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되어 있으면서도 치밀하고 지적이면서도 섬세한 묘사, 언어의 묘미를 한껏 살려 대상의 심저까지 파고드는 강렬한 묘사로 독보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마루야마 겐지의 문학은 현실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 문명과 미래에 대한 비전 등 거대 담론에 버금가는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의식을 황홀하리만치 아름다운 시적인 문체로 담아낸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래서 흔히, 줄거리를 요약해보려 한다거나 스토리를 따라 읽는 독법으로는 그의 문학을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해진다. 전혀 다른 독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줄 한 줄 따라가며 말(言語)의 맛을 음미하고 문장의 흐름에 마음과 눈을 맡기는 독법, 겐지의 문학은 그것을 요구한다. 삶과 사물의 핵심을 정확히 포착하는 적확한 언어 사용의 기막힘이 겐지 문학의 득의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겐지의 언어는 마치 스스로 살아 종이 위를 자유자재로 활보한다. 그의 언어는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여서 어느 단락, 어느 장이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각각의 단락과 장은 그 자체로 충일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 읽는 이를 빨려들게 만든다. 촘촘히 잘 꿰어진 그물이듯, 정성스럽게 뜨개질한 옷감이듯 겐지의 소설은 정교하면서도 경이롭다.
2400매 분량의 대작인 『천 년 동안에』는 1996년에 출간된 최근작으로, 그가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1994년 作)에 이어 새롭게 시도하고 있는 환상적 리얼리즘 기법이 잘 나타난 소설이다. 수령이 천 년이나 되는 ‘싸움나무’(인간 세상의 무수한 싸움과 갈등을 상징하는 이름)를 통해 과거 천 년과 현재, 그리고 2020년까지의 미래를 가로지르며 파국으로 치닫는 인간과 현대문명을 질타하고 있는 이 소설은 타락한 현대사회의 미래를 향해 던지는 처절한 묵시록으로 읽힌다.
『천 년 동안에』―일본 문학에 우뚝 솟은 대작
세기를 가로지르는 문명 비판의 거대한 목소리, 도도한 주의 주장이 소설 저변에 날카로운 송곳처럼 솟아 있는 『천 년 동안에』는 인간 문명뿐만 아니라 일본 사회 전반에 관해서도 신랄한 비판과 경고를 보내고 있다. 겐지가 이 년의 세월을 들여 전력투구한 이 대작은 일본 현지에서도 평가가 극단적으로 나뉠 만큼 화제작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일본 문학에서 우뚝 솟아 있다” “새로운 이야기의 탄생”이라는 쪽으로 평가가 내려지면서 바야흐로 겐지 문학의 집대성으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이 소설은 시작부터가 아주 불가사의하고 기이한 장면을 연출한다. 한(恨)을 지닌 채 인생에 절망한 한 여자가, 숲속에 우뚝 서 있는 거목(巨木) 가지에 목을 매달아 자살함과 동시에 남자아이를 낳는다. 아이는 이마 한가운데 별 모양 점을 지닌, 범상치 않은 기적의 아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수령이 천 년인 거목인데, ‘싸움나무’라고 불리는 이 거목은 올해 처음 꽃을 피웠고, 딱 한 개이지만 열매도 맺었다. 소설은 거목에게 비치는 이 아이의 미래가 영상으로 펼쳐지면서 향후 28년(남자아이가 스물여덟 살이 될 때까지)에 이르는 일본의 역사가 소설의 또다른 주인공 ‘너’라는 이인칭 시점으로 그려진다. 우연히 거목 옆을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이 ‘너’를 주워 기른다. 이 시골 부부는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너’를 아주 소중하게 키운다. ‘너’는 순조롭게 성장하여 열여덟 살이 된다. 그런 어느 날 동네가 대지진에 휘말리고 부모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산사태로 죽는다. 살아 남은 ‘너’는 마을을 버리고 도시로 간다. 도시로 나간 ‘너’는 도둑질로 연명하다 사창가에서 동남 아시아계 젊은 여자를 알게 된다. 이후 ‘너’의 짧지만 파란만장한 일생이 펼쳐지며, 옛날 자신 앞을 스쳐 지나간 많은 사람들에 관한 에피소드가 거목의 회상으로 중간중간 그려진다.
