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예작가 김이정은 1960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숭실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수료했다. 1992년 문화일보 문예공모에 단편「물묻은 저녁 세상에 낮게 엎드려」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남편의 여자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 일상의 붕괴와 전락! 장편『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서른네 살의 기혼 여성 윤희경이 남편 남인섭의 외도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며 여성적 삶이 처한 절망적 현실에 방황하는 이야기이다. 결혼 생활 6년 동안 안정되고 정제된 일상 속에 안주하던 윤희경은 어느날 "여자가 생겼어"라는 남편의 말에 존재 전체가 흔들리며 거센 폭풍우 속으로 휘말린다. 나른한 하품과 같은 삶에 갑자기 들이닥친 폭풍우 같은 남편의 한 마디는 한 남자와의 완벽한 일치를 소망하며 실핏줄 하나까지 서로 연결되는 완전한 소통을 꿈꾸던 그녀에게 제 힘으론 도저히 감당도 못할 무게와 고통을 안겨준다. 그리하여 남편과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여자를 만나면서 시작된 일상의 붕괴와 함몰은 그녀를 아득한 나락으로 빠져들게 하고, 남편의 여자와 함께가는 여행길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여성의 눈높이로 포착한 기혼 여성의 갈등과 방황 남편의 배반을 계기로 윤희경은 결혼 생활 속에 은폐되어 있었던 본질적인 문제들, 즉 남과 여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결혼이 가지는 허구성,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의 여성의 정체성 문제 등을 헤쳐내기 시작한다. 질서와 관습에 길들여진 자신의 교묘한 허위의식를 발견하며, 남편이라는 보호막 속에 안주하던 자신의 현실에 대해 진솔하게 되돌아본다. 이를 통해 작가 김이정은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여성 문제에 대해 여성에게 투사적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투사이기를 두려워하는 여성의 비겁함을 그대로 드러내며 그 비겁함에 대한 솔직한 응시로부터 출발해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 평론가 장소진씨가 지적했듯이 바로 이와 같은 주인공 윤희경의 내면 응시의 진솔함은 이 소설의 크나큰 매력이며 신선한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윤희경이라는 여성을 관념적이고 당위적인 논리로 무장시키기보다는 현실적이고 솔직한 고뇌로 몰아넣음으로써 우리 사회의 여성 문제에 대해 개성적인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 여성의 눈높이로 기혼 여성의 갈등과 방황을 날카롭게 투시함으로써 신예작가 김이정의 소설은 우리 시대에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여성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하는 각별한 작품 사랑과 결혼에 전 존재를 투사하는 우리 시대 여성들의 자아 회복을 위한 힘겨운 싸움과 극복의 과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장편『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한 기혼 여성이 남편의 여자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 일상의 붕괴와 전락을 보기 드문 진지한 자세로 포착해낸 주목할 만한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폐부를 휘젓는 감각적인 문장과 뛰어난 심리묘사 그리고 깔끔한 구도를 바탕으로 시종 차분히 전개되는 이야기는 이 작품의 큰 장점임과 동시에 신예작가 김이정의 소설 세계를 예의주시하게 만드는 이유가 되고 있다. 장편소설『길 위에서 중얼거리다』는 우리 시대 여성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예고하는 각별한 작품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