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대표중단편선 생명연습
문학동네 한국문학전집의 문을 여는 제1권은 김승옥의 대표중단편선 『생명연습』이다.
1960년대 초반 한국문단에 이른바 ‘감수성의 혁명’을 몰고 온 작가 김승옥. ‘전후문학의 기적’ ‘살아 있는 신화’ ‘현대문학의 고전’ ‘단편미학의 전범’ 등 항상 화려한 수식어를 동반하고 이야기되는 그는, 시대를 넘어 지금의 독자들, 현재의 후배 작가들에게도 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생명연습』은 그의 대표적인 중단편소설들 중 「생명연습」(1962), 「건」(1962), 「환상수첩」(1962),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1963), 「역사」(1963), 「무진기행」(1964), 「서울, 1964년 겨울」(1965), 「다산성」(1966), 「염소는 힘이 세다」(1966), 「야행」(1969) 총 열 편을 한 권에 모아 김승옥 문학의 빼어난 본모습을 부족함 없이 담아냈다.
김승옥의 소설은 감각적인 문체, 언어의 조응력, 배경과 인물의 적절한 배치, 소설적 완결성 등 소설의 구성원리 면에서 한국소설의 새로운 기원을 열었다. 또한 인간의 삶을 꿈꾸지 못하는 기호로 전락시키는, 절대적인 권태와 허무 속으로 밀어넣는 현대문명사회를 비판적으로 형상화하고 1930년대 이상 박태원, 이태준, 최명익, 유향림 등을 통해 정점에 올랐던 모더니즘적 전통을 성공적으로 복원함으로써, 무조건적인 불안의식만을 반복적으로 서술하던 전후세대 문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중요한 발판을 마련했다. “김승옥의 소설에 대해 새삼 무슨 말을 덧붙일 것인가.”(신형철) 그의 작품들은 언제까지나 젊게 남아, ‘현재진행형’의 소설로서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독자들에게 깊이 읽힐 것이다.
*
한국소설사의 빛나는 걸작들로 남아 있는 그의 단편소설 대부분을 김승옥은 20대 초중반에 썼다. 그의 천재성을 다시 찬탄하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다. 그의 소설을 다시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그의 소설 속에 배어 있는 어찌할 수 없는 ‘청년성’이다. (…) 대부분의 삶이란, 어느 정도는 죽어 있고 또 어느 정도는 살아 있는, 그런 어정쩡한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청년문학은 그렇다는 것을 모르거나 알아도 인정하지 않는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생물학적인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되풀이한다고 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김승옥은 모든 문학적 출발의 원형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문학에 뜻을 둔 젊은이라면 누구나 김승옥이 걸어간 파괴와 창조의 행로를 되밟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김승옥은 문학적 젊음의 영원한 표상이다. _진정석(문학평론가)
힘센 시간이 수많은 소설들을 소멸시키며 흘러갔으나, 선생의 소설들은 가슴에 아로새긴 청춘의 어느 하루처럼 나날이 더 빛나고 있다. 내가 나에게 했던 옛 맹세를 잊으려 할 적마다, 내 자폐의 골방을 잊으려 할 적마다…… _신경숙(소설가)
■ 차 례
생명연습生命演習 _007
건乾 _042
환상수첩幻想手帖 _069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_162
역사力士 _188
무진기행霧津紀行 _220
서울 1964년 겨울 _257
다산성多産性 _287
염소는 힘이 세다 _418
야행夜行 _441
해설|신형철(문학평론가)
청년문학의 생명연습―김승옥의 60년대 단편소설들 _467
■ 김 승 옥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전남 순천에서 성장했다. 4·19가 일어난 해인 1960년 서울대 불문과에 입학했고 196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생명연습」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 김치수, 김현, 염무웅, 최하림, 서정인 등과 함께 동인지 『산문시대』를 발간하고 「건乾」 「환상수첩」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확인해본 열다섯 개의 고정관념」 등의 단편소설들을 발표했다.
1965년 단편소설 「서울 1964년 겨울」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새로운 감수성의 탄생을 알렸으며, 1977년 단편소설 「서울의 달빛 0章」으로 “참신한 구어체 문장”을 통해 “현대의 도시문명 속에서 변질되어가는 인간관계를 그리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해 처음으로 제정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대학 재학중 한국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서울경제신문에 만화 〈파고다 영감〉을 연재해 문학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탁월한 감각을 선보였고, 「무진기행」을 영화 〈안개〉로 각색하는 한편, 김동인의 「감자」를 각색·연출하고 이어령의 「장군의 수염」을 각색하여 대종상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문화 다방면에 걸쳐 시대를 앞서나가는 재능을 발휘하였다. 1981년 종교생활에 몰두하면서 문학으로부터 멀어졌으나 감각적인 한글 문체를 통해 1960년대의 일상성을 복원해내면서 전후 문학의 한계를 극복한 작가로 현재까지 꾸준히 논의되고 있다. 1995년 그의 문학을 총결산하는 ‘김승옥 소설전집’(전5권)이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