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대학 법학과에 재학중이던 1999년 첫 소설 『일식』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일본 현대문학에 새로운 태양으로 떠오른 무서운 신세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 그의 두번째 소설 『달』은 출간되자마자 “『일식』을 능가하는 걸작, 『일식』은 천재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투명한 긴장감으로, 읽는 이를 취하게 하는 슬픈 환상
숭고한 것, 절대적 존재, 그 신성한 세계를 향한 꿈
태생의 업보를 짊어진 아름다운 여인을 사모하는 젊은 시인의 꿈과 죽음
때는 1897년, 메이지 중기 초여름, 도츠카와 마을의 깊은 산중을 여행하던 한 젊은 시인이 독사에게 물려 의식을 잃는다. 그는 마침 그곳을 지나던 산사의 노승에게 발견되어 절에서 요양하는데, 그 절의 한켠에 있는 암자에 한 여인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도쿄를 떠날 때 이미 만남에의 전조를 느꼈고, 절에서 보낸 밤마다 꿈속에서 아름다운 여인의 자태를 보았던 그는 어떤 운명적인 힘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꿈속의 여인을 실제로 목격하고 난 후부터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격정에 휩싸이는데……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과 또다른 질서가 엄연히 존재한다
주체할 수 없는 정열에 사로잡힌 젊은 시인, 이루어질 수 없는 파괴적인 사랑에 탐닉하는 남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드는 플롯 등, 낭만주의적인 모티브를 세련되게 되살려낸 소설 『달』에는 사악한 뱀과의 인연이라는 태생의 업보를 짊어진 아름다운 여인과 그녀를 사모하는 젊은 시인의 꿈과 죽음이 현실과 환상의 교차 속에서 상세하고도 농밀하게 묘사된다.
독자를 취하게 하는 소설, 고풍스러운 러브스토리
히라노의 두번째 작품인 『달』은, 그의 긴 행보에서 오히려 데뷔작보다 더욱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일식』은 누구도 그를 알지 못할 때, 투고(投稿)라는 형식으로 써낸 작품이었다. 작가는 최소한 무명인으로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 첫 작품이 일본의 간판급 문학상인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면서 사십만 부 돌파라는 대성공을 이루었다.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이 신인의 작품을 번역하겠다는 의뢰가 밀려들었다. 어느 나라보다 먼저 히라노를 소개한 우리나라에서도 종합 순위 1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만큼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와 의구심은 컸고, 그만큼 작가는 무거운 압력 속에서 이 작품을 발표했다.
『달』이 출간되자마자, “『일식』을 능가하는 걸작, 『일식』은 천재의 첫걸음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찬사가 들려왔다. “무대가 프랑스 파리든 일본의 나라(奈良)든 히라노는 역시 히라노” “『일식』보다 더 멋지다!” “독자를 취하게 하는 소설” “고풍스런 러브스토리” “더욱 갈고 닦인 독특한 문체” 등등의 서평이 빗발쳤다. 이 소설을 통해 히라노는 그를 두고 벌어진 소동에 충분히 값하였고, 또한 순수 문학계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독보적 존재로서 보기 좋게 착지한 것이다.
『달』도 적잖이 어렵다. 그러나 스토리 자체가 재미있는데다 불그레한 빛을 띤 황금빛 달의 신비에 자기도 모르게 도취해 한번 잡으면 놓기 힘든 소설이다. 더구나 마지막 부분의 반전은 일파만파의 논쟁을 일으키기에 충분할 만큼 충격도와 극적인 점에 있어 발군이다.
무대는 나라 현 도츠카와 마을의 깊은 산 속, 지금으로부터 일백여 년 전인 1897년에 일어난 사건이다. 나라는 고대 문화가 꽃피었다 멸망한, 일본 정신의 근원이기도 한 곳이다. 그 자취마저 퇴색한 채 일본인의 정서 속에 아련한 슬픔으로 남아 있는 옛 도읍지, 이를테면 우리의 백제 고도 부여 같다고나 할까. 한 젊은 시인이 그곳 산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붉은 꽈리열매처럼 눈을 빛내는 뱀에 물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간다. 참된 낭만, 절대적인 것과의 순간적인 일체, 찰나적 진실의 정열을 추구하는 젊은 시인. 그가 체험한 꿈과 죽음이 어우러지는 법열의 한순간. 쓰러져 누운 그가 가물거리는 눈으로 바라본 꿈과 환상과 현실의 교착이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이 되고 있다.
전통과 최첨단의 조화가 독자들로 하여금 뭔지 모르면서도 끌려들게 하는, 참을 수 없는 매력이 된다!
히라노는, 소설쓰기의 원론인 모방이라는 방식―옛 한문체 문장의 자유자재한 구사, 누구도 찾아내지 못한 고전의 인용 재생―으로 성실하게 회귀하고, 그것을 최첨단의 현대적 소설 기법으로 직조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전통과 최첨단의 조화가 독자들로 하여금 뭔지 모르면서도 끌려들게 하는, 참을 수 없는 매력이 된다.
정공법적인 추구, 소설이라는 장르가 생긴 이래 누구나 추구하고 싶었지만 어느 지점에서 포기하고 만 주제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 또한 그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이 작품에서도 노승의 침묵과 여인의 눈동자에 씌인 업보는, 선함과 악마적 힘의 이원론적인 대립으로 오버랩된다. 미래에 의해 예고되면서 항상 그에 예속되는 현재, 낭만과 현실, 찰나적 정열로 함몰할 것인가 나른한 일상으로 연장할 것인가 하는 인간의 보편적 고뇌에 야심차게 도전한다. 그의 도전이 어떤 결론을 이끌어냈는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독자 개개인의 받아들임의 몫이리라. 그의 도전은 정통에로의 환기라는 점에서 전혀 새롭고도 중요하다.
인간이 일구어낸 가장 높은 문화현상 중 하나인 문학이 너무 오래 묵은 술병처럼 내팽개쳐지려 하고 있다. 히라노는 그 버려진 술병을 집어들고 정갈하게 손질하여 고풍스러운 가치를 부여했다. 향기 높은 술을 부어넣었다. 독자들이 그에게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그것도 다름아닌 문학의 쇠퇴를 부른 영상매체, 혹은 영상매체적 기법으로 히라노는 문학에 다시 원래의 고귀함을 불어넣었다. 그는 문학을 통해 ‘성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참으로 슬프고 아름답고 무서운 이야기, 이 소설을 길잡이 삼아 ‘인간의 역사가 다 퍼올리지 못한 한 방울 밤이슬’ 같은 것들, 이를테면 나비에 이끌려 무턱대고 산중을 헤매다 쓰러져 가뭇없이 사라졌을 젊은 떠돌이 영혼들, 이를테면 이루지 못한 젊은 꿈들, 이를테면 이루지 못한 사랑 같은 것들이 성스러운 비극으로 되살아난다. 이 소설은 그런 것들에 바쳐진 헌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