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이 가후 대표 걸작선
메이지유신, 산업혁명, 일본제국 헌법 공포,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간토대지진과 만주사변, 세계대전……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의 일본은 그야말로 혼란기였다. 이런 혼란 속에서 나가이 가후는 유학파 고급관료인 아버지의 주선으로 중국, 미국,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새로운 문물을 접할 수 있었다. 한시 작가이기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일본의 전통 기예인 가부키와 하이쿠 등을 익힌 그는, 미국과 프랑스를 경험하면서 에밀 졸라를 비롯한 자연주의 문학에 깊이 경도되었다. 귀국한 그의 눈에 당시의 일본은 서양 문화를 어설프게 받아들이고 그들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천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나라에 불과했다. 그는 근대 문명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쾌락을 추구하는 향락적인 작품들을 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당시 발표한 소설 『냉소』 『후카가와의 노래』, 외국에서 지낸 경험을 살려 집필한 『아메리카 이야기』 『프랑스 이야기』 등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탐미주의 작가로서 문단에서 위치를 굳힌 나가이 가후는 모리 오가이, 우에다 빈 등과 교유하고, 『미타분가쿠』의 편집인으로 일하며 다니자키 준이치로와 사토 하루오 등 여러 작가를 이끌었다. 특히 가후의 「문신」 서평은 당시 무명작가였던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단숨에 문단의 총아로 끌어올렸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와는 문학적 성향이 비슷했던 탓에 친분 깊은 관계를 유지했고, 가후와 다니자키는 일본 탐미주의 문학의 거장으로서 나란히 자리하게 되었다. 그러나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여체 그 자체의 아름다움에 탐닉하고 갈구한 반면 나가이 가후는 직업여성, 즉 게이샤나 카페 여급을 다루며 그들이 상징하는 과거의 애상과 더러움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주로 묘사했다. 이런 가후를 두고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가장 육욕적이고 은밀한 이야기를 가장 탈속적인 태도로 쓰는 작가”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발표하는 작품마다 연이어 발매금지를 당한데다 대역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사회적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가후는 문학가로서 무력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스스로를 통속소설가의 위치로 끌어내리기에 이른다.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가 본디 추구하던 향락주의와 어우러지면서, 나가이 가후의 작품은 주로 화류계를 배경으로 에도의 정서를 묘사하는 과거지향적인 성향으로 굳어졌다.
시대에 따라 나가이 가후 작품의 테마와 경향은 변했지만 일관된 정신은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과 과거로의 회귀, 쾌락주의였고, 그는 이러한 정신을 은자적, 나아가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담아냈다. _정병호(옮긴이)
『강 동쪽의 기담』에는 나가이 가후의 이런 문학 세계를 잘 알 수 있는, 도쿄 변두리를 배경으로 시대적 변화에 물들지 않은 과거의 정취를 그린 「강 동쪽의 기담」과 사라져가는 에도 정서를 묘사한 「스미다 강」,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을 담은 「불꽃」 세 편이 실려 있다.
평생에 걸쳐 추구한 과거지향적 아름다움, 「강 동쪽의 기담」
「강 동쪽의 기담」은 나가이 가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주제, ‘과거지향적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이야기의 배경인 다마노이는 도쿄의 변두리 지역으로, 아직 과거의 허름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곳에서 화자인 ‘나’가 만난 오유키 역시 번화가 카페 여급들과는 달리 전통적인 머리 모양을 하고 기모노를 입으며 아직 순수함을 지닌, “구풍(舊風)에 속”하는 여자다. 겉모습만 화려할 뿐 온갖 위선과 추악함으로 가득찬 중심가를 벗어난 곳에 자리한,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적막하고 허름한 변두리 사창가. 가후는 이 다마노이와 오유키라는 몸을 파는 여성을 통해 시대적 흐름에 침범당하지 않은 세계를 만들고, 사라진 과거의 환영을 재현하고자 했다. 그 세계 안에서 시간은 격변하는 시대와 달리 느리게 흐른다. 피난처와도 같은 그곳에서 작가 자신이 소중히 생각하는 정서와 가치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강 동쪽의 기담」은 나가이 가후의 화류계를 향한 애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며 동시에 그의 작품 중 정점에 도달한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과 프랑스 등 여러 나라에 번역되어 사랑받은 작품이며,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서도 「강 동쪽의 기담」이 언급된다.