타락한 현대사회의 미래를 향해 던지는 처절한 묵시록
소설은 거목의 회상으로 그려지는 과거 천 년과 ‘너’의 삶의 영상으로 펼쳐지는 가까운 미래의 교차적인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 세 시공간의 교차와 전환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러나 소설 속 실제 시간은 하루밖에 흐르지 않는다. 통신수단의 과도한 발달, 환경 오염, 쇠퇴 일로를 걷는 나라의 정세, 국민을 일일이 감시하는 카메라, 태두하는 전체주의, 퇴화하는 문명, 그런 시대 상황에 부침하는 ‘너’의 행로에 화자인 거목은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흥분하면서 기도하듯 지켜본다. 그와 함께 이 나무가 상기하는 과거 천 년 동안의 기억 속에 등장하는 무사, 도둑, 비파를 켜는 중, 사창가로 팔려가는 아가씨 등 길을 잃고 숲속(문명의 사각지대)으로 들어온 다양한 시대의 인간들은 토속적인 이미지와 더불어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고 있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걸친, 부패할 대로 부패한 일본 사회를 신랄하게 폭로하면서 어둡고 구원이 없는 미래상을 그리고 있지만, 그리고 천 년을 산 ‘싸움나무’가 인간의 손에 의해 무참하게 폭발당하는 비극으로 소설은 끝나지만, “아무리 비극적인 상황에서 태어났다 하더라도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긍정적인 희망의 메시지를 기조로 하고 있다. 이는 생을 긍정적으로 살겠다는 결의에 찬 ‘너’의 모습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소설에서 여러 번 반복되고 있는 “잘 태어났다”란 말에서도 뚜렷이 비유돼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소설의 핵심적인 주제와 겐지의 도저한 사유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것은 ‘흐르는 자의 철학’으로 명명된 일단의 사상에서이다. 고여 있는 자와 대립되는 이 ‘흐르는 자’(『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에서의 ‘움직이는 자’를 연상시킨다)의 의미는 길들기 쉬운 사람들과 선을 긋고, 진정한 자유를 목표로 하고 사는 자이다. ‘너’가 정신병원에 갇혔을 때 우연히 보게 된 『원숭이의 시집』에서 선명히 드러나는 이 ‘흐르는 자의 철학’은, 집단이나 조직, 권위나 권력이라는 엉터리 세계에서 철저하게 멀리 떨어져, 그것을 철저하게 부정하는 자리에서만 진정한 자유와 존엄이 존재한다는,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사상이다. 겐지의 활기에 차고 자유로운 정신의 영역을 엿보게 하는 이 대목은 이 소설의 가장 통렬한 메시지이다. 인류의 천 년을 돌아봄으로써 소설의 미래를 내다보고자 하는 겐지의 결연함이 ‘흐르는 자’의 철학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작품마다 실험적인 기법을 시도하면서 새로운 소설의 가능성을 열어가는 겐지
평소 “절대 같은 소설은 쓰지 않는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여온 겐지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새로운 소설 문법을 제시하며 일본 현대문학의 선봉의 자리를 고수해왔다. 이 작품에서도 겐지는 다양한 문학적 기법을 모색하면서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환상적 리얼리즘의 전범을 보여주는 이 소설에서 우선 일본의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시공간이 중층적으로 교차하는 시점이 그렇다. 거목이 내려다보는 천 년 동안의 일본의 세계는 과거의 숲의 세계, 목매단 여자가 낳은 신생아의 성장 기록인 현재의 동네와 도시의 세계, 『원숭이의 시집』의 철학에 바탕하여 당시의 일본을 적으로 느끼며 싸우는 ‘흐르는 자’와 숲의 장엄한 운명을 다룬 가까운 미래의 세계을 포함하고 있다. 과거 천 년의 회상과 다가올 21세기를 몽상하는 교차적인 구성은 이 소설을 매직 리얼리즘이나 환상 문학으로 읽히게도 한다. 모험 소설, 하드 보일드 등의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소설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마루야마 겐지의 시들지 않는 패기를 느끼게 하는 점이 아닐 수 없다.
옮긴이 김난주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을 수료한 후, 1987년 쇼와 여자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오오츠마 여자 대학과 도쿄 대학에서 일본 근대문학을 연구하였다. 현재 일본 문학 번역가로 활동하며 명지대학교 사회교육원 번역작가 양성과에 출강하고 있다. 『천국에서 내려오다』 『일각수의 꿈』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노르웨이의 숲』 『N·P』 『멜랑코리아』 『먼 북소리』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가족 시네마』 『타일』 『렉싱턴의 유령』 『키친』 『골드 러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