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미학의 감동을 전해주는 손진은의 두번째 시집
나름의 개성적인 시세계로 젊은 시인들 가운데 높은 지명도를 획득하고 있는 손진은의 두번째 시집 "눈먼 새를 다른 세상 으로 풀어놓다"가 출간되었다.
손진은의 시가 품고 있는 향기는 아름답고 따뜻하다. 삶과 일상이 품고 있는 생명의 촉감들과 구체적 실감의 세계를 단정하고 정치한 수사로 표현해내고 있는 그의 이번 시편들에서 메마른 세계에 온기를 전하고 사위어가는 존재들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역 동적인 상상력의 힘을 발견할 수 있다. 자연과 사물에 천착한 작품들뿐만 아니라 이웃의 삶과 일상의 슬픔과 아픔, 활기찬 생명 의 세밀한 움직임을 절도있게 표현한 그의 시들은 가슴을 파고드는 서정미학의 감동을 전해준다.
감성적 상상력으로 포착한 구체적 실감의 세계
버스 속에서 가방을 받아주던 여자에 대한 육감적 상상력이 빛나는 시 「말들이 뭉클 솟아오르는 밤이었네」에서처럼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를 채우고 있는 것은 흔하디 흔한 일상의 경험들 속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해내는 감성적 상상력이 다. 이미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그 상상력은 활기차고 역동적이다. 그것은 삶과 일상 혹은 존재나 생명으로부터 시인이 구체적 인 몸으로 느끼고 사유하는 실감의 세계에서 비롯되고 있다.
몸속에 느낌으로 살아 숨쉬는 어떤 것이 존재와 사물의 내면으로 스며들 때 그가 구현하는 실감의 시학은 세계인식의 명징한 방법으로 떠오른다. 세계는 결코 정지해 있지 않다. 끊임없이 흐르고 있으며 출렁이고 있다. 그 역동적인 세계의 흐름을, 그 흐름 속에 깃든 생기와 온기를 손진은은 참으로 긍정적인 인식으로 실감나게 형상화하고 있다. 전깃줄 위에 앉아 지저귀는 제비 의 한갓진 풍경을 삶의 폭풍 같은 위기와 연결시켜 묘사한 「제비」라는 시의 발 밑에는 고압선이 내장한 평화나, 「끓는 밤-최창 균 형에게」의 세계가 혈액을 당기며 끓는, 끓는 밤 그리고 흙살 촉촉히 밟으며 / 졸음을 코에까지 건 / 연둣빛 어린 물기둥( 「봄날」) 같은 탁월한 표현을 생산하는 힘도 그 역동적인 상상력에서 연유한다.
존재와 생명의 기운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그의 실감의 세계는 모든 존재와 생명의 내부에 응집된 역동적인 힘을 탐지하고자 하는 지향성을 갖고 있다. 그 지향성은 액자 속에 얌전히 걸려 있는 그림(「시인-양치는 소녀」)이 마치 살아 움직이며 액자를 밀고 밖으로 걸어나오는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하고, 차갑고 폐쇄된 세계를 생명 에너지가 가득찬 세계로 바꾸기도 한다. 또 한 역사를 장악하고 조종하는 허위의 힘에 대한 비판적 인식(「면발 속에 바글거리다」)을 드러내거나 도시의 상징새가 독수리로 바뀐 사실을 풍자하며 도시 문명의 자연 훼손을 지적(「눈먼 상징-박희천 선생님께」)하는 힘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90년대 서정이 가닿는 새로운 지점
존재가 일으키는 전율과 파문, 생명의 미세한 기미들을 동적 이미지와 탄력적인 에너지로 절도 있게 포착해냄으로써 독특 한 시세계를 열어보이고 있는 손진은의 두번째 시집 "눈먼 새를 다른 세상으로 풀어놓다"는 움츠리고 막혔던 마음들에 포근함을 심어주며 세계와 존재의 따뜻한 혈맥을 찾을 수 있도록 이바지하고 있다. 존재와 사물 속으로 몰입하는 그의 시적 방식은 90년대 서정이 가닿는 새로운 지점을 형성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