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 기쁨들을 꼭 붙잡아야만 해!
작은 목소리의 힘, 신현이 동화 『아름다운 것은 자꾸 생각나』
겨울의 찬 기운을 발갛게 덥혀 줄 신작 동화가 출간되었다. 신현이의 중학년 장편 『아름다운 것은 자꾸 생각나』. 비와 잉어, 신발 없는 방, 병원, 받아쓰기, 소나무, 사랑을 식혀 주는 탕약이 등장하는 이 동화는 우리가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려 깊은 문장들이 불러 주는 이름들을 찬찬히 짚어 가다 보면 우리는, 우리를 정말로 움직이는 것은 크고 강한 무언가가 아니라, 고양이의 털처럼 가볍고 빗방울처럼 아주 작은 것들이라는 사실과 마주하게 된다. 또한 그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거니와 쉽게 달아나 버리기에, 손끝에 힘을 주어 꼭 붙들어야 한다는 것도.
콕콕, 심장을 두드리는 작은 목소리
“생기를 되찾은 잉어는 놀랍도록 아름다워졌습니다. 활짝 웃는 것 같았습니다. 홍자 선생님은 아름다운 잉어에게 홀딱 반해 버렸습니다. 마음을 빼앗겨 버린 것이었습니다. 사랑은 순식간에 생겨났습니다.”
홍자 선생님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사랑에 빠지게 되면 다른 이의 속말이 들리는 것이다. 그것이 괴로운 일임을 알게 된 때부터 홍자 선생님은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별 모양의 목걸이로 다른 존재의 속말을 막아 왔다.
나영이는 깃털처럼 걷는다. 하루 종일 일하며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엄마는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고, 나영이는 엄마를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어떨 때는 정말 깃털이 되어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서 당나귀 인형 마리아를 꼭 끌어안는다. 혼자 날아가는 것보다 마리아와 함께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다.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가만히 기다리는 아이, 보경이는 나영이의 단짝이다. 오늘은 병원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엄마는 내일부터 하교 후에 보경이를 스피치 학원에 보내기로 했다.
아침부터 분주히 비가 오던 어느 날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홍자 선생님이 다리를 다친 나영이네 반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교실에 들어선 것이다. 결석한 보경이의 빈자리에 앉은 홍자 선생님은 깜짝 놀란다. 별 목걸이를 걸었는데도 들려오는 속마음의 주인을 발견한 것이다.
자꾸만 생각나는 아름다운 것
“홍자 선생님은 아까부터 아기 손가락처럼 작고 부드러운 것이 자꾸만 심장을 콕콕 찌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은 심장 하나가 자신의 심장에 몸을 기대고 파닥파닥 뛰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별 목걸이의 방해를 뚫을 만큼 강렬했던 것은 마지막 수업 시간, 홍자 선생님이 불러 준 받아쓰기 문장에 대한 나영이의 궁금증이었다. 6번, 잉어는 아름답습니다. 그 문장은 나영이에게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 같았다. 아름답다는 게 어떤 걸까, 예쁘다는 말과 같은 뜻일까, 잉어를 한 번만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나영이는 갈등한다. 그 마음을 알아챈 홍자 선생님이 자기 귀를 가리키자 나영이는 용기를 낸다. 재빠르게 선생님의 어깨를 짚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인 것이다. “잉어 보러 가도 돼요?” 홍자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영이의 온몸은 기쁨으로 가득 차오른다.
다정한 그 마음들을 위하여
나영이가 잉어를 보러 혼자 가지 않고 오늘 학교에 못 온 보경이와 함께 가기로 마음먹은 순간, 고양이 냠냠이가 두 아이를 처음 맞이하는 순간, 마침내 잉어를 만나 “히야!” 하며 감탄하는 순간, 뒤늦게 돌아온 선생님이 두 아이가 남긴 편지를 읽는 순간의 갈피마다 묻어 있는 것은 떨림이다. 작가는 탁월한 감각으로 그 떨림을 읽어 내 더없이 다정한 문장으로 우리에게 전한다. 화가 김정은의 맑고 수더분한 필치는 인물들 내면의 무늬를 편안하게 담아낸다.
아동문학평론가 김지은은 「여린 목소리의 힘」(『거짓말하는 어른』, 문학동네, 2016)에서, “말이 없어지는 우리 아이들 가슴속에서 얼마나 많은 혼잣말이 자라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진 바 있다. 말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어떤 소리조차 내고 싶지 않은 이유와 함성으로는 정리할 수 없는 속생각과 현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현장에 주목한 것이다. 동화에서 여린 목소리의 주인공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그들의 독립을 지켜보고 격려하기엔 너무 각박하고 어수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 때문이다.
아이가 자라는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악스럽게 속사정을 캐묻거나 여기라고 또 저기라고 잡아끄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이루어지는 작은 목소리들의 외롭고 또한 단단한 독립을 지지해 주는 일임을 이 작품은 스스로 말하고 있다. 비눗방울처럼 위태로운 아름다운 순간들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일어나는 나와 우리 안의 유의미한 변화. 이야기를 닫으며 마침내 별 목걸이를 걸지 않기로 결심한 홍자 선생님의 마음은 우리 시대 어린이문학의 소명을 선명하게 비추어 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