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는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을 수리하는 일이다
빛, 축, 터, 방, 마당, 시선, 나무, 바람, 어둠을 수리해
낡고 허름한 집에 새 숨을 불어넣는 건축가 김재관
통념을 뒤집어, 집수리에 사람과 인문학을 담다
집은 사람의 삶을 담는 공간이다. 우리의 생활은 집의 구조, 크기, 실용성 등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 낡고 좁은 집을 떠나 쾌적하고 넓은 집에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은, 투자 혹은 투기가 목적이 아닌 바에야, 당연하다. 인간 삶의 기본 조건이기에 그렇다. 그러나 오랜 세월 살아온 집도 나이가 들어 낡고 허름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재개발, 재건축에 밀려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사는 동네의 지형도, 도시의 지형도, 거기 사는 사람들의 삶도 밑도 끝도 없는 재개발에 떠밀려 끊임없이 변해간다.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삶의 공간을 수리해가며 살아가는 일은 대한민국처럼 끊임없이 재개발이 이어지는 나라에서는 웬만해선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러나 이것은 그대로 두어도 괜찮은 일일까. 건축가 김재관이 잘나가는 건축가에서 집수리업자로 전향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쉼 없이 신축 건물을 지어나가는 일이 아닌, 시공간의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옛것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가는 집짓기. 즉, 김재관의 집수리는 집값과 유행에 따른 증축이나 리모델링과는 다른 개념을 갖는다. 건축가 김재관은 이를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집수리라 부른다.
수리는 집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라디오나 시계도 수리하며 옷, 가방, 자동차, 선박, 동네와 국가도 수리한다. 비가 새면 ‘지붕 수리’를 하고 둑이 무너지면 ‘밭둑 수리’를 하는 것처럼 대상이 집이면 ‘집수리’가 되는 것이다. 집도 다시 나누면 물, 길, 빛, 축軸, 터, 뼈, 방, 켜, 층, 마당, 시선, 나무, 바람, 허虛, 어둠, 태 등으로 세분되는데, 여기에 수리를 합하면 물의 수리, 길의 수리, 빛의 수리, 축의 수리, 터의 수리, 뼈의 수리, 방의 수리, 켜의 수리, 층의 수리, 마당의 수리, 시선의 수리, 나무의 수리, 바람의 수리, 허의 수리, 어둠의 수리, 태의 수리가 된다. 그렇다면 물, 길, 빛, 축, 터, 뼈, 방, 켜, 층, 마당, 시선, 나무, 바람, 허, 어둠, 태는 왜 수리를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집수리 자체라기보다는 수리된 집에서 살게 될 인간의 삶을 수리하려는 것이다.
_본문 15~16쪽
우리가 몰랐던 집수리 현장의 생생함과 이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다
이 책에는, 건축에 관한 여타의 책들과 다르게 집수리 현장을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담겼다. 현장의 장인, 기술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집을 둘러싼 동네 이웃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집수리의 구체적인 현실을 유쾌하게 재현해 보여주는 이 책은, 그 어디서도 알 수 없었던 집에 관한 생생한 지식을 전달해주고 있다. 포복절도할 만큼 유쾌하지만 더러는 코끝 찡한 김재관식 스토리텔링은 건축이란 것이 결국 구체적인 사람의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다는 것을 절로 깨우치게 한다.
건축가의 미학적 욕망보다는 그 건물에 사는 사람의 삶을 먼저 바라보는 실용적인 정신, 시공할 수 없는 설계도면은 더이상 그리지 않는다는 현장성, 인력시장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집수리장이의 치열한 하루하루는 폐가나 다름없는 집을 말 그대로 ‘변신’시키고야 만다. 건축적 심폐소생술이라 부를 만하다.
나는 목수다. 나는 요즘 집수리에 재미를 붙였다. 이 말에서 무언가 촌스러움을 느끼거나 동네에서 흔히 보던 ‘집수리’ 간판을 떠올린다면 내가 말하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내가 하는 일 역시 여느 집수리장이처럼 인부들의 숫자를 헤아려 점심밥을 시키고, 삼립빵과 컵라면의 가격 차이를 따져 새참을 준비하고, 내일 사용할 벽돌을 미리 주문하고, 새벽 인력시장에 기별해 젊은 사람이 아니면 되돌려 보내겠다며 눈을 부라리는 일이다.
_본문 10쪽
한 사람, 가족, 동네의 역사를 보존하고 오래도록 살아 숨 쉬게 하는 집수리
책에는 총 다섯 채의 집수리 과정이 담겼다. 제각각의 긴 사연을 품은 오래된 집들은 저마다의 문제들도 가지고 있다. 그 문제로 인해 그곳에서 더이상 살기를 꺼려하는 이들도 있지만, 문제를 해결해 그곳에서 계속해서 살아가려는 이들도 있다. 이런 때에 필요한 것이 집수리다. 이사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건축가 김재관은 집이 지닌 문제들부터 살핀다. 주변의 높은 건물들로 볕이 들지 않게 된 어두운 집, 산 밑의 높은 지대에 지어진 낡은 집, 안방만 밝은 어두운 남향집, 잡동사니로 복잡해져 무용지물이 된 마당, 유행이 지난 눈썹지붕은 김재관의 날카로운 관찰 속에 하나하나 해결책을 찾아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관찰과 분석은 이전과 같은 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몰라보게 집의 구조와 쓰임새를 바꿔놓는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봉착한 난관들을 살피기에 가능한 일이다. 집과 인간을 연결해 최대한의 아름다움과 실용을 구현하는 건축가 김재관의 집수리는, ‘도시 재생’이라는 화두에도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진다.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남향집에서 살 수 있다’는 남향집에 대한 신뢰는 옳을까? 남향집은 겨울이면 태양의 고도가 낮아져 빛이 깊이 들어오고 여름이면 그 반대가 되어 실내공간을 쾌적하게 만드는 합리적인 방위각이다. 그렇다고 볕이 골고루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거실, 안방이 남쪽을 차지하면 나머지 공간들은 다른 곳에 배치될 수밖에 없으므로 결국 어두운 계단실, 어두운 건넌방, 어두운 부엌, 어두운 창고가 만들어진다. 그것은 선택이라기보다 밝음으로부터 소외된 결과일 뿐이다. 남향의 미덕보다는 그로 인한 환경적 우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_본문 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