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중력
BECKOMBERGA-ODE TILL MIN FAMILJ
사라 스트리츠베리 장편소설 | 박현주 옮김
유럽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소설가
사라 스트리츠베리가 그린 인간의 근원적 고독
내면의 빛과 어둠에 대한 탁월한 통찰
그리고 유약한 인간존재를 보듬는 따스한 손길
★ 2015 유럽연합문학상 수상작 ★
“사라 스트리츠베리는 『사랑의 중력』을 통해
스웨덴 현대문학 최고의 소설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
야키는 믿었다. 자신의 시선이 엄마와 아빠를 지켜줄 수 있을 거라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잠들어 있는 엄마와 아빠를 눈 속에 담아놓으면 그들을 영원히 빛 속에 머무르게 하고 다가오는 어둠으로부터 지켜낼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엄마 로네는 홀로 흑해로 떠나버리고, 아빠 지미는 알코올중독과 자살시도로 베콤베리아 정신병원에 보내진다.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아빠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던 야키는 매일 혼자서 병문안을 간다. 야키는 지미가 이 세상에 가진 전부이고, 그 세상은 울타리와 잠긴 문이 있는 병원이다. 병원이 야키의 유일한 세상이 될 무렵, 지미는 야키의 면회를 거부하고 모습을 감춘다.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야키가 또다른 세상을 만났을 때, 지미가 나타나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봐달라는 부탁을 하는데……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시험하는 도발적인 사유와 시적이면서도 깨끗한 문체, 행간의 침묵과 단어마다 깃든 섬세한 뉘앙스로 유럽 문학의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소설가 사라 스트리츠베리의 대표 장편 『사랑의 중력』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자신의 자전적 경험이 녹아든 이 작품으로 스트리츠베리는 독자와 평단 모두의 호평을 받으며 2015년 유럽연합문학상을 수상했다. 스트리츠베리는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 열여덟 명 중 열세번째 회원으로 선정되었는데, 한림원 설립 이후 최연소 회원이자 열번째 여성 회원이었다. 그러나 노벨상 최악의 스캔들로 알려진 장클로드 아르노 스캔들이 불거지고, 피해자들과 연대하기 위해 2018년 한림원 역사상 최초로 종신회원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스트리츠베리는 『사랑의 중력』을 통해 북유럽 최대 정신병원 베콤베리아의 연대기를 토대로 북유럽 복지정책의 이면을 들춰내고, 그 안팎의 사람들을 집어삼키던 어둠과 그럼에도 그들을 끊임없이 비추던 빛을 다채롭게 그려나간다. “분위기의 거장”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 작가답게 스톡홀름 외곽에 위치한 정신병원의 전경과 병원 속 인물들의 내면 풍경을 엮어가는 솜씨가 탁월하다. 세상의 주변부로 밀려나 인간의 근원적 고독을 맞닥뜨린 유약한 인간존재를 따뜻하게 보듬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세상에서 떨어져나가지 않고 발붙이기 위해,
이 세상에서 미치지 않기 위해, 나는 썼다.”
“내 인생에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어요. 하나는 비참해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죠. 나는 가끔 이건 알코올중독자와 작가 사이의 선택이라는 생각을 해요.” 세상에서 떨어져나가지 않고 발붙이는 방식으로 글쓰기를 택한 작가, 이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남기 위해 작가가 된 사람의 말이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스트리츠베리는 이미지 하나를 떠올렸다. 한 노인이 옛 정신병원 건물에 가만히 손을 대고 서 있다. 마치 건물의 심장이 여전히 뛰고 있는지 확인이라도 하듯이. 베콤베리아 정신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세상으로 내보내진 옛 환자였다. 작가는 이 이미지에서 시작해 『사랑의 중력』을 써내려갔다. 그리고 베콤베리아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며 집필을 이어갔다. 처음부터 이 작품에 자신과 아버지의 모습을 투영할 의도는 없었으나 점점 주인공 소녀는 작가 자신을, 소녀의 아버지는 작가의 아버지를 닮아갔다. 어느 인터뷰에서 스트리츠베리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의 중력』은 나의 삶과 가깝습니다. 내가 쓴 어떤 작품보다도 가깝죠. 물론 이 작품 속의 야키가 나와 똑같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나와 가장 닮은 인물이죠.”
