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 생텍쥐페리, 자크 마조렐……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혼이 어려 있는 땅
북아프리카 태생의 예술가들, 혹은 외로운 행성처럼 북아프리카땅으로 모여든 예술가들은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알베르 카뮈 키즈’이자 혼란스러운 젊은 시절을 예술과 문학에 푹 빠져 지냈던 김병종 화백은 퍼덕이는 생선을 그물 가득 끌어올릴 어부의 기세로 북아프리카땅에 선다. 카뮈가 태어나고 자란 알제의 빈민가와 그가 수채화처럼 그려낸 ‘티파사’, 생텍쥐페리가 비행하며 내려다봤을 사하라, 앙드레 지드, 모파상, 파울 클레 등 수많은 예술가들의 사랑방이었던 튀니지의 ‘카페 데나트’, 화가 자크 마조렐이 만들고 이브 생로랑이 이어받은 모로코의 ‘마조렐 정원’을 오래 묵은 갈증을 해소하듯 신나게 써내리고 그려낸다.
곳곳에서 예술의 향취가 묻어나는 북아프리카는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잉글리시 페이션트> <스타워즈>의 배경인 사하라 사막, <카사블랑카>로 유명해진 모로코의 카사블랑카, <글래디에이터>의 모티프인 튀니지 엘젬의 원형경기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가는 곳마다 떠오르는 예술가와 작품을 그곳의 풍경과 한데 엮어 깊이 있는 예술기행을 펼쳐놓는다.
인종과 문화의 기묘한 혼합물,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북아프리카 예술
수천 년 간 페니키아와 로마, 오스만튀르크, 스페인, 프랑스 등 여러 왕조와 제국의 지배를 받아온 북아프리카 역사의 이면에는 이질의 문화와 만나 탄생한 제3의 예술적 독특함이 있다. 유럽 미술관들의 거대한 컬렉션과 판박이 해설에 거부감을 느껴온 김병종 화백을 사로잡은 것은 튀니지의 바르도 박물관이다. 어수룩한 진열 방식과 “이곳은 빛을 담는 집”이라는 신선한 소개는 편안한 분위를 자아내고, 그들만의 독특한 기법으로 완성한 세계 최대 규모의 로마 시대 모자이크는 화가의 붓질 못지않게 섬세하다.
북아프리카 예술에 있어 이슬람 건축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김병종 화백은 모로코의 유서 깊은 사원들과 서민들의 주택가를 돌아보며 상징적인 표상을 극도로 찾아보기 힘든 이슬람 건축에서 다름 아닌 ‘문’이 이슬람을 상징한다는 자신만의 견해를 피력하기도 한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평화롭고 맑은 사람들
그 가난의 그림자를 지워내고도 남을 눈부신 자연의 색채
김병종 화백의 눈에 북아프리카는 온갖 색이 뒤엉켜 들끓는 용광로다. 그 맛만큼 다양한 빛깔의 올리브, 색채 웅덩이가 한데 모인 가죽 염색 공장, 하얀 담장을 덮은 빨간 부겔빌레아, ‘튀니지언 블루’라고밖에 명명할 수 없는 옥빛 바다, 사하라의 층층 색깔 노을빛을 저자는 마치 그림을 그리듯 생생하게 묘사한다.
한편, 그 나라를 제대로 알려면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래시장으로 향하길 권한다. 그중에서도 모로코 페스의 미로시장은 14세기에 조성된 곳으로 무려 9천 개의 골목이 모여 있어 세계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장 안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상인과 함께 늙은 나귀는 분주히 짐을 나르고, 그 누구도 자기 가게에 들어오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시장 상인을 비롯해 이 지역 사람들은 모두가 신의 자손이라는 생각으로 자기가 맡은 일만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었다. 이렇듯 풍족하진 않지만 평화를 지키려는 모습과 그 뒤로 펼쳐진 눈부신 풍경은 물질적 풍요를 부끄럽고 미천하게 만들어버린다.
이슬람 사원에서 울려퍼져 마을 골목을 감아 도는 낭랑한 아잔 소리, 갈색 사막과 옥빛 바다가 뒤엉킨 속에서 강렬하게 튀어오르는 햇빛 알갱이들, 그 속에서 평화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 황홀한 기쁨과 마알간 슬픔이 공존하는 북아프리카 땅을 여행하고 돌아온다면 사소한 일상의 기쁨과 슬픔 아니, 살아 있다는 그 자체가 찬란한 기적임을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