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아름다운 정원에 앉아 있습니다. 눈부신 녹음과 만발한 꽃들, 나비의 한가로운 날개짓, 아기새들의 활기찬 몸짓…… 봄을 암시하는 듯한 평화롭고 아름다운 정경입니다. 아이는 어떤 목소리에 이끌려 상상의 세계 속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납니다. 울창한 숲길과 한 번도 보지 못한 커다란 성이 눈앞에 펼쳐지고, 아이는 꿈의 왕국의 주인이 되어 벽걸이 양탄자 속에서 나온 사람들과 흥겨운 잔치를 벌입니다. 꿈의 왕국을 파괴하기 위해 밤의 나라 저쪽에서 괴물들이 몰려오지만, 꿈의 여왕인 커다란 용의 도움으로 성과 친구들을 지켜 냅니다. 다시 고요하고 아름다운 정원으로 되돌아온 아이, 정원은 일견 모든 것이 그대로인 듯합니다. 꿈은 그렇게 부질없이 흩어져 버린 것일까요? 그러나 짙푸른 녹음의 자리에 노란 낙엽들이 떠돌고, 꽃이 진 자리에는 알알이 열매들이 맺혀, 정원에는 어느덧 가을이, 성숙과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깊숙이 찾아와 있음이 곳곳에 암시되어 있습니다.
사실적이고 세밀한 그림 속에 구현된 풍요로운 판타지의 세계
꽉 짜여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자유롭게 여행하는 것, 이것은 비단 어른들만의 꿈은 아닙니다. 유치원이다, 한글 공부다, 피아노 학원이다, 영어 학원이다, 학습지다 해서 어른들 못지않게 바쁜 오늘날의 아이들에게 더욱 절실한 꿈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판타지가 없다는 것은 크나큰 비극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당장의 지식이 아니라 꿈꿀 수 있는 힘과 자유로운 상상력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 『꿈을 훔치는 도둑』은 꿈과 상상력이 가득한 보기 드문 판타지 그림책입니다. 각양각색의 꽃들로 가득한 고요한 정원의 풍경으로 시작된 장면은, 꿈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점차 커다란 성, 깨어진 조각들, 양탄자에서 내려온 사람들, 꿈을 훔치는 괴물들로 가득 차게 됩니다. 각 페이지마다 풍성하게 차려져 있는 볼거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평화로운 정원으로 다시 돌아와 있게 됩니다.
작가는 매 페이지마다 등장하여, 독자들이 상상의 세계에서 더욱 자유롭게 뛰놀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 줍니다. 글은 짤막하고, 아름다운 시적 리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작품을 훌륭한 판타지로 완성시키는 것은 프랑수아 크로자의 사실적이고 섬세한, 그러면서도 장황하지 않은 그림들입니다. 치밀한 구상을 토대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이미지들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새롭고 환상적인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합니다.
그린이 프랑수아 크로자
1928년 프랑스 리옹 근교에서 태어났습니다. 오랫동안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다가, 정밀하고 과학적인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작품 경향을 바꾸면서 출판계에 뛰어들었고, 특히 동식물에 관한 다큐멘터리 작품들을 주로 그렸습니다. 그 후 동화 창작에도 열의를 기울였고,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듯한 그의 작품들은 덴마크, 일본, 미국, 독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저서로 『알 속에서 나온 이야기』 등이 있습니다.
옮긴이 김진경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불문과를 졸업했습니다. 야크 리베의 『세상에 세상에』 『아니, 이럴 수가』, 수지 모르겐스턴의 『공주도 학교에 가야 한다』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