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시인 이명찬의 첫시집『아주 오래된 동네』가 출간되었다.
등단 후 7년여 만에 첫시집을 엮은 그가 "남보다 뒤처져 그러나 오래 노래하리" 라고 자서에 밝히고 있듯이 이 시집은 오랜 수련을 거치면서 키운 투철한 시정신의 산물이다. 퇴행의 현실과 역사에 온몸으로 부딪쳐 맞섰던 청춘의 격정적인 몸부림을 고스란히 담으면서 생의 찬연한 기쁨을 노래하고, 혹독한 자기반성의 칼날을 세워 오랜 세월의 지층에서 건져올린 인생 의 깊은 의미를 탐색하는 것, 그의 시 전편을 장악하고 있는 과거와 현재 속의 꿈과 열정 그리고 회한과 좌절은 결코 예사롭지 않은 세계를 보여준다.
과거와 현실이 언어와 감정의 미세한 그물망으로 형상화된 시편들
이명찬의 시에서는 청춘의 스러짐조차 아름답다. 문학평론가 신범순의 지적대로 그의 시는 "우리 시대의 순수한 고뇌하 는 젊음의 편력에 대한 기록물"이다. 한 시대의 격렬한 흐름 속에서 부대끼고 뒹굴던 순수한 젊음의 내출혈, 거기에서 자신 의 영혼이 민감하게 감지했던 감정의 무늬들이 삶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어 비극적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세계와 자아, 현실과 역사에서부터 일상의 가깝고 먼 여러 경계들까지 두루 걸쳐 있다. 그의 시는 꿈과 열정, 분노와 회한, 그리고 삶의 애증을 민감한 젊음의 촉수로 어루만져 격정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담아낸다. 그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욕망을 드러낼 때조차 그 것은 인생의 신산함을 돌보는 것이며 현실에 대한 통찰력 있는 탐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와 현실이 언어와 감정의 미세한 그물망으로 엮이며 형상화되는 것, 그것이 이명찬 시의 뼈대이다. 과거란 이념으로 무장 한 젊음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겪는 좌절과 방황일 것이며, 현재란 먹고사는 문제가 앞서는 견고한 일상일 것이다. 그의 시는 과 거의 열정과 꿈이 축축한 일상의 바닥과 뒤엉키며 빚어내는 자기반성과 현실 탐구의 결과물이다. 회상의 서정성이 냉엄한 현실 인식과 맞물려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시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와이셔츠를 다리며」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 빼어난 시는 회한과 추억과 상실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욕망이 현실적인 일상의 힘과 부딪치면서 야기되는 정신의 주름을 인상적으로 묘사하 고 있다. 깊은 곳에 뚫려 있는 자아의 구멍이 주름진 일상 앞에서 반성적 사유의 경지로 나아가는 것은 시인에게 고통임과 동시 에 신생의 순간이기도 하다.
추억과 동경과 쓸쓸함과 애증,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를 담은 시집
한편 이명찬은 여행의 형식을 통해 특출난 시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의 시에서 서울의 여러 동네 이름과 전국 각지의 여행처 가 등장하는 것으로도 알 수 있는 바, 그것은 다양한 삶의 표정을 읽어내는 순레자의 태도를 통해서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 보는 성찰의 형식이다. 특히「겨울, 을숙도에서」는 담담한 서정적 어조 속에 막막한 세월의 뒷편으로 밀리는 자신의 슬픔을 아 름답게 형상화한 주목할 만한 시이다.
삶의 중심에 가로놓여 있는 추억과 동경과 쓸쓸함과 애증, 이명찬의 첫시집『아주 오래된 동네』는 우리에게 바로 그러한 것 들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시들로 채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