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고,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그리고 늙어 땅으로 되돌아 갈 때까지 나무는 언제나 제자리를 지킵니다. 바위와 모래와 물 속 어디에서나 나무는 뿌리를 내립니다. 바람과 새들과 비와 눈과 아침과 밤이 나무를 스쳐 갑니다. 나무는 이 모든 걸 받아 들여 제 속살로 채웁니다.
아름드리 나무를 보고 있으면, 그래서 눈이 부십니다. 나무 아래에 누우면 나무는 켜켜이 쌓아 놓은 세월을 한 겹 두 겹 풀어 들려줍니다. 작가도 나무가 들려준 얘기를 들은 게 틀림없습니다. 『내 나무 아래에서』는 나무가 들려주는 한 줄기 시를 그대로 옮겨 놓았습니다.
『내 나무 아래에서』는 어느 겨울 아침 풍경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점점이 내리는 눈과 앙상한 나무와 하늘에 걸린 해가 고작인데도 작가는 화면 구석구석에 고즈넉한 온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물론 이 따스한 느낌은 나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무는 주위 모든 공간을 제 향기로 물들이는 힘을 지녔습니다. 다음 장면에 이어지는 도시의 밤 풍경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색의 건물과 어두운 밤이 겹치는 지점에 나무는 그저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나무는 얼핏 메마른 도시의 한 가운데서 말라비틀어진 모습입니다. 그런데 어느 새 건물 귀퉁이와 창문과 거리는 나무 빛깔로 물들어 있습니다. 나무는 황량한 회색 도시와 교감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분명 작가는 겨울 아침과 도시의 밤 풍경을 의도적으로 첫 화면에 배치한 듯합니다. 우리는 나무의 넉넉한 생명력에 기대어 평온을 느낍니다.
나무는 뿌리 가득 물을 빨아들여 봄 여름 가을을 지납니다. 새들은 둥지를 틀고, 양떼들은 더위를 피하고, 사람들은 과일을 땁니다. 『내 나무 아래에서』는 화면 가득 초록을 흩뿌리다가, 점점 갈색으로 물들어 갑니다.
그리고 다시 겨울이 찾아오지만, 우리는 이미 나무가 전해 주는 넉넉함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휜 눈 쌓인 나무 위로 루돌프 썰매가 별똥별처럼 지나갑니다.
아이들에게 시적 울림을 주는 그림책
『내 나무 아래에서』는 어린이 그림책에서는 보기 드물게 시적 리듬과 은유로 가득합니다. 글은 물론이고,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주는 그림이 돋보입니다. 따라서 『내 나무 아래에서』는 여러 번 반복해서 봐야 제 맛이 납니다.
감각적인 영상매체가 아이들을 사로잡고 있는 시기에, 『내 나무 아래에서』는 아이들에게 잃어버린 시심을 찾아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옮긴이 최정수
1970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우리말로 옮긴 어린이책은, 『꼬마 니콜라의 쉬는 시간』 『키리쿠와 마녀』 『폭력, 저리 가!』 등이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습니다. 탐스런 과일을 주고, 작은 새의 노래를 들려 주고, 시원한 그늘을 펼쳐 줍니다. 어머니 미소처럼, 아버지 눈빛처럼 늘 그 자리에서 세상을 밝혀 줍니다. 나무는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짧은 글, 간결한 그림, 긴 여운……
나무로 그린 맑은 사랑의 점묘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