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어디로 가세요?
2015년과 2016년 연이어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전시 작가로 선정되면서 독특하고도 개성적인 매력을 확인받은 바 있는 작가 모예진의 창작 그림책이 출간되었다. 『어디로 가게』라는 재미난 타이틀의 이 그림책은 여행자들에게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버스표를 파는 ‘어디로 가게’의 주인, 묘묘 씨의 이야기다. 날마다 수많은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승객 수에 맞추어 꾹꾹 확인 도장을 찍어 주는 묘묘 씨는 정작 여행을 떠나 본 일이 없다. 어디로 떠나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묘묘 씨에게 여행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여기저기로 떠나는 걸까. 묘묘 씨가 우리에게 가볍게 던진 질문은 쉬이 잊힐 만한 것은 아니다.
오늘은 아무도 떠나지 않는 걸까?
차를 한잔 따르고 라디오의 볼륨을 맞추고 전등을 켠 뒤 셔터를 올린, 여느 때와 똑같은 날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어디로 가게를 찾는 손님이 없다. 하늘이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의아한 마음에 부스 밖을 내다보던 묘묘 씨는 길 건너편에 문이 하나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상하네, 도대체 언제 생긴 거지?”
언제나 이곳에 앉아서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손님들을 맞았지만 처음 보는 문이다. 이런저런 벽보가 붙기도 하고 지나가던 강아지가 쉬를 하기도 하고 낙서가 생겼다 지워지곤 하던 담벼락이지만 문은 없었다. 궁금한 마음에 묘묘 씨는 가게 밖으로 나간다. 손잡이를 당기자 그곳은 거대한 모래언덕 위.
아주 깜깜하고 아주 눈부신 여행
어리둥절한 채로 앞서 가던 이들을 따라 걸으며, 묘묘 씨의 갑작스런 여행은 이어진다. 손 끝에 닿는 모래알의 감촉, 부드럽고 짭짤한 바닷바람, 따스한 태양의 온기와 사람들의 웃음소리. 해변에 남은 나무배에 올라탄 묘묘 씨는 바다 한가운데로 천천히 나아간다. 한참을 떠가던 묘묘 씨의 귓가에 문득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방이 물뿐인 망망대해에서 어떻게?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묘묘 씨는 바닥에 있던 담요를 들춘다. 눈앞에 나타난 또 하나의 문. 그 너머엔 또 어떤 광경이 펼쳐질까.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
작가 모예진의 문장은 담담하고, 과감하면서도 상쾌한 색채의 구성은 보는 이에게 청량감을 선사한다. 인물들의 걸음걸이에 군더더기가 없어 경쾌하게 책장을 넘기게 되지만, 구석구석 숨겨진 귀엽고 작은 이야깃거리들이 또 손을 붙든다. 묘묘 씨의 책상에 놓인 물건들, 어디로 가게에 찾아오는 손님들의 면면, 시간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마을의 풍경, 모든 것들이 우리들의 상상을 자극한다.
모예진은 전작 『그런 일이 종종 있지』에서, 기이한 사건들과 무덤덤한 주인공 구야 씨를 대비시키며 조용하면서도 팽팽한 감정의 선을 밀도 있게 보여 준 바 있다. 지금 SNS를 통해 연재 중인 <문래빗자루> 프로젝트는 누구에게나 있는, 이사할 때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상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선뜻 버리기는 힘들지만 희미한 기억을 담은 물건들을 맡아 주는 곳이라는 설정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가 모예진은 이처럼 소소하면서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끄적인다. 『어디로 가게』 역시 그 참신함을 인정받아서, 출간 전 2018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콘텐츠 제작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책의 마지막 장 끄트머리에는 어디로 버스 승차권이 한 장 놓여 있다. 날짜와 행선지가 비어 있는 버스표다. 누구든 집어 어디로든 떠나면 된다. 이제 여행을 시작해 보자.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는 어떻게 결정할까요?
나의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나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시간이 나의 세계를 연결하는 문일 수도 있고
문 너머에서 어떤 장면을 발견할 수도 있지요.
『어디로 가게』에서, 당신의 장면을 떠올릴 수 있길 바랍니다." _모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