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리 허브 선정 ‘지난 10년간 최고의 소설 Top 20’
“다 읽고 몇 주가 지나서도 끝나지 않는 꿈처럼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제니퍼 이건(소설가)
오헨리상 수상(2003) 퓰리처상 최종 후보(2012)
전미도서상 수상자이자 코맥 매카시와 플래너리 오코너에 비견되는 작가 데니스 존슨. 19살 때 시집을 출간하며 데뷔한 이후 67세에 간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소설, 시, 희곡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한 그는 “독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작품세계를 만들어간 변화무쌍한 스타일리스트”(NPR)라는 평을 들으며 미국의 가장 훌륭한 작가 중 한 명이자 “작가들의 작가들의 작가”로 꼽혀왔다. 존 업다이크는 데니스 존슨이 젊은 시절의 헤밍웨이를 연상시키는 작가라 평했고, 조너선 프랜즌은 “내가 믿고 싶은 신은 데니스 존슨의 목소리와 유머 감각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존슨이 2002년 <파리 리뷰>에 처음 발표한 『기차의 꿈』은 19세기에 태어나 20세기를 살아간 철도 노동자이자 벌목꾼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생애를 그린 소설로, 시대의 격변과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소멸되어버린 삶의 방식을 강렬하면서도 서정적으로 써내려간다. 이 소설은 그해 <파리 리뷰>에 발표된 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에 수여하는 아가 칸 상을 받았고, 이듬해 오헨리상을 수상했다. 그후 2011년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뉴요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올해 가장 사랑받은 책, <에스콰이어> 올해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12년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그해 퓰리처상은 수상작을 선정하지 않았다). 또한 2019년에는 리터러리 허브에서 뽑은 ‘지난 10년간 최고의 소설 Top 20’에 이름을 올리며 “21세기의 가장 완벽한 짧은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간결함 속에서 타오르는 서정성
한 단어 한 단어 새겨나간 생의 미스터리와 고독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1886년에 태어났다. 태어난 곳이 어디인지 부모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어린 시절 혼자 기차를 타고 새로운 가족을 찾아 아이다호까지 왔다는 것은 알고 있다. 주소가 적힌 종이를 가슴에 핀으로 붙인 채 기차를 타고 여러 날을 여행했던 것이 어렴풋하게 기억난다. 고모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그는 십대 때 학교를 그만두고 철도 공사장에서 일을 하거나 여기저기서 장작 패는 일, 트럭에 짐 싣는 일 등을 잠깐씩 하며 이십대를 보냈다. 그러다 교회에서 아내 글래디스를 만나 모이 계곡에 오두막을 짓고 살았고 얼마 후 딸 케이트가 태어났다.
1920년 여름 로빈슨 협곡을 가로지르는 철교 공사와 벌목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모이 계곡에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참혹한 현장을 목도한다. 아내와 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오두막이 있던 곳은 시커먼 폐허가 되었다. 결혼한 지 사 년도 되지 않아 아내와 딸을 잃은 그레이니어는 이후 불타버린 계곡에 다시 집을 짓고 때때로 아내의 환상을 보고 밤마다 계곡을 올라가는 희미한 기차 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안정적인 고독”에 빠져들어 대자연과 인간의 삶에 가득한 끝없는 미스터리를 경험하며, 점점 현대화되어가는 세상을 겪어나간다. 바다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태평양에서 수십 마일 떨어진 서부까지 여행한 적이 있고, 전화기로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읍내에 나올 때마다 텔레비전을 보았고, 기차와 자동차를 자주 탔고 비행기도 한 번 타봤다. 그리고 1968년 11월 어느 날 숲속 오두막에서 잠을 자다 숨을 거둔다.
가장 중요하지 않은 한 인간을 바라보는
가장 시적인 시선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했고 누구도 특별히 기억하지 않았던, 역사를 스쳐지나간 수많은 보통 사람 중 한 명이다. 젊은 시절에도 “그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그가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한 오두막에서 숨을 거둔 채 가을과 겨울 내내 누워 있어도 그를 궁금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평범한 막노동꾼의 삶은 작가 데니스 존슨의 노련한 필력과 타고난 감각을 거쳐 분절되고 재구성된 뒤 아름답고 강렬한 문학으로 재탄생한다. 특별할 것 없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리는 것만으로 작가는 빠르게 변화해가는 시대 전환기의 혼란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로버트 그레이니어’라는 한 인간은 산업화와 상업화, 그 과정에서 상실되어버린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삼차원의 메타포가 된다. 지난한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것만으로 자기도 모르게 역사라는 큰 그림과 맞닿게 되는 개인을 시적인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써 가장 개인적인 동시에 가장 역사적인 소설을 써내려간 것이다.
