키워 냈어요. 특히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초등학교와 같은 서당에서부터 국립 대학교에 해당하는 성균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교들이 있었지요. 『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은 조선 최고의 국립 교육 기관인 성균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학교는 그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 주는 거울이라고 해요. 유생들을 따라 성균관 구석구석을 둘러보다 보면 우리 조상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나라를 만들고자 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 작가의 말 중에서
성균관은 조선을 다스릴 관리 후보들의 능력을 키우고 품성을 가다듬는 곳이었습니다. 종묘를 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당이라서 ‘태묘’라고 불렀듯, 성균관은 나라에서 가장 높은 교육 기관이므로 ‘태학’이라 불렀습니다. 여러분은 『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을 통해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성균관 유생들의 생활 모습을 충분히 그려 볼 수 있습니다. 성균관 유생의 생활상을 지금의 자신과 비교해 보면서 즐거운 시간여행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 정연식(서울여대 사학과 교수)
조선 오백 년을 이끈 큰학교(太學) 성균관 이야기
최항, 정약용과 같이 훌륭한 위인들을 배출한 성균관은 조선 오백 년 역사를 찬란히 이어나가도록 한 원동력이다. 왕이 사는 궁궐, 왕실의 사당인 종묘, 그리고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낸 사직단과 더불어 조선에서 가장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 성균관. 왕은 성균관 유생들을 위해 학비와 숙식비를 제공하고 특별한 시험을 열어 특혜를 주기도 했을 만큼 성균관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은 소과에 합격해 성균관 입학 자격을 얻은 한 유생이 수많은 성균관 유생들을 대표하여 등장해, 입학 날부터 대과 시험을 앞둔 어느 날까지 성균관에서의 나날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유생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성균관이 세워진 이유, 성균관 건물의 쓰임새, 성균관 유생들의 학업과 생활상 등 성균관에 관한 모든 정보를 자연스레 알 수 있다. 어린이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면서 마치 자신이 성균관 유생이 된 듯 이야기 속에 빠져들 것이다.
학교로서의 성균관 - 배우고 익히니 기쁘지 아니한가
장차 관직에 나아가 조선을 이끌 인재를 길러내는 학교였던 성균관에서는 과연 무엇을 배웠을까? 성균관에서는 정해진 순서와 기간에 따라『대학』『논어』를 비롯한 사서오경은 물론 『사기』『고려사』『경국대전』등 역사와 법률을 가르쳤다. 그리고 매일, 매주, 매달마다 글을 외우고 짓는 시험을 치렀다. 때문에 유생들은 유학 강의을 듣는 ‘명륜당’과 공부에 필요한 유교 경전이 보관된 ‘존경각’을 오가며 쉼 없이 학문을 갈고닦았다. 성균관에서 배우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경전 외에도 활쏘기, 말 타기, 예의범절, 수학, 음악, 서예 등 여섯 가지를 가르쳐 유생들이 심신을 수련하도록 했다. 넘치는 것은 덜어 내고 모자라는 것은 채워 조화를 이룬다는 뜻(成均)을 가진 성균관의 이름에 걸맞은 교육이 펼쳐진 셈이다.
사당으로서의 성균관 - 진정한 공부란 옛 성현들을 기리고 본받는 것이니라
성균관은 공자를 비롯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기도 했다. 성균관의 정문인 ‘신삼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대성전’은 성균관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이곳에서 왕과 왕세자, 수많은 신하와 유생들이 해마다 봄과 가을에 성대하게 제사를 치렀다. 학교에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낸 데에는 훌륭한 스승을 본받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 생각한 우리 조상들의 뜻이 담겨 있다.
유생들의 정치 참여 - 세상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다
성균관은 사당이나 학교로서의 역할에만 그치지 않았다. 장차 나라를 이끌 관리를 키우는 곳이었으므로, 왕과 조정의 신하들은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정에서 바르지 못한 일을 했을 때, 성균관 유생들은 오늘날 학생자치회에 해당하는 ‘재회’를 열어 의견을 모아 ‘유소’를 올렸다.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식사를 거부하며 식당에 나가지 않거나, 성균관을 비워 두고 밖으로 나가 버리기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을 취하기도 했다.『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은 청렴한 관리가 부당하게 관직을 빼앗긴 일에 대해 바른 의견을 내고자 유생들이 유소를 앞세워 궁궐로 향하는 장면을 보여 준다.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길이라면 세상과 용감하게 맞설 줄도 알았던 성균관 유생들. 그들이 그저 공부벌레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는 당찬 인재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성균관 유생의 아주 특별한 하루를 좇다
『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을 통해 유생들의 하루를 좇다 보면, 미처 알지 못했던 성균관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속속들이 알게 된다. 성균관은 공부뿐만 아니라 밥 먹고 잠자는 일상을 함께하는 곳이었다. 유생들은 모두 동재와 서재에서 기숙 생활을 하며 지냈다. 신입생이 들어오면 기숙사 뜰에는 유생들이 ‘상읍례’와 ‘신방례’를 치르며 인사를 나누는 유생들로 활기가 넘쳤다. 성균관에는 유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성균관의 교장 선생님인 ‘대사성’, 유생들을 가르치는 ‘교관’, 성균관의 노비인 ‘반인’과 ‘반노’가 함께 생활했다. 반인과 반노가 때에 맞춰 북을 울리고 구호를 외치면, 유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청금복’을 단정히 입고 식당에 나가 식사를 했다. 특이하면서도 흥미로운 점은 성균관에서는 출석 확인을 식당에서 했다는 사실이다. 아침과 저녁 식사 때 ‘도기’라는 출석부에 이름을 적어 출석을 확인하였고, 출석을 성실히 한 유생에게는 대과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주었다. 수업을 마친 뒤에는 시험이 이어져 ‘통’(합격)과 ‘불통’(불합격)으로 평가했다. 엄격한 규율에 따라 생활한 성균관 유생들도 한 달에 두 번 휴식을 취했는데, 쉬는 날에도 공부를 게을리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사치스럽게 치장을 해도 벌을 받았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능력을 세상을 위해 쓰고자 배움을 잊지 않은 인재들. 학교에 다니며 하루하루를 지낸 유생들의 모습은 지금의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장차 시대를 이끌어 갈 우리 어린이들에게『조선의 미래를 꿈꾼 인재들의 학교 성균관』은 꼭 필요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성균관 곳곳에 깃든 유생들의 숨결을 느끼다
지금의 성균관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지는 않다. 성균관 부지를 둘러싸며 흐르던 반원 모양의 물줄기인 반수는 사라지고 도로가 생겼다. 유생들이 밥을 먹던 자리에는 유림회관이 들어서고, 성균관에 행차한 왕이 가마를 놓던 하련대는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책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성균관의 옛 풍경을 둘러보고 성균관 곳곳에 깃든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책의 말미에는 왕세자의 입학례 풍경이 담긴 『왕세자입학도첩』을 실어 당시 풍경을 그려 볼 수 있게 했다. 또한 서당, 사학, 향교, 서원 등 조선의 교육 기관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그림, 사진이 들어 있어 독자들이 당시의 모습을 더욱 생생히 살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