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 그녀의 마지막 작품
96년 3월 3일 세계적인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의 문화부장관은 그녀의 죽음을 전해 듣고 "프랑스 문화계는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인물을 하나 잃었다"고 탄식했다. 프랑스의 모든 대학들을 통틀어 가장 많이 연구되고 있는 가장 다양한 외국어로 번역된 작가인 그녀에게는 "생존하는 프랑스 작가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그러나 그 수식어는 이제 더이상 그녀의 몫이 아니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판된 『이게 다예요』는 결국 뒤라스의 예언대로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 되고 말았다. 1994년 11월에서 1995년 8월까지의 일기를 엮은 『이게 다예요』를 내놓으면서 뒤라스는 그것이 자신의 마지막 책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가 사회운동가 영화감동으로서 지칠 줄 모르고 살아온 그녀의 열정적인 삶을 아는 이들은, 알코올중독으로 긴 혼수상태에 빠졌으나 기적처럼 회생하여 『여름비』 『글쓰기』 『바깥세상』과 같은 새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온 그녀의 강인한 생명력을 아는 이들은 그 "마지막"이라는 말을 그다지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이게 다예요』의 출간 직후 <누벨 옵세르바퇴르>지에 기고한 서평에서 장 프랑수아 조슬랭은 그래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녀도 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겠지만 어쩐지 그녀는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다"고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1914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베트남을 떠나 프랑스에 도착한 18세에 나는 죽었다"는 그녀 자신의 말처럼 메콩강 유역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그녀의 영원한 문학적 토양이었다. 1932년 프랑스에 영구 귀국하여 소르본느 대학에서 수학 법학 정치학을 전공한 그녀는 1943년 『철면피들』을 발표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84년 공쿠르 상을 받은 『연인』은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고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지명도는 뒤라스를 제대로 소개하는 데는 오히려 장애가 되었다. 변화와 젊음의 추구를 멈추지 않았던 뒤라스의 실험정신이 『연인』의 그늘에 대부분 가려져왔기 때문이다.
젊은 날 고 미테랑 프랑스 전대통령과의 우정을 맺어준 레지스탕스 활동, 6년 남짓한 공산당 활동의 맥을 잇기라도 하듯, 그녀의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관심과 재능은 문학의 테두리를 뛰어넘어, 걸작으로 꼽히는 <내 사랑 히로시마>의 시나리오를 쓰는가 하면 영호 <인디아송>을 직접 제작하는 등 영화와 연극의 장르에서도 눈부신 빛을 발했고 중대한 사회문제가 발생할 때에는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열정과 신념을 무기로 거침없는 삶을 지나온 뒤라스는 지난 1980년 서른다섯살 연하의 남자 얀 앙드레아와 사랑에 빠짐으로써 나이 예순다섯에 불꽃 같은 삶의 희열을 또 한 번 선사받았다. 여든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마지막 십오 년간 사랑의 기쁨과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죽음의 고비 사이에서 숨가쁜 말년을 살았던 뒤라스는 진정한 자유의 여인이었다. 그러나, 숱한 인생의 편력 끝에 죽음을 눈앞에 두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쓴 마지막 책 『이게 다예요』로써 우리는 글쓰기야말로 뒤라스의 시작이요 끝임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