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니아의 비열한 현실을
신화적 단계로 끌어올린 작품!
오늘날 카다레의 작품들은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소설의 형식을 띤
거대한 신화로 분류된다. _르피가로
알바니아판 ‘의사들의 음모’. _르몽드
알바니아의 ‘문학 대사’ 이스마일 카다레의 2009년 발표작 『잘못된 만찬』은 이탈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일의 침략을 겪은 후, 제2차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선택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나라의 동요를 그린다. 혼란스러웠던 알바니아의 비열한 현실을 풍자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알바니아에 군대를 이끌고 들어온 독일군 대령과, 알바니아의 손님맞이 관습법 ‘베사’를 근거로 위험을 무릅쓰고 독일군 대령과 그의 장교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한 대령의 옛친구인 알바니아인 의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후 이날의 만찬이 엄청난 사건으로 번져가면서 급변하는 알바니아의 정세, 당시의 혼돈이 유머러스하고도 신랄하게 묘사되는, 카다레의 독특한 문학세계가 뚜렷이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누가 내 척후병들에게 총을 쏘았지?
죄인들을 내놓으면 인질들을 당장 풀어주지.”
1943년 9월, 이탈리아가 연합군에 항복하고 알바니아는 이탈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그 무렵 그리스를 점령한 독일 군대는 알바니아의 남부 도시 지로카스트라로 향한다. 독일 군대를 이끄는 프리츠 폰 슈바베 대령은 뮌헨 유학 시절에 만난 옛친구, 알바니아인 의사 구라메토와 해후할 꿈에 부푼다. 그러나 구라메토가 말한 알바니아의 손님맞이법 ‘베사’와 달리, 독일군이 도시 초입에 이르자 알바니아 항독 저항군의 공격이 쏟아지고, 대령이 보낸 척후병들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독일군들이 도착하기 전, 불안에 휩싸인 지로카스트라에는 정체불명의 비행기에서 수천 장의 전단이 쏟아졌다. 전단에는 독일이 알바니아를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빼앗긴 독립을 돌려주려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알바니아어와 독일어, 두 언어로 적혀 있다.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이 다른 나라에 병합되고, 지배를 받아오며 “세상사를 넓고 복합적으로 바라보는 데 길들어 있”던 지로카스트라에도 혼돈이 퍼진다.
내가 명령을 받았을 때…… 기갑연대를 맡아 알바니아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처음 떠오른 건 너였지. 이건 알바니아를 점령하려는 게 아니라 영원한 제국에 병합시켜 구하려는 거야. 그리고 당연히 가장 먼저 내 형제인 너를 찾고 싶었지……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떠나왔어. 네가 그토록 내게 자주 얘기했던 베사의 나라로 말이야…… (46~47쪽)
독일군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척후병들이 알바니아 저항군의 공격에 희생되자 폰 슈바베 대령은 그에 대한 복수로 알바니아인들을 무자비하게 인질로 잡아들이고, 그들을 시청 광장에 묶어놓은 채 기관총을 겨냥한다. 그리고 뮌헨에서 만난 옛친구 구라메토 박사를 찾아가, 구라메토가 유학 시절 자주 이야기했던 알바니아의 손님맞이법 ‘베사’에 대해, 알바니아어로 ‘신의’라는 뜻의 손님맞이 관습법 ‘베사’를 어긴 알바니아의 공격에 대해 따져 묻는다. “배신자 구라메토, 네가 말한 베사의 나라 알바니아는 대체 어디 있는 거야?”(47쪽)
구라메토는 더없이 차분한 태도로 독일군을 공격한 건 자신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달라. 난 알바니아가 아니야. 프리츠, 네가 독일이 아니듯이 말이야.”(49쪽)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이 지금까지 이야기한 관습 ‘베사’에 따라 오랜만에 만난 옛친구이자 독일군 대령, 그리고 그의 장교들을 저녁식사에 초대한다.
확실히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의 불행을 예고하고 있었다. 이미 온 도시 사람들이 그를 배신자로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훗날, 며칠, 몇 계절, 몇 해가 지나고, 그리고 그가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은 그를 배신자로만 기억할 터였다. (56쪽)
침략해 들어온 군대를 저녁식사에 초대하는 일, 분명 이 사실이 알바니아 시민들에게 밝혀지면 구라메토의 처지는 위태로워질 터였다. 부담스러운 식사가 될 것이 분명했다. 그는 이 상황을 타개할 단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 식사 자리에서 폰 슈바베 대령에게 인질들을 풀어달라 요청한다. 그러자 폰 슈바베 역시 척후병들을 죽인 이들을 고발하라고 맞서며 이 저녁식사 자리의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진다.
