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밀도 높고 아름다운 문장, 우아하고 재치 있는 유머, 그리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진지한 문제의식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하나의 장르로 굳혀온 김연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2007)은 우리가 지나온 시절에 대한 회의와 진실에 대한 열망으로 이루어낸 작품이다. 이 장편소설은 공식적인 역사 기술(記述)이 지워낸 개별적인 인간들의 이야기를 복원하는 데에 성공함으로써 한국소설의 인식론적 깊이를 심화시킨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소설은 인간/개인과 역사의 관계를 어떻게 서술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또한 그 답을 찾는다.
인간이란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면서 비로소 존재하므로, 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로서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의미할 터. 그렇다면 역사란 이 수많은 이야기들이 우연히 마주치면서 생성된 하나의 우주라 볼 수 있을까. 김연수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통해 개인과 역사에 대해 사유하면서 ‘역사란 한줄기의 거대한 흐름이라기보다는, 무수한 개인들이 연결되어 형성된 네트워크’라고 정의내린다. 그 우연의 집합이 갖는 초월적인 힘 앞에서, 우리는 무한한 경외심에 휩싸이게 된다.
우주의 별들처럼 반짝이는 개인들의 이야기가 모여 만들어진 이 소설은 우리의 삶에 새겨진 크고 작은 상처들이 결코 의미 없는 생의 자국이 아니라는 따스한 진실을 보여준다. ‘나’, 그리고 ‘나’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개개인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광막한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이어져 있는 이 장편소설은 우리의 일생은 소멸되지 않고, 이야기로 연결됨으로써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는 작가의 깨달음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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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각자의 경험을 의미 있게 해주는 거대한 이야기가 붕괴한 자리에서 개인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가. 그 거대한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삼은 집합적 주어가 폐기된 자리에서 개인들이란 누구인가. (…) 김연수는 민족 자주와 해방의 이야기가 몰락하기 직전의 운동권 학생을 작중화자로 내세워 그 이야기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출몰한 다양한 인물들의 열정과 허영, 진실과 허위, 광기와 치기가 서로 부딪치고 뒤섞이는 시공간을 만들어냈다. 이 소설은 어떤 진심, 어떤 연극, 어떤 모험에도 불구하고 광막한 우주 속의 혼자일 수밖에 없는 한 개인이 한때 그를 그 자신 이상이게 했던 거대한 이야기 또는 거대한 환상에 대해 오랜 애증 끝에 바치는 별사別辭이기도 하다. _황종연(문학평론가, 동국대 국문과 교수)
유일한 한 사람이 하나의 ‘이야기’로 전환되는 ‘일생의 뮈토스’와, 세계의 파편적 운동들이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역사로 전환되는 ‘역사의 산문화’, 이 둘은 실상 별개의 원리가 아닌 공통의 ‘지반’ 같은 것이다. 두 스타일을 동시에 감싸는 말로 이 소설을 (…) ‘설화적 모더니즘’이라 칭해보면 어떨까. 무수한 이야기들의 생성, 유통, 변화, 소멸을 환기하는 데 ‘설화說話’보다 적당한 단어도 찾기 어렵다. 또 소설에 관한 두 개의 중요한 질문을 소설의 스타일 자체로 답변했다는 점에서 (…)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이름하여 ‘설화적 모더니즘’의 한 진수를 보여준다. _백지은(문학평론가)
■ 김 연 수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를 발표하고, 1994년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으 시작했다. 2001년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으로 동서문학상을, 2003년 소설집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동인문학상을, 2005년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하면서 90년대 젊은 작가군 중 가장 지성적인 글쓰기를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7년 단편소설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황순원문학상을, 2009년 단편소설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통적 글쓰기를 수행하면서도 새로운 상상력의 촉수로 문학의 영토를 넓혀가는 작가임을 입증해냈다.
저서로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7번국도 Revisited』 『꾿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소설집 『스무 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우리가 보낸 순간』 『지지 않는다는 말』 『대책없이 해피엔딩』(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