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종종 자신에게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는지 모를 때가 있다
2003년에서 2012년 사이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쉴 새 없이 터졌다. 그리고 그에 따라 적지 않은 사회 변동도 일어나는 중이다. 이 책은 노무현정부의 출범으로 이명박정권이 막을 내렸던 10년간 여러 지면의 칼럼과 논평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진단해온 사회학자 김종엽의 글을 묶은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지난 글을 묶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글 쓴 시점과 사건의 변화에 따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점검하는 피드백의 글쓰기를 시도해,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 새롭게 되새길 수 있도록 했다.
김종엽은 대한민국이 통과하는 21세기 첫 10년을 ‘좌충/우돌’과 ‘좌우/충돌’의 시대로 명명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커다란 혼동 속에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 시간들을 곱씹어 현재의 눈으로 확인하고 무엇이 우리 사회의 문제인지 정밀하게 진단하는 일은 여전한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는 우리 사회가 미래를 예측해보는 데 긴요한 도구가 될 것이다.
좌충/우돌의 시대, 좌우/충돌의 시대!
노무현정부의 시작부터 이명박정부의 마감에 이르는 시기를 ‘좌충’에 이어진 ‘우돌’의 시대로 규정하는 것은 간결하고 타당해 보였다. 동시에 그런 좌충우돌의 시대는 좌우충돌을 내포하고 있기도 했다. 좌충의 시대는 좌우충돌로 점철되었고, 우돌의 시대 또한 격렬한 좌우충돌을 경유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좌충의 시대도 우돌의 시대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좌충우돌의 비일관성을 노정하기도 했다. 내 칼럼들은 이렇게 중의적인 의미에서 좌충우돌/좌우충돌하던 시대를 성찰하고 또 그것에 개입하려는 시도였다고 할 수 있는데, 내 자신이 그런 좌충우돌/좌우충돌의 흐름 속에서 어느 지점에서 자리를 지키려 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_「서문」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 이라크 무장단체의 김선일씨 납치?피살 사건, 한미 FTA 그리고 광우병 논란,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4대강 사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용산 참사,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사건의 나열만으로도 지난 십여 년간 우리 사회의 행보가 얼마나 고단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우리는 갈피를 잡을 수 없는 혼란이 거듭되는 그야말로 ‘충돌’의 시대를 건너는 중이다. 노무현정권기에서 이명박정권의 종료까지, 그리고 박근혜정부 출범 1년. 이어지는 보수진영/진보개혁진영의 격돌과 추락해서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 한국 경제, 그에 따라 출렁이며 수렁으로 빠져드는 현재 우리 사회의 세태를 진단하는 이 책은 우리 사회의 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 보이며 더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타진한다.
21세기 첫 10년 한국사회의 풍경
노무현정부와 이명박정부는 지향하는 가치만큼이나 국정 운영의 전반적인 모습 또한 판이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격렬한 갈등을 내포했다. 노대통령 재임 시기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며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은 끊임없이 보수언론의 질타를 받았다. 그 와중에 이라크 전쟁과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세계적 이슈에도 대응해야 했다. 한편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정부의 출범은 화려했지만 승자독식은 더욱 강화되었고,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소외된 이들은 갈 곳을 잃었다.
저자는 특히 정치사회적 이슈와 더불어 교육 문제에 주목한다. 교육이야말로 한국사회의 특권적 재화로서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교육 제도, 특히 수능 제도는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바뀐다. 즉 모든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안에 ‘단 한 번의 마스터플랜’을 시도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의미이며 이때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에게 돌아간다. 게다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부모가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는 기실 한국사회의 왜곡된 제도와 좁은 기회구조 탓이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등수가 매겨지고, 그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이후의 인생에서 낙인처럼 따라붙기에 입시는 자연스레 ‘생존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혼돈의 시대의 사회학
지난 10년의 한국사회를 이야기하기에 사회학은 유용한 수단이다. 사회학이 필연적으로 ‘폭로’를 동반하기에 그렇다. 다시 말해, 사회학은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폭로한다는 의미보다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사유의 틀과 언어의 사용에 깃든 조작과 은폐에 침투해 그 이면을 밝혀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갈수록 심화되는 재벌의 사회적 지배 현상도 저자가 꼽는 한국사회의 주요한 문제적 현상 중 하나다. 삼성 X파일 사건과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 비자금 사건은 우리 사회가 재벌기업의 힘에 압도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재벌기업은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한국사회의 사법적, 도덕적 마지노선을 무너뜨리는 것이 가능함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자본의 확장을 위해서는 경제권력, 사회권력뿐 아니라 정치권력의 요체인 국가 자체를 매수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한편 저자는 재벌 중심의 사회구조 이면에는 식민지화와 전쟁을 거친 우리의 폭력적 근대화 과정이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내일의 우리가 오늘의 우리에게
지난 10년의 시간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지만, 그간 한국사회에 절망적 상황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2009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의 상징성을 언급하며 촛불의 의미를 ‘시위’를 넘어 ‘항쟁’으로 격상시킨다. 촛불시위는 줄곧 정부와 정책 결정권자들에게 이임되어왔던 ‘주권’을 국민이 되찾아오며 스스로 ‘주인 됨’을 주장한, 우리 사회의 성숙한 민주화가 이뤄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명박정권의 역진과 공격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중이 직접 막고자 나선 이 사건은 후일 우리 사회의 축적된 민주주의 역량을 사회 성원 스스로 입증한 자랑스러운 사건으로 평가되고 기록되지 않을까.
너무도 인상적인 이런 주인 됨의 양태, 주권자의 모습을 추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살수차를 혼자 막고 서서 “경찰이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면 안 되잖아요”라고 말하는 여고생, “아닌 것은 아니다”라는 표어를 들고 경찰 앞에 서 있는 한 노인, 불법 시위를 운운하는 경찰의 선무 방송에 대해 “너희가 불법이다”라고 말하는 시위 군중은 실정법을 압도하는 법 정초적 발언, 주권자의 목소리다. 촛불항쟁에 흐르고 있는 주인 됨을 당연시하는 태도는 항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 태도가 권위주의적 정부의 폭력에 대한 모든 공포를 깨끗이 소멸시켰기 때문이다.
_본문 269쪽
하지만 촛불항쟁과 같은 예외적 상황은 언젠가 끝난다. 우리는 또다시 일상에 매몰되고 사회는 갈등과 반목을 거듭한다. 이 책은 바로 여기에서 의미를 갖는다. 우리 모두는 스스로가 겪는 사건의 이면을 알지 못한 채 그 시간을 통과한다. 또한 그 사건들로 인해 우리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좀처럼 깨닫기 어렵다. 하지만 사건들은 망각될지언정 무화無化될 수 없다. 아무리 ‘좌충우돌’했을지라도 우리가 지나온 시간들의 기록을 통해 거기, 그곳에 우리가 있었음을 확인하고 그때의 마음을 원동력 삼아 ‘폭로 너머’를 기획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