팔십 년이 넘는 한 인간의 생애는 방대한 분량의 대서사시로 그려도 될 만한 이야기지만, 데니스 존슨은 그 삶을 압축하고 덜어내 1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짧은 소설로 만들어낸다. 한 단어 한 단어 공들여 선택해 꾹꾹 새겨나간 듯한 문장은 꾸밈없이 간결하고, 공간적 배경이 되는 미국 서부의 황무지와 장엄한 대자연은 작품 전체에 어두우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를 드리운다. 그레이니어 생애의 대부분은 생략되거나 간단한 문장으로 축약되는 한편, 벌목과 교각 건설, 자연에 대한 디테일은 빽빽하게 살아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문장 사이사이 끼어드는 환상적이고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이다. 죽은 아내가 환영처럼 나타나 딸 케이트의 소식을 알려주고, 늑대 소녀를 만나고, 죽은 자의 저주를 생애 내내 곱씹는 초자연적이고 비현실적인 순간들이 소설에 독특한 강렬함을 불어넣는다. 자연과 인간의 삶에 존재하는 미스터리를 이야기하면서도 그것을 밝히지 않고 그대로 두는 데 이 소설의 진짜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짧은 분량과 간결한 문장 덕에 한자리에 앉아 『기차의 꿈』을 끝까지 다 읽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다 읽고 몇 주가 지나서도 끝나지 않는 꿈처럼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는 제니퍼 이건의 말처럼, 이 소설을 뇌리에서 몰아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 조용하고 짧은 소설이 이렇게까지 마음에 오래 남는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에 대해 더 많이 곱씹게 될지도 모른다. 쓸쓸하고 덧없는 어떤 삶을 이토록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낸 데니스 존슨의 탁월함에 거듭 감탄하면서.
▶ 추천의 말
마크 트웨인과 포크너처럼 존슨은 미국의 삶의 가장 어둡고 거친 심원에서 새로움을 끌어낸다. 존슨 같은 작가는 유일무이하다. 필립 로스
헤밍웨이 이후 우리 시대 가장 시적인 단편 작가. 조지 손더스
데니스 존슨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가장 뛰어난 작가 중 한 명일 것이다. 돈 드릴로
내가 믿고 싶은 신은 데니스 존슨의 목소리와 유머 감각을 가졌다. 조너선 프랜즌
우리와는 다른 차원의 글을 쓰는 진정한 거장. 제이디 스미스
이 소설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한 인간의 삶? 저주와 늑대가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이야기? 대단히 인상적인 마지막 줄에 이르러서야 아주 넌지시, 이 소설은 그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를 이야기한다. 20세기가 초래한 격변과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소멸된 특정한 방식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짧은 소설에는 결론을 짓고 문제를 해결하는 어떤 경향이 있기 마련인데 『기차의 꿈』은 그 모든 기대와 예측을 뛰어넘어, 나로서는 일종의 기이함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을, 미스터리를 선사했다. 오래도록 읽힐 강렬한 소설이다. 제니퍼 이건(소설가)
찬사받아 마땅한 훌륭한 소설. 새로운 형식과 전통을 솜씨 좋게 조화시켰고, 언어를 시종일관 아주 정교하게 사용했으며, 무엇보다 감정적으로 호소한다. 데이비드 거터슨(소설가)
21세기의 가장 완벽한 짧은 소설. 데니스 존슨은 기이하고 애수가 어린 문장으로 아주 오래전처럼 느껴지면서도 동시에 덧없이 흘러가는 듯한, 아름다움과 위험과 비탄이 깃든 세상을 그려낸다. 방대한 서사를 압축해낸 이 소설은 문명에 묶이지 않은 영혼이자,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을 겪고 홀로 극기하며 살아간 한 인간의 꿈같은 초상이다. 리터러리 허브
데니스 존슨은 분명 미국의 가장 훌륭한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는 코맥 매카시와 플래너리 오코너에 비견되곤 하지만, 사실 이런 훌륭한 작품은 어떤 비교도 필요하지 않다. 물결치듯 서서히 흘러가는 강렬한 소설. 타임스
대서사시로 쓸 만한 이야기를 짧은 소설로 유려하게 압축했다. 황무지와 고립된 장소가 가진 고딕 감성과 미국의 설화에 자연과 인간이 행한 폭력이 더해져, 독자의 마음에 오래 남을 어두운 분위기를 작품에 불어넣는다. 라이브러리 저널
데니스 존슨은 역사적 사실과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뒤섞어 한 사색적인 남자의 외로운 삶을 그리며, 자연의 끝없는 미스터리와 위험할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로 인한 혼란을 함께 이야기한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장엄함과 타오르는 서정성으로 마음을 울리는 소설. 북리스트