이날의 만찬은 미스터리에 싸여 있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다른 많은 작품들에서처럼 『잘못된 만찬』 역시 미스터리에 싸인 강렬한 사건과, 그 사건에서 파생된 여러 이야기들을 그려낸다. 1943년 9월 16일, 오랜 두 친구, 혹은 침략국 군대 지휘관과 협상 대표 사이의 만찬이었을 수도 있는 그날의 사건을 통해 알바니아인 인질은 전원 풀려난다. 심지어 인질 가운데는 유대인 약사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풀려난 사실만 드러날 뿐, 석방 과정과 배경 등은 여러 군데 빈틈으로 남아 있다. 만찬 내내 구라메토의 집에서 흘러나왔다는 축음기 소리, 그리고 시청 광장에서인지 구라메토의 집에서인지 근원이 불분명한 기관총 소리, 만찬 이튿날 새벽 뻣뻣하게 굳어 거실에 널브러진 독일군들, 지로카스트라에 독일군의 폭격을 멈추게 한, 의문의 흰 천의 정체 등 뿌연 안개에 싸여 있는 듯했던 사건은 소설을 읽어나갈수록 퍼즐 조각을 맞추듯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대구라메토 박사, 이제 1943년 9월 16일의 만찬에 관해 묻겠소……”
이스마일 카다레가 그리는 희비극, 알바니아판 ‘의사들의 음모’
소설의 후반부에서는 어둠 속에 묻히는 듯했던 그날의 만찬 사건으로 인해 구라메토가 알바니아를 비롯한 독일, 러시아 등 각국의 판사들에게 끈질긴 심문을 받는 과정이 그려진다. 1953년, 스탈린주의자들의 대대적인 숙청과 ‘의사들의 음모’ 사건이 일어났던 이 시기에 구라메토는 1943년 공산주의자를 제거하려는 세계적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알바니아 판사 샤코 메지니는 스탈린의 권력에 편승하고자, 구라메토에게 거짓으로 이 음모에 가담했다는 자백을 종용하기까지 한다.
구라메토는 결백을 증명하기 쉽지 않다. 자신의 친구인 줄만 알았던 폰 슈바베 대령은 이미 한참 전 사망했음이 밝혀지고, 실제로 만찬에 왔던 ‘가짜’ 폰 슈바베도 몇 달 전 죽어 증인으로 내세울 수도 없다. 구라메토 박사는 사형을 선고받을 것인가? 『잘못된 만찬』은 공산주의의 멍에 아래 놓인 알바니아와 살벌한 취조, 그리고 죄의 집행이라는 현대의 비열한 현실을 신화적 단계로 끌어올린다. 고문을 묘사할 때 카다레는 냉혹하고 임상적인 잔인함을 자연스럽게 옛 발칸반도의 전설들과 연결시키고, 부조리한 전제권력에 대해 기계적으로 묘사하는 장면에서는 우스꽝스러움이 느껴진다.
마지막 장까지 조각조각 드러나는 정보들을 통해 안개 속에 싸인 듯한 미스터리한 사건의 진실을 명료하게 밝혀내는 이 소설은 알바니아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 한 순간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암울한 조국 알바니아의 현실을 우화적이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카다레의 독특한 문학세계가 다시 한번 빛나는 지점이다.
◆ 언론평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정치적 선택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한 나라의 동요가 그려진다. 알바니아판 ‘의사들의 음모’. 르몽드
그의 이야기는 풍부한 상징을 잃지 않는다. 오늘날 카다레의 작품들은 현실적이고 현대적인 소설의 형식을 띤 거대한 신화로 분류된다. 르피가로
역사와 픽션이 공존하는 환상의 세계. 카다레는 늘 그렇듯 과거의 사건을 끌어와 여타의 다큐멘터리 연대기보다 놀랄 만하고 사실적인 작품을 탄생시켰다. 가디언
예리하고 통렬한 작품. 『잘못된 만찬』은 풍자의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한층 섬세하게 끌어올린다. NPR
복잡하고 흥미로운 소설. 월스트리트 저널
넋을 빼놓는 작품. 훌륭하게 번역된 유럽의 걸작. 북리스트
권력과 진실, 개인의 결백에 관한 냉혹하고도 기교 가득한 작품. 전체주의에 대한 풍자적이고 냉철한 비판. 커커스 리뷰
발칸반도의 핏빛 역사, 섬세한 리얼리즘으로 포장된 암울한 전체주의에 관한 묘사.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유착된 힘, 혼란에 빠진 국가에 관해 어두우면서도 명료하게 짚어낸다. 퍼블리셔스 위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