그렇게 『사랑의 중력』은 유럽 최대 정신병원이었던 베콤베리아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자 가족에 대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갔다. 작품 속 어린 야키는 아빠를 집어삼킨 어둠이 대를 이어 내려오는지, 자신과 아빠가 닮진 않았는지 늘 궁금해하고 불안해했다. 사라 스트리츠베리 역시 아버지처럼 우울에 민감했고 세상을 바라보는 예민한 시각이 있었다. 스트리츠베리는 또다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혹은 소설가라면 제정신으로 살 필요가 없어서인지도 모르고요.”
불안과 우울, 그리고 어쩌면 거기서 기인하는, 세상 사람들이 ‘불행’이라 일컬을 가족사와 아픔이 전체 서사의 주요 소재이지만, 이 대상들을 향하는 스트리츠베리의 시선에는 불안도, 불행의 흔적도 묻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관조적이기까지 한 시선으로 가족의 역사와 베콤베리아의 역사, 가족 한 사람 한 사람과 베콤베리아의 인물들 사이를 오가며 시간과 공간과 사건과 정서를 교차시키는 파편적 서술들이 밀도 있게 누적되며 한 편의 거대하고 우아한 칼레이도스코프 같은 그림을 완성한다.
광인들의 낙원, 혹은 복지국가의 야망
어둠 속에서 복지국가가 탄생했다. 실제로는 감옥인 세계 밑바닥의 성, 불구자들과 가망 없는 자들이 침침하고 움직임 없는 빛 속에 홀로 갇히고 잊힌 채로 굴러다닐 수 있는 궁전. 태아가 피와 태아막에서 나오듯 환하게 조명을 밝힌 깨끗한 병원이 땅에서 솟아난다. 원래는 숲뿐이던 자리, 새와 나무와 하늘과 물이 있던 곳에 으리으리하고 장엄한 병원 건물이 생겼다. _본문 146쪽
그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새로운 세계, 질서와 보살핌이 만연한 곳, 그 누구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던 인간쓰레기들, 수 세기 동안 지하 우리 속에 갇혀 살아온 쓸모없고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인간들을 이제 환한 빛 속으로 데리고 나와 씻기고 줄무늬 환자복으로 갈아입힐 수 있는 곳. 이 병원을 우리 인간이 서로에게 해줄 수 없었던 모든 일을 해주는 완벽한 장소라고 이상화하기란 쉽다. 하지만 또한 두려움직하기도 하다. 이 병원은 실패, 나약, 고독 같은 우리 안의 불완전성을 나타내기도 했으므로. _본문 87쪽
1932년, 스톡홀름 외곽에 유럽 최대 규모의 정신병원 베콤베리아가 세워진다. 도시의 주거지역과는 한참 떨어진 곳, 원래는 숲뿐이던 자리에 장엄한 병원 건물이 들어섰다. 당시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스웨덴의 대도시 외곽 곳곳에 정신병원들이 세워졌는데, 건물의 모양과 색깔, 부지 구조까지 서로 똑 닮아 있었다. 가정 혹은 지역 공동체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람들과 섞여 생활하던 알코올중독자, 마약중독자, 부랑자, 자살시도자, 정신질환자 모두가 세상에서 유리된 채 병원 안에 격리되었다. 정신병원 입원환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서 나중에는 환자와 직원 수를 합치면 거의 한 마을 규모가 되는 곳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정신질환자의 증가는 단순히 시민을 대상으로 한 국가 통제의 증거일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베콤베리아의 시대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시대와 일치한다.
베콤베리아가 세워지던 시기, 사람들은 그 병원이 아픈 자들과 길 잃은 자들에게 완벽한 보살핌과 청결과 질서를 제공하고, 어떤 혼란과 가난과 굴욕도 없는 세계를 보여줄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국가 통제의 대상이 되어 병원에 갇히게 된 이들은 더이상 가족, 연인과 함께할 수 없게 되었고, 정신질환자라는 낙인은 세상 속으로 돌아가는 순간을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병원 밖의 사람들에게 정신병원은 일종의 공포였다. 언젠가 저곳으로 끌려가 갇히게 될 수 있다는 공포, 자유를 박탈당할 수 있다는 공포, 나 또한 저들과 다르지 않은 사람일지 모른다는 공포.
