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을 향해 질주하는 세기말의 문학 상황을 직시하고 타자성의 비평을 통해 그 출구를 모색한 우찬제의 세번째 평론집『타자의 목소리-세기말 시간의식과 타자성의 문학』이 출간되었다. 이 비평집은 문학 속의 무수한 허구적 인물들-타자들과의 은밀한 대화와 자유로운 교감을 통해 타자의 깊은 얼굴 속에서 자신의 숨은 얼굴을 들여다보는 그의 독특한 문학 읽기의 방식(타자성의 비평)을 보여준다.
오늘날 문학과 비평의 지형에 대한 정밀한 성찰
이 비평집은 총 4부, 21편의 글로 짜여져 있다.
우선 1부 <세기말의 시간의식과 90년대 소설의 문제성>에서는 질서에서 혼돈으로 치닫는 세기말의 시간에 주목하면서 그 혼돈 속에서 미적 질서를 찾으려는 고단한 작가의 노력을 비판적으로 조망하고, 90년대 소설의 전반적 경향 및 특징과 소설의 새로운 출구에 대한 나름의 전망을 담았다. 2부 <상황과 성찰, 혹은 타자성의 문학>에서는 오늘날 문학과 비평의 상황에 대한 공시적, 통시적 성찰의 글들을 모았다. 문학의 위기론이 심심찮게 대두되는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며 타자성의 문학에 대한 고민 속에서 과거로부터의 시간여행과 미래를 향한 시간여행을 감행한 글들을 싣고 있다.
또 3부 <소설의 꿈과 작가의 진실>은 문단의 주목받는 소설과 작가들에 대한 작가론, 작품론, 문체론이다. 황순원 소설에 대한 문체 분석을 시도한 글과 이청준에 대한 두 편의 글은 필자의 각별한 애정과 공이 들어간 평글이다. 그외에 박경리, 오정희, 임철우에 대한 비평을 담고 있다. 4부 <고장난 영혼의 시계>는 이인성, 신경숙, 윤대녕, 허수경, 박경철, 박청호 등에 대한 작가/작품론이다. 우찬제씨가 직접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이것은 90년대 소설의 새로운 현장을 면밀하게 답사하는 과정에서 들을 수 있었던 타자의 목소리들이다. 여기서 그는 나라는 비평적 타자의 눈길과 손길에 의해 그 타자의 목소리들이 하나의 텍스트로서 나름의 윤기와 생기를 보태게 되고, 그것으로 또다른 타자들과 새롭게 소통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문학이여, 타자의 목소리를 들어라!
문학을 통해 남의 얼굴을 보고 타자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활달하고 예리한 비평의 인식을 보여주는『타자의 목소리』는 여러 타자의 목소리들이 포개지고 겹쳐지며 다성적인 협화음으로 살아나면서 의미 있는 새로운 메시지를 창출하는 진중한 글들이 돋보이는 평론집이다. 90년대 문학 나아가 다가오는 세기의 문학에도 여러 타자의 목소리들이 어울려 여러 가능성 있는 화음으로 연주될 수 있기를 희망하는 이 평론집에서 언어의 경제학자로 평가받는 우찬제씨가 비평의 황무지에 던지는 목소리는 우렁차고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