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다!
모차르트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천재이다!
현대사회학의 거장 엘리아스의 유작 『모차르트』모차르트에 대한 사회학적 전기
음악 역사상 신(神)이 내린 최고의 신동 모차르트! 악보 위를 휘젓는 그의 손길은 인간의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인간 영혼의 완벽한 화음(和音)을 구현하였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토록 엄청난 신의 선물이 인류에게 또다시 부여될 수 있을까. 음악 천재 모차르트에 관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담은 책이 한 사회학자에 의해 출간되었다. 독창적인 문명이론으로 20세기 현대사회학의 새로운 장을 연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유작 『모차르트』가 그것이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 영감(靈感)의 원천은 무엇인가? 모차르트는 과연 모두가 믿고 있듯이 타고난 천재인가? 그의 천재성에는 신이 부여한 재능 외에 다른 요인이 있지는 않았을까? 현대사회학의 거장 엘리아스는 이와 같은 의문으로 모차르트를 새로운 방식으로 읽고 재해석한다.
엘리아스는 기존의 수많은 모차르트 평전들이 그렇듯이 모차르트라는 위대한 천재 음악가의 삶을 ‘음악’과 ‘천재’라는 개념에 국한해서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라는 부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철저한 사회 문화사적 시각으로 모차르트를 해석한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당시의 사회 상황에 초점을 맞춰 그의 예술 창작 과정과, 그것과 끊임없이 길항관계를 형성하던 당시의 사회적 제도 및 관습, 신분적 제약 등을 특유의 날카로운 통찰로 꿰뚫음으로써 모차르트의 천재성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고 엘리아스가 개인의 예술혼은 그를 둘러싼 사회적인 상황과 조건에 의해 제한된다는 고전적인 결론에 머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엘리아스의 탁월함은 사회의 여러 양태가 구조적 제도적 맥락에서 개인의 천재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론을 풍부한 일화와 편지들을 전거로 깊이 있게 논구하고 있다는 데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이 책은 모차르트를 단지 천재 예술가로 미화한 기존의 전기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엘리아스의 분석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결코 타고난 천재만은 아니다. 오히려 당시 사회와의 끊임없는 갈등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완성된” 천재에 가깝다. 이와 같은 도전적인 주장은 음악적 영감을 불러일으킨 모차르트의 내면적 동기(채워지지 않는 사랑에 대한 욕구, 음악가로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투쟁 등)와 외적인 영향들(아버지와의 심리적 긴장과 갈등, 시민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지위의 한계, 궁정 사회에서의 음악 활동의 제약 등)의 상호작용에 주목하여 양자의 충돌 양상을 포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얻어진 것이다. 이를 통해 엘리아스는 자신의 평생의 화두였던 개인과 사회와의 긴장관계가 한 천재적 개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구체화되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위대한 작곡가의 삶과 창조적 천재성에 대한 놀라운 연구서
『모차르트』는 위대한 작곡가의 삶과 창조적 천재성에 대한 놀라운 연구서이자 심원한 사회학적 분석이다. 엘리아스는 이 책에서 천재 예술가들의 전기 작가들 혹은 기존의 모차르트 연구자들이 가졌던 한계를 단번에 뛰어넘는 지적 통찰을 보여준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통해서도 잘 알려져 있듯이 너무나도 고상하고 우아한 모차르트의 음악과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행동거지들 간의 부조화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기존의 연구자들이 이러한 모순을 철저히 외면하고 모차르트의 천재적인 일면만을 강조했다면, 엘리아스는 이를 해명하기 위해 당시 사회로 소급해 들어간다. 그는 이중적이고 분열적인 모차르트의 모습에서 아직 그 사회적 조건이 성숙하지 못한 사회에서 자유 예술가로 살고자 했던 모차르트의 예술가적 고뇌와 반항을 발견해낸다. 자신의 예술적 환상을 마음껏 펼치고 싶어하는 자유 예술가의 창작 의지를 통제하고 억압하는 궁정 사회의 현실 속에서 모차르트가 겪은 비극적 삶의 근본적인 원인을 짚어내는 것이다. 당시 궁정 사회에서 음악가들이란 청중을 위해 음악을 생산하는 수공업자들에 불과했다. 궁정 귀족들은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취향을 강요함으로써당시의 작품 생산은 주문 제작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모차르트의 자유로운 예술혼을 억압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를 한낱 자신들의 시종으로 부리려 함으로써 그의 예술가적 자존심을 여지없이 짓밟았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예술적 양심에 충실하려 했던 모차르트는 결국 자유 예술가의 길을 개척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가능케 할 사회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진 모차르트의 시도는 좌절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시 모차르트의 인간적 실존과 예술가적 실존을 규정했던 총체적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과의 갈등 및 투쟁을 예술적 창조 작업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이 다름아닌 인간 모차르트의 성숙 과정이자 천재 음악가로의 완성 과정이었다.
불운한 천재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날카로운 사회학적 분석
엘리아스는 당시 모차르트가 처한 상황을 피할 수 없는 딜레마이자 동시에 천재적 창조 작업에 필수적인 추동력으로 파악했다. 천재 예술가 모차르트와 당시 사회와의 불화는 그의 천재적 재능이 개화되는 데에 걸림돌로 작용한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그 극복 과정에서 참된 예술 및 진정한 천재가 출현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탁월한 학문적 결실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 자전적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어떤 일이 순전히 우리가 선택해서 일어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말은 유대인으로서 전쟁을 겪었던 엘리아스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한 세대 일찍 태어난’ 천재였던 모차르트의 비극적 운명을 잘 대변해준다. 천재는 아마도 이러한 사회적 제약과 시대적 한계에 끊임없이 부딪치며 나아갈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것이 모차르트의 삶을 통해 내린 엘리아스의 결론인 것이다. 노사회학자의 마지막 학문적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유고작『모차르트』는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음악 팬들뿐만 아니라 세기말 복잡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새롭게 삶을 성찰하고 미래를 조망해볼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다.
『모차르트』는 엘리아스가 1978년부터 1980년까지 ‘궁정 사회의 시민 예술가’라는 대기획의 일환으로 저술한 책이다. 그는 원고를 채 완성하지 못했으나 오랜 동료 미하엘 슈뢰터의 출간 제의에 동의했고, 책의 제목 ‘모차르트 -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도 직접 정했다. 그의 사후 일 년 만에 슈뢰터는 방대한 원고를 토대로 이 책을 펴냈다.
20세기 사회학을 이끌어온 노베르트 엘리아스(Norbert Elias, 1897∼1990)는 1897년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태어나 브레슬라우 대학에서 의학과 철학을 공부했으며, 1924년 「이념과 개인」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나치 정권의 탄압을 피해 파리, 영국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표적 저작 『문명화 과정』(1939)을 출간하였으나 시대의 질곡으로 인해 빛을 보지 못했다. 1969년 그의 주요 저작들이 복간되면서 독일과 네덜란드, 프랑스 등지에서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일상생활에 대한 미시적 분석과 사회변동에 대한 거시적 분석을 설득력 있게 통합해낸 그의 문명이론은 파슨스 이후 정체된 사회학계에 새로운 방향타를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75년 독일 사회학회에 의해 명예회원으로 추대되고 1977년 아도르노상을 수상하는 등 현대사회학의 거장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혔다. 저서로는『문명화 과정』『궁정 사회』(1969),『죽어가는 자의 고독』(1982),『인간의 조건』(1985),『사회 참여와 거리두기』(198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