1980년대에 이르자 정신병원에서 제공하는 치료에 대한 비판이 일었다. 서구사회를 휩쓸고 간 탈시설화 물결의 일환이었다. 정신병원은 문을 닫고, 환자들은 그곳에서 내보내진다. 이제 환자들은 항정신병약의 도움을 받아 시설 밖에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스트리츠베리는 말한다. 그곳의 환자들은 단지 너무 빨리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과 세상의 병폐에 민감한 사람일 뿐이라고, 혹은 어떤 이유로 인해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뿐이라고. ‘다름’의 문제이지 ‘정상’과 ‘비정상’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우리를 이 땅에 발붙이게 하는 힘, 사랑
가끔은 멀쩡히 일어나서 살아갈 수 없을 것처럼 슬퍼지는 때가 있다. 어느샌가 땅에서 발이 떨어져 바람에 휩쓸려가버릴 것 같은 때가 있다. 이 세계에서 떨어져버릴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때 우리의 발을 잡고 다시 세상에 끌어내리는 것이 사랑이라는 개념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슬프게도 사랑으로 모든 걸 끌어당길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는 이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이 소설은 그런 슬픔 또한 그려낸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사랑이 약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자유롭기 때문이든,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든, 세계에서 떠오른 사람들도 우리의 사랑만은 알고 있으리라. 『사랑의 중력』은 그렇게 떠나는 사람, 남는 사람 모두를 위한 이야기이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아빠 지미의 꿈은 글을 쓰고 피아노를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파도는 그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도시에 살며 아침이면 회색 정장과 회색 가방의 남자들 무리와 어두침침한 건물에 들어가고, 저녁이 되면 다시 밖으로 뱉어내지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 삶의 권태와 절망 속에서 지미는 어머니 비타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비타는 마을에서 가장 먼저 일자리를 얻은 여자들에 속했다. 집 앞 골목을 돌아 출근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지미는 바로 그 권태와 절망을 보았다. 아버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타는 결코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그렇게 스스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지미는 비타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왜 그렇게 떠나버렸는지. 풀리지 않는 의문을 짊어진 지미는 언제나 취해 있었고, 결국 술과 수면제를 과다 복용하고서 베콤베리아에 갇히고 말았다.
이 세상과 지금의 삶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에서 발을 뗀 채 부유하거나 날개가 꺾여 아래로 떨어지고 마는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우리 모두 한 번쯤은 그런 순간들을 겪고 꿈꾸는지도 모른다. 그런 순간에 우리를 세상에 다시 발붙이게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중력이 위태로운 내면의 벼랑 끝에서 서로를 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자살충동에 시달리면서도 야키에 대한 사랑으로 결국 떠나지 않은 지미처럼, 아들 마리온의 천진한 사랑에 비로소 발아래의 세상이 굳건해졌음을 느낀 야키처럼 말이다.
책 속에서
세상은 집과 거리, 그리고 깨끗하고 단단하게 응축된 인간의 폐로 숨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안에 그를 위한 미래는 없다. 있던 적도 없었다. 피부 아래 찍힌 질병의 낙인과 함께 언제나 홀로 걸었다. 그를 제외한 모든 이에게 선명하게 보이는 낙인. _본문 12쪽
여기, 버려진 정신병원에 짐과 이 밤이 있다. 여기에는 내가 늘 거리를 두려고 했던 불가해한 것이 있었다, 잔인성과 거대한 사랑이. _본문 36쪽
나는 이 아이를 밤으로부터, 내 얼굴과 시선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 아이를 여전히 내 몸안에 품고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_본문 44쪽
“집에 가고 싶습니다.”
“집에 가면 어떨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어딜 가든 자기 불행을 갖고 다니겠죠.” _본문 97쪽
마리온과 함께한 첫날밤, 나는 모유가 검게 변해버리는 꿈을 꾸었다. 젖은 짙게 타버린 설탕처럼 흘러나왔지만 그래도 아이에게 물렸다. 그 꿈 이후로는 아이에게 모유를 먹일 수 없었다. 아이가 병에 걸릴까 너무 두려웠다. _본문 135쪽
아이에 대해서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줄곧 아이를 없애버릴 생각이었다. 심지어 병원에도 다녀왔다. 계속 진료 예약을 새로 잡았지만 차마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내게 온 무언가를 죽여버릴 수가 없었다. 새벽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 그의 등뒤로 들어갔다. 자명종이 울릴 때쯤에는 피로로 몸이 아팠다. 여자아이일까봐 너무 두려웠다. 나와 같을까봐. 마리온이 태어나자 발밑의 땅이 갑자기 굳건해진 기분이었다. 중력이 나를 지배하는 것처럼. _본문 140쪽
갑자기 한 여자가 병원 부지를 가로질러 질주하고 하얀 가운을 입은 간호사 한 무리가 그 뒤를 쫓아나와 잔디 위로 쓰러뜨린다. 우리는 그걸 보고도 대체로 신경쓰지 않지만 그런 일은 늘 있다. 다른 병원으로 보내거나 감금하거나 진정제를 놓겠다는 유의 위협. 마음대로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인데, 내가 원하는 건 머무는 것뿐이다. _본문 161쪽
"어머니의 아버지와 칼 삼촌, 아버지의 아버지는 황과 인 냄새를 풍기며 퇴근했어요. 일곱시가 되면 그들은 행진하며 문으로 들어가고, 저녁 여섯시가 되면 다시 빛 속으로 나와요. 얼굴은 검고 머리카락은 그을음이 묻어 시커멨죠. 그들이 나오는 게 보이면 우리는 마중하러 뛰어나갔어요. 나도 커서 똑같은 일을 했죠. 아침 일찍 어둠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해가 지면 빛 속으로 내뱉어졌어요.” _본문 168쪽
“아인슈타인이 했던 가장 행복한 생각이 뭔지 알아?”