냉정한 리얼리즘 속에서 환영과 기적이 아름답게 출현한다. 평서문의 건조한 서술이 이어지다 갑자기 서정성이 불타오른다. 꾸밈없이 솔직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감각이 감탄스럽다. 뉴요커
이 짧은 대작을 다 읽으면 멍하고 조금 변화한 듯한 느낌이 든다. 단순함과 간결함의 힘을 보여주는 소설. 뉴욕 타임스
데니스 존슨은 로버트 그레이니어의 삶과 “안정적인 고독”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그레이니어는 ‘북서부 산에 사는 거친 사람’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평범한 남자이지만, 소설의 끝에 다다르면 독자는 이 주인공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어쩌면 처음 생각한 것보다 더 심오한 본성을 지닌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레이니어는 여든 살이 넘어서 1960년대까지” 살다 죽었지만, 한 단어 한 단어가 페이지에 아름답게 새겨진 이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그레이니어가 계속 존재하고 있음을 알 것이다. NPR
사라진 서부에 대한 송가. 로키 산맥과 자연의 장엄함을 포착하는 동시에 그 자연을 살아가는 작은 인간의 미스터리를 그린다. 이 얇은 책은 이 자체로 보석과도 같다. 만약 아직 데니스 존슨의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책이 존슨에 대한 완벽한 소개서가 될 것이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 책 속에서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석양 무렵에 본 불탄 계곡의 모습을 평생 생생히 기억했다. 맨정신으로 그렇게 꿈같은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머리 위 하늘에서는 마지막 남은 햇빛이 파스텔색으로 눈부신 광경을 그려내고, 하얀 구름 몇 점이 높이 떠서 계곡 너머의 햇빛을 받고 있었다. 이랑 모양의 다른 구름들은 회색이나 분홍색을 띠었다. 가장 낮게 걸린 구름은 부사드와 퀸의 산꼭대기에 닿아 있었으며, 하늘의 이 장관 아래에 검은 계곡이 있었다. 완전히 적막한 모습으로. 기차가 그 계곡을 지나가며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냈지만, 죽어버린 이 세계를 깨우지 못했다. 47쪽
폐허가 된 지역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심장에 고인 슬픔이 검게 변해서 정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그곳에 실제로 뭉쳐 있던 덩어리에서 정신 나간 희망이 만들어낸 모든 생각이 불에 타 사라지는 것 같았다. 48쪽
그뒤로 그레이니어는 황혼녘에 늑대 소리가 들리면 자주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힘껏 늑대처럼 울었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가슴속에 쌓이곤 하는 묵직한 것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늑대 합창단과 저녁에 이렇게 한바탕 공연을 하고 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운이 났다. 58〜59쪽
삼 년이 더 흐른 뒤 그는 옛날 집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지은 두번째 오두막에 살고 있었다. 이제는 밤에 잠도 잘 잤고, 꿈에 기차를 자주 보았다. 특히 자주 나오는 기차가 있었는데, 그는 석탄 연기 냄새를 맡으며 그 기차에 타고 있었다. 세상이 휙휙 지나갔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그 세상 속에 서 있고, 기차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이런 장면이 어렴풋이 친숙한 것을 보고 그는 어린 시절의 기억임을 알아차렸다. 때로 자다가 깨어보면 스포케인 국제철도의 기차 소리가 희미하게 계곡을 올라가는 것이 들렸다. 그가 꿈에서 들은 소리가 그것이었다. 79쪽
그토록 웅장한 풍경은 처음이었다. 그의 삶을 채운 숲은 너무나 울창하고 높아서 세상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 볼 수 없게 그의 시야를 대체로 가려버렸다. 하지만 여기서는 누구나 산을 하나씩 가질 수 있을 만큼 세상에 산이 많은 것 같았다. 그에게서 저주가 사라지고, 욕망이라는 전염병도 스르르 날아가 저기 먼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1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