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사람들에게 건네주는 따뜻한
물 한잔의 시
『김포행 막차』의 시인 박철의 새 시집
『새의 全部』가 출간되었다.
시인 박철은 첫시집 『김포행 막차』에서
도시화의 흐름에 편성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 흐름에 잠시 편성했다가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사는 김포를 독창적으로 조명함으로써 남다른 시 영역을 보여준
바 있다.
첫 시집의 연장선상에서 한결 성숙한
모습을 띤, 이번 시집은 목마른 사람들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네주는 마음으로,
소외된 것들의 아랫목을 향해 지피는 따뜻한 연민과 사랑의 세계를 담고 있다.
전체 4부로 나누어진 64편의 시들은
김포와 호주, 유년기와 현재의 시공을 넘나들며 자잘한 삶의 풍경을 챙겨간다.
따뜻함으로 달구어진 이들 시편은, "물 한잔 마시는 일 / 맑은 물 한잔
따라주는 일 / 그리고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그대에게 물 한잔」)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거나 베란다에 흙을 놓고 뿌린 상추씨 몇 알이 파랗게 되기를
기다리는 일 등을 통해 시인의 섬세한 마음씀씀이를 보여준다. 이러한 그의
시는 동적(動的)이기보다는 정적(靜的)이다. 부화뇌동하기보다는 안으로 조용히
침잠한다. 이럴 때, 그의 시는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발산하며 은은히 타오른다.
이 정중동의 분위기 속에 불씨를 품은 뜨거운 삶의 열정이 참숯처럼 웅크리고
있다.
이러한 박철의 시세계는 다분히 서사(敍事)
지향적이다. 소박한 인상을 주는 그의 시들은 언어체계의 의도적인 굴절을 숭배하지
않는다. 개별 행(行)의 멋부림에 주력하기보다는 개개의 행들이 쌓이고 겹쳐지면서
메시지가 충일되는 조형방식을 구사한다. 그래서 시인은 사생(寫生)을 하듯
대상을 묘사한다.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본 삶의 비애를 그린 「청진동 연가」나
호주의 한 월세방 생활을 그린 「쌀」, 그리고 어느 여관에서 군 캥거루 꿈을
그린 「캥거루 사냥」 등의 시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그의 시들은 한 편의
소설처럼 두드러진 서사성을 띠고 있다. 이러한 서사 지향은 결국 「아이와 여인과
별」과 「새 그리고 죽음」같은 긴 산문시를 낳는다. 또한 이 서사성은 개개의
시들을 독특한 읽을거리로 만들기도 한다.
박철의 시들이 겨냥하고 있는 시적 대상은
주로 자신의 주변 상황, 즉 근거리에 있는 것들이다. 그의 시는 개인적인 일들을
대상으로 한 근경(近景)에서 이웃이라는 중경(中景)으로 나아간다. 이 원근의
시계(視界) 속에 김포가 놓여 있다. 김포는 시인의 고향이자 마음의 중심이다.
"파라마타 사는 누이가 갖다놓았나 보다 / 그냥 그저 쌀자루는 누워 있는데
/ 김포벌판이었나 내 눈물 뿌리던 곳 / 하늘이 스쳐갔다"(「쌀」)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호주에서 누이가 갖다놓은 쌀자루를 보고도 시인은 김포평야를
떠올린다. 그만큼 김포는 시인의 삶과 시의 원적지를 이루고 있다.
시인은 때때로 "안개가 사람을
업어 가"(「안개가 사람을 업어 간다」)는 김포에서 해지는 들녘을 바라보며
딸아이의 손을 잡고 산보를 한다. 그는 이를 두고 나이 사십을 앞두고 있는
자로서 얻기 힘든 행복이라고 말한다. 이 행복 속에서 시인은 사회나 역사 같은
거창한 것들에 시선을 두기보다는 생활 속의 사소한 것들을 시적 대상으로 땅따먹기를
하듯 시적 언어로 가공한다.
이 땅따먹기 속에는, 재활용한다며 신문지에
난(蘭)을 치는 아내(「그대」)와 언젠가 부자가 되겠담 산올림핀복권(「올림픽복권」)이
있고, 크레파스로 색칠을 하는 딸아이의 재롱이 있다. 그리고 동네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봄이 오는 길목」)와 해가 지기 전 한줌의 흙을 떠다 마음 깊이 뿌리는
상추(「상추」)가 있고, 해장국과 새 사냥과 꽃그림이 있다. 또한 시드니 근교
파라마타, 캥거루, 유카립트나무 같은 이국풍물과 생활이 있다. 이 특이한 시적
대상은 시인이 요양차 머물렀던 호주에서의 체험을 토댈 하고 있는 것들이다.
팔뚝만한 코몬구렁이나 캥거루가 겹쳐지는 「캥거루 사냥」같은 시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그로 말미암는다.
그의 시는 때로는 풍자와 서정을 동시에
사용하는 시적 전략을 구사하기도 한다. 서정에는 풍자를 담아 시의 재미를
더하고, 풍자에는 서정을 내포시켜 냉소에 쉬 빠지지 않게 하는 적절한 균형을
보여준다. 예컨대, "저물 곳이 없어서 이 밤을 지새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 저 물살 밤으로 살을 섞을 때 / 홀로 출렁이는 그대"(「갈매기가 머무는
곳」)라든지 "우리가 아는 전쟁과 평화는 / 영화 제목이나 소설쯤으로 알지
/ 어디서든 손쉽게 잡을 수 있는 / 전쟁 / 누구든 가져다주는 / 평화 / 그게
전부지"(「전쟁과 평화」)라고 할 때, 서정과 풍자가 한몸으로 어울진 이들은
박철 시의 또다른 면모를 제공한다.
이렇듯 시인의 상상력은 구체적인 현실이나
사물에 의해 촉발된 후, 사사로운 감정이나 일상을 ?로하며 묵묵히 살고 있는
이들을 정성스럽게 형상화한다.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의 눈빛"(「새의
전부」)으로 세상을 보고, 가진 것이 적으므로 오히려 더 풍요로운 삶을 사는
이웃들에게 "맑은 물 한잔"(「그대에게 물 한잔」)을 건네준다. 이러한
관심은 시인이 이전의 시집에서 보여주었던 이웃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인은 따뜻한 사람의 마을을 향한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묵묵히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챙김으로써 시인은 이땅의 삶에 대하여
일정한 몫을 책임지려는, 대승적 삶의 자세를 확연히 보여준다.
이처럼 『새의 全部』는 소승적 삶의 자세를
뛰어넘어 이웃들을 향한 대승적 삶의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읽는이로 하여금
압축화일이 물리듯 풀어지는 시의 말을 통해 소외된 우리 이웃들의 남루한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