“전혀 모르겠는데.”
“떨어지는 사람은 모든 법칙에서 벗어나 있다는 거야. 떨어지는 동안에는 중력을 느끼지 못하니까.” _본문 233쪽
“그저 너와 짐만 관련 있는 문제가 아니야. 새로운 세계가 우리를 새장처럼 조여와. 우리는 욕망, 마비, 공허 사이에 던져지지. 그리고 질병은 히로시마, 세계대전 같은 가장 난폭하고 괴물 같은 사건들조차 흡수해버려.” _본문 240쪽
여기는 구름과 가족, 모두가 찢어지는 곳이다. 머리 위 묵직한 하늘에서 구름들은 만나고 모이고 부딪힌 뒤 갈라져 반토막짜리 구름으로 계속 살아간다. 고아 구름으로, 버려진 아이 구름으로. _본문 264쪽
“곧 열네 살이 돼. 마흔네 살이 되면 뭘 원하는지 알게 될까?"
“아니, 그때가 되면 더 알 수 없어질 거야. 아무것도 모르게 될 거야.” _본문 265쪽
사랑이야 말로 진정한 광기일 거라고 생각한다. 정열, 현기증, 히스테리일 거라고. _본문 303쪽
내 꿈은 글을 쓰는 거였어. 피아노를 연주하는 꿈도 꿨지. 하지만 이제 내 꿈은 텅텅 비어버렸어. 매일 아침 도시에 사는 수십만 명의 남자들이 그러듯이 회색 외투를 입고 회색 서류가방을 들고 출근했어. 땅거미가 내리면 언덕을 올라 캄마카르가탄으로 돌아와서 로네와 함께 소파에 앉았지. 우리는 나무와 물안개와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다니는 새들을 내다보았고, 그 시간 내내 내 내장들이 도시 위에 흩뿌려진 느낌이 들었어. 폐, 신장, 간, 쓸개, 심장이 도시의 쥐들과 새들의 손쉬운 먹이가 된 듯했지. _본문 332쪽
“난 괜찮아. 사는 건 슬픔의 일이니까.” _본문 371쪽
“그럼 저 병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니? 어째서 모든 사람이 저곳을 그렇게 두려워했을까?”
“현기증 같은 거예요. 떨어져서 밤 속으로 실려간다는 공포. 결국에는 바깥으로 몰려 끝이 나리라는 공포. 하지만 여기엔 두려워할 게 없어요.” _본문 386쪽
“내가 원하는 건 자유뿐이야. 자유가 허락되지 않을 때에도, 난 어쨌든 가지고 말 거야.” 사비나는 말한다.
“그랬다가 떨어지는 게 사비나면요?”
그녀에게 광기는 희망이다. 내가 언제나 잊곤 하는 사실.
