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운용과 특유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함명춘의 첫 시집 출간독창적인 상상력과 빼어난 시어 운용이 돋보이는 젊은 시인 함명춘의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가 출간되었다.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칠여 년 만에야 첫 시집을 펴내는 함명춘 시인은 그간 ‘돌 아가리’ 연작시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으로 줄곧 평자들의 주목을 받아왔다. 정련된 언어 사용과 ‘말〔言〕’ 에 대한 집요한 탐구, 존재와 죽음의 형이상학적 이미지로서의 ‘돌’에 대한 천착 등으로 특징지워지는 그의 시세계는 감각적인 시어와 저급한 감상이 지배하는 요즘 시단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올 것으로 기대된다.
함명춘 시인의 첫 시집 『빛을 찾아나선 나뭇가지』는 무엇보다 기발한 상상력과 그에 걸맞는 적절한 비유와 수사가 큰 장점이다. 그가 구사하는 언어의 운용은 죽어 있는 사물조차 생명의 흐름 속으로 흡입하는 힘이 넘쳐난다. 반복과 축약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는 빼어난 시를 여러 편 보여준다. 또한 ‘돌 아가리’ 연작시 등에서 그가 집요하게 천착하는 ‘돌’의 이미지는 망각과 기억 사이의 존재론적 틈을 환기시키며 인식의 장을 무한 공간으로 확장시킨다. 그의 시는 시 장르가 갖는 언어의 절제와 서정성을 잃지 않으면서 그만의 특유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동하여 삶과 실존의 문제에 대한 깊은 인식과 혜안을 보여주고 있다.
함명춘 시인은 1966년 강원도 춘성군에서 태어나 서울예술전문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9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 「활엽수림」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삶의 어둠과 빛, 그 경계지점에서 솟아오르는 견고한 침묵함명춘의 첫 시집은 집요한 비유와 끈질긴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시를 광휘의 세계로 이끄는 것은 삶의 어둠과 빛, 그 경계지점에서 솟아오르는 견고한 침묵이다. 그 침묵은 기억으로부터 온다. 진정한 의미의 현재란 존재하지 않으며 미래는 가상의 과거일 뿐이므로 삶 자체가 기억이고 우리는 과거의 기억 속에서, 기억과 더불어 살고 있다. “기억의 왕족들이 지배해온 제국/오늘을 어제로 어제를 오늘로 자유자재로/되돌리는 그 놀라운 기억으로”(「망각의 새는 잠시만 머물다 간다」) 수천 년의 삶은 지속된다. 그러나 기억은 필연적으로 망각을 수반한다. 기억과 망각은 존재의 동의어이다. 함명춘의 시는 바로 그 기억과 망각의 역설적 줄타기이다. 그의 시에서 부단한 존재의 변신과 죽음에 대한 탐구가 망각의 적극적인 힘에서 추동되고 있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실체로서의 죽음을 기억과 망각의 역설로 풀어내는 함명춘의 시는 침묵의 언어에 도달함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여러 편의 시에서 ‘망치’ 혹은 ‘혀’의 비유를 통해 표현되는 그의 ‘말’은 시집 전체에서 거대한 침묵의 울타리를 만든다. 그 언어의 침묵은 죽음을 향해 끊임없이 다가가지만 대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아 흐르게 한다. 문학평론가 김재인은 이를 ‘정중동(靜中動)의 존재 방식’이라고 규정한다. 죽음을 직시하되 언제나 시선을 비켜가는 것, 죽음을 기억하되 망각하는 것, 죽음을 말하되 침묵하는 것, 그럼으로써 자연의 존재 방식을 따르고 참다운 존재의 본질에 이르는 것―그것이 함명춘의 시이다. 오랜 시적 수련과 삶의 심연을 가르는 특출한 상상력으로 주목할 만한 첫 시집을 펴낸 함명춘, 그의 향후의 작품세계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