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아이들과 나란히 날면서 부르는 노래, 동시는 지상의 어떤 노래보다 긴요합니다. 일상의 사물과 현상과 소리를 어떤 감각으로 어떻게 느끼고 어떤 말로 그려 내는가를 예술로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몬다가 자신이 원하는 소리가 뭔지를, 자신이 왜 그토록 날고 싶어 하는지를 깨닫는 결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집니다. 신기하고 엉뚱한 앨리스적 세계, 인과관계가 정교하지 않은 수수께끼와도 같은 이 연작시의 시공간을 즐기는 멋진 경험이 우선이니까요.
_이상희(시인, 그림책 작가)
우리는 몬다를 만난 적이 있어요
몬다는 날고 싶은 수탉. 시집을 펴든 우리는 “달개비처럼 파란 바다를 건너 덩치가 커다란 바위산을 넘어 푹신한 늪을 지나” 몬다가 사는 물컹팔랑 마을로 초대된다. 달개비 파랑으로 머릿속을 씻어내고, 큰 바위산 같은 현실을 가뿐히 뒤로하고, 푹신한 늪을 한 발씩 딛어 감각을 깨우며 도착한 물컹팔랑 마을. 그런데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몬다는 이 마을을 떠나겠다고 말한다. “숲에는 물고기가 헤엄치고 개울가에는 노릇노릇 익은 소시지가 부들처럼 꽃혀 있”는, 때로는 하늘이 “별꽃과 양지꽃으로 짠 조각보처럼”(「수탉 몬다의 여행 1」) 보이는 아름답고 즐겁기만 한 이 마을을 왜? 이내 우리는 몬다를 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모두 몬다를 만난 적이 있다. 지금 앉은 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순간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두의 마음속에서 힘 있게 홰치던 볏이 높은 수탉.
푸다다 퍽퍼버벅, 이만큼 다 하마 땅이다
『수탉 몬다의 여행』은 1996년 계간 『현대시사상』으로 등단하고 2006년 『코르셋을 입은 거울』, 2016년 『나는 커서』 두 권의 시집을 펴낸 김현서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김현서는 2007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다시 한번 등단하며 동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여러 지면을 통해 꾸준히 동시를 발표해 왔고, 2014년에는 「하마똥」으로 한국안데르센상을 수상하기도 하며 쌓아 온 시인의 시간이 비로소 몸을 입고 아이들에게 건네진다.
해설을 쓴, 시인이자 그림책 작가 이상희는 이를, 시인이 “세상 어떤 존재와도 나란히 함께 날 수 있는 적정 고도를 발견한 존재”로 거듭난 모습으로 묘사한다. 과연 동시집 『수탉 몬다의 여행』은 찬란하고 새로운 감각으로 가득하다. 「수탉 몬다의 여행 1」부터 11까지 연작시 열한 편으로 이루어진 2부는 김현서 동시만의 색깔과 이상향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 마을에서 저 마을, 책 속과 책 밖, 동시의 안쪽과 경계 저 너머의 세계까지 가벼운 걸음으로 드나드는 과정은 읽는 이의 흥을 고취한다. 상투성과는 가장 먼, “푸다닥 퍽퍼버벅”(「하마똥」) 돌리는 만큼 넓어지는 영역을 마음껏 누비는 경험이다.
얘들아, 문은 이미 열려 있어!
헉헉
헉헉
운동장을 달리면서
아빠가 하는 말
“내가 너만 할 땐 쌩쌩 날아다녔어.”
운동장 가운데선 형들이
뻥~ 뻥~
공을 차고
모이를 찾던 비둘기는
구구구구구구구
웃으며 날아간다
_「아빠는 뻥쟁이」
특별한 설명 없이 웃음을 자아내는 자연스러운 시인의 솜씨는 꽁꽁 뭉쳐 있던 마음들을 열어젖힌다. “달달 달콤한 사탕// 얄얄 얄미운 사탕”(「사탕」) 동글동글 구르는 리듬과 위트는 동시를 읽는 본연의 재미를 충실히 실어 나른다. “기분 좋게/ 바람 부는 봄날” 흔들리는 아카시아가 “누구랑 싸웠는지” “흰 주먹 불끈 쥐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양으로 보이는 오늘의 마음(「아카시아」), “콧등에/ 손등에/ 발등에/ 뚝 뚝/ 떨어지는 빗방울 맞으며/ 놓고 온 가방 찾으러 학원” 가는 아이의 마음을 “가르랑 가르랑 /거리를 떠도는 고양이 울음소리”로(「고양이는 나를 보고 뭐라 할까?」) 위로하는 시편들은 푹신한 구름 같은 안전망이 되어 준다. “줄넘기/ 기차/ 도로/ 수업 시간/ 엄마의 잔소리/ 개구리의 겨울잠/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내 생각”(「30cm 자보다 긴 것」). 연쇄하며 확장되는 사색의 공간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주고 싶은 선물일 것이다.
내 얘기 좀 들어 줄래?
『수탉 몬다의 여행』에 크나큰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은 화가 홍지혜의 그림들이다. 유리처럼 맑은 햇빛이 쏟아지는 트레바리 마을의 긴장감, 뭐든지 까먹게 되는 띠끄야야야 마을에서 만난 말코손바닥사슴의 위용, “에취! 에취!” 재채기할 때마다 따개비의 입에서 직선으로 튀어나오는 못된 노랫소리, 콩노굿바람 마을 차란차란호텔의 분주한 분위기. 동시로서는 다소 낯설고 실험적인 열한 편의 연작 형식이 환상적인 서사로 매끈하게 엮일 수 있었던 데에는 다양한 캐릭터를 창조하고 상상의 물꼬를 열어 주는 일러스트가 알맞은 공헌을 했다. 대담한 색채와 표현 방식으로 한 권의 동시집이 완성되기까지 집요한 고민의 시간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김현서 시인은 동시집의 첫머리에, 이 동시집이 읽는 이를 잠시 붙들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밝혀 두었다. 바람이 눈꽃이 강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사려 깊은 시인의 귀와 자유로운 화가의 손을 빌려 떠나게 될 이 여정을 기대해도 좋다. 당당한 걸음으로 곁에서 걷는 수탉 몬다와 함께.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기차가 될 때까지 내버려두어도 좋은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