“그러라지. 떨어지는 건 우주를 이해하는 거야." _본문 418쪽
그들의 잘못이라고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점점 빨라지는 20세기의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그 세계의 존재를 견디기에는 너무 연약했다는 것뿐인데요. 하지만 바깥 세계의 눈으로 보기에, 이들은 단지 떨어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저주받고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괴물이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세계의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요? _본문 441쪽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그 안으로 들어가고 쉽게 나오지 못한다. 작가는 이 공간을 통해서 가족의 역사를 훑는다. 우울함에 민감한 이는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어머니에게도, 아버지의 딸인 야키에게도 세상에 대한 섬세함과 민감한 시각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거대한 주제이고 쓰기에는 벅찬 이야기였지만, 작가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_본문 447쪽
작가는 남들이 볼 때는 대담하다고 할 만한 소재를 다루지만, 어떤 금기에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스트리츠베리가 생각하는 작가는 의식을 벗어난 존재이며, 무언가 작가를 따라와서 이런 건 쓰지 말라고 붙들기 전에 이미 손으로 써버리는 사람이다. 『사랑의 중력』 또한 그런 방식으로 쓰였다. _본문 448쪽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사라 스트리츠베리는 『사랑의 중력』을 통해 스웨덴 현대문학 최고의 소설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
스트리츠베리의 문체를 묘사할 표현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완전한 축복이다. 폴리티켄
야키는 어른의 유약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증오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아가고, 시험할 뿐이다. 그리고 천천히 진행되는 자기파괴의 과정을 지켜본 이를 쉽게 집어삼켜버리는 재앙과 같은 두려움 앞에 무릎 꿇지 않는다. 『사랑의 중력』은 아름다운 소설이다. 이 작품은 심오한 감정과 함께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를 빨아들이는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그것에 빨려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다겐스 뉘헤테르
스트리츠베리는 1990년대 스웨덴의 역사적 사실 그 자체를 황량하지만 도저히 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어떤 것, 어둠이 끊임없이 비춰오는 빛에 섞여들어가는 공간과 함께 직조해냈다. 스웨디시 북 리뷰
스트리츠베리의 언어에는 우아한 매력과 수정처럼 맑고 아름다운 자기만의 음색이 있다. 의심의 여지 없이 『사랑의 중력』은 올해의 가장 매력적인 소설이다. 이 작품의 분위기와 질문들, 등장인물들이 아주 오랫동안 마음속을 맴돌았다. 아주 소수의 작품만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헬싱보리 다그블라드
작품 속 ‘다름’에 대한 서로 다른 관점들이 공감과 인간에 대한 이해로 우리를 가득 채워준다. 빛과 어둠 사이의 긴장이 그 작용을 더욱 복잡하고 예상할 수 없게 만들며, 비할 데 없이 훌륭한 소설가 스트리츠베리가 누구인지 분명히 보여준다. VG
지은이 사라 스트리츠베리 Sara Stridsberg
스웨덴 소설가이자 극작가, 번역가. 1972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스웨덴 현대문학 최고의 소설가로 꼽힌다. 영국 해협을 수영으로 건넌 최초의 스칸디나비아 여성 샐리 바우에르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해피 샐리』(2004)로 데뷔했다. 미국의 급진적 여성주의자 밸러리 솔라너스의 삶을 다룬 두번째 장편소설 『밸러리』(2006)로 북유럽이사회문학상을 수상하고 201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후보에 올랐다. 스트리스베리는 솔라너스가 쓴 ‘SCUM 선언서’를 스웨덴어로 직접 번역하기도 했다. 2010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성적 대상화된 소녀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달링 리버』를 발표했다. 2014년 스트리스베리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녹아든 작품 『사랑의 중력』을 발표하고, 이 작품으로 2015년 유럽연합문학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문학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사랑의 중력』은 스트리스베리의 글에 스웨덴 최고의 삽화가 사라 룬드베리의 그림이 더해져 『여름의 잠수』(2019)라는 그림책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그 외 작품으로 희곡 『아메리칸 호텔』(2016), 장편 『사랑의 남극대륙』(2018)이 있다.
스트리스베리는 201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스웨덴 한림원 종신회원 열여덟 명 중 열세번째 회원으로 선정되었는데, 한림원 설립 이후 열번째 여성 회원이자 최연소 회원이었다. 그러나 한림원 장클로드 아르노 스캔들이 불거지고 피해자들에 지지를 선언했던 사무총장 사라 다니우스가 사퇴하면서, 그녀와 연대하고자 2018년 한림원을 떠났다. 현재 스톡홀름에 거주하고 있다.
옮긴이 박현주
소설가, 전문 번역가, 에세이스트. 소설 『나의 오컬트한 일상 - 봄여름 편』 『나의 오컬트한 일상 - 가을겨울 편』 『서칭 포 허니맨 - 양봉남을 찾아서』, 에세이 『로맨스 약국』을 썼고,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 트루먼 커포티 선집, 찰스 부코우스키의 소설과 에세이, 『바바리안 데이즈』 『조용한 아내』 등을 번역했다. 2018년 『하우스프라우』로 제12회 유영번역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