“오유끼……좋은 이름인데……? 나가이 가후의 여인이로구나.”
(…)
‘오유끼’는 그 허무한 냉소주의자 나가이 가후의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였다.
(…)
나가이 가후는 세기말 문예에 도취되어 그 아름다움을 글로 썼다. 그는 에도 예술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으며, 향락 퇴폐의 풍조를 문단에 불러일으킨 사람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의 향락주의는 인생에 대한 소극적인 반항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너지고 스러지는 것들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무너지게 하고 스러지게 하는 것들에 대한 무력한 증오가, 차라리 그를 냉소적인 시인으로 만들고 말았을 것이다. _『혼불 2』 (한길사, 1996)
사라져가는 에도 정서를 향한 갈망, 「스미다 강」
「스미다 강」은 나가이 가후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인 ‘에도 정서 지향’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아들이 학교 교육을 받고 출세하기를 바라는 어머니와는 달리, 아들은 게이샤가 된 첫사랑을 그리워하며 가부키 극장의 배우가 되는 꿈을 키운다. 1900년대 초반 전통 문화와 서양 문물이 공존하면서 생기는 갈등 구조 안에서, 작가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분명하다. 아직 고풍스러움을 지니고 있는 스미다 강과 주변 거리, 그리고 소박한 애정과 전통 기예에 대한 소망을 품고 있는 순수한 소년의 모습이다. 강압적이고 획일화된 근대적 욕망은 자유롭고 애상 가득한 전통 예인(藝人)의 마음을 짓누르고 괴롭힌다. 이는 고급관료였던 가후의 아버지와 실업가의 길을 버리고 글쓰기를 선택한 가후의 관계를 연상시킨다.
제목에서도 가후가 추구하는 에도 정서를 엿볼 수 있다. 하루가 다르게 서양을 모방한 근대도시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에도 정서가 가장 많이 남아 있던 곳이 바로 스미다 강과 그 주변 거리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가이 가후는 ‘스미다 강’이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작품을 썼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작품에서 스미다 강과 그 주변 지역을 무대로 삼았다.
문학가로서의 자기 반성과 근대 문명에 대한 비판, 「불꽃」
소설보다는 수필에 가까운 「불꽃」은 나가이 가후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불꽃」의 화자는 전승기념일을 맞아 불꽃놀이가 한창인 날, 홀로 방관자 혹은 이방인의 위치에 서서 자신이 살고 있는 일본에 대해 술회한다. 그에게 이런 축제는 에도 시대 때부터 순수하게 전승해온 소박하고 인정 넘치는 제례나 행사와는 달리, 서양을 모방하여 새롭게 만들어낸 현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여러 정치적 책략이 숨어 있는 소동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이 작품에는 나가이 가후가 왜 현실을 등지고 통속작가로 자칭하게 되었는지 해명해주는 내용이 나온다. 1910년 말 대역 사건(大逆事件)이 일어났다. 가후는 침묵해서는 안 되는 이런 사상 문제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무력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의 문학을 통속소설가들의 세계로 끌어내리고자 했다. 사회에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며 근대 문명의 이방인이 되어 현실에서 유리되어가길 선택한 것이다. 그런 가후가 마침내 자리잡은 곳은 도쿄 안에서도 가장 밑바닥인 사창가의 사람들 곁이었다.
소품이라고는 하지만 「불꽃」은 굉장히 중요한 작품으로, 가후가 자신의 삶의 방식, 가치관을 표명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_후쿠다 가즈야(문예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