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 작가의 선두주자 김연수의 장편소설『7번국도』가
출간되었다.
시와 소설, 대중음악비평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우리 시대 새로운 감수성의 문학을 추구하고 있는 젊은 작가 김연수는 이번
소설에서 자신의 광범위한 문화적 관심 영역을 신세대적인 독특한 형식과 내용으로
담아내면서 세기말을 사는 젊은이들의 몽상과 욕망의 세계를 진지하게 펼쳐보인다.
장편『7번국도』를 채우고 있는 영역의 다채로움은 소설 읽기의 새로운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팝송과 영화, 시를 아우르는 이 소설의 다양한 제재와 언어
형식이야말로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감수성을 대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7번국도는 부산에서 시작하여 포항을 거쳐 삼척,
강릉, 속초를 지나는 도로이다. 동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7번국도를 이 소설의
인물들은 자전거를 타고 달린다. 그들은 젊음날의 사랑과 우울과 몽상의 시간을
가로지르며 상실과 희망, 폐허와 구축 사이를 끊임없이 왕복한다. 길 위에서
혹은 길 밖에서 격렬한 사랑으로 자신들을 묶으면서 일탈의 황홀경을 체험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세기말의 스산함에 마비된 이 시대의 감성이 커다란 파열을
일으키고 있음을 목도할 수 있다.
신세대 작가 김연수는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 계간『작가세계』여름호에 시를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1994년 장편소설「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떠오르는 신예작가로 주목받았다. 이후
시, 소설, 대중음악비평 등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장편소설『가면을
가리키며 걷기』가 있다.
상처의 기억을 새롭게 질서짓기-현재의 무의미성을
극복하기 위한 길 떠나기
장편소설『7번국도』은 로드 무비적인 요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길 떠나기의 익숙한 문학적 메타포를 함유함으로써 시작한다.
주요 화자인 나와 최재현은 현실과 일상과 사랑으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위해
자전거 여행을 계획한다. 일견 젊음의 낭만적 충동의 표출로 보이는 그들의
여행은, 그러나 허무와 무위로의 공허한 떠남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를 둔 그들
욕망의 재해석을 위한 떠나기이며 더 넓은 세계로의 진입을 위한 출발이다.
"길을 따라 추억되는 기억"과 나란히 진행되는 7번국도의 여행은
다채로운 형식적 요소들의 지원을 받으며 그들 젊음의 뜨거운 삶을 장악하고
있는 쓰린 기억을 다시금 질서짓고 존재의 각성에 의해 지리멸렬한 현실로 되돌아오기
위한 여행인 것이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나름대로 삶의 치열성으로
파종된 내면의 고통과 상처를 지니고 있다. 나는 권태와 피로로 가득 찬 시간
속에 갇혀 있으며 한때 사랑한 여자 때문에 자살을 기도했던 인물이다. 또한
최재현은 아버지로부터의 억압과 사랑했던 여자 서연과의 헤어짐이라는 흉터를
갖고 있다. 이 두 인물 사이에서 삼각관계의 구도를 만들고 있는 세희라는
여자는 진정한 존재의 집을 찾아 헤맨다. 재현이 사랑했던 연상의 여자인
서연은 자기의 남자에게는 결코 성기를 열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는데, 이미
그들로부터 사라졌음에도 그들의 일상에 환영처럼 떠돌고 있다. 그들은 모두
실연이라든가 무위(無爲), 외로움 따위의 존재론적 상처의 기억에 영혼을 침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그들이기에 7번국도로의 길 떠나기는
현재의 무의미성과의 격렬한 싸움의 몸짓인 것이며, 현재의 삶의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기억의 파편들을 되짚어 새로운 의미를 재생코자 하는 욕망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문학평론가 강상희는 "세상 밖으로 자기 자신을 추방하여
이 세상의 부정항이 되기보다는 세상 속으로 귀환하여 세상을 폭파시키려는
이러한 태도야말로 젊은 작가들로부터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어두운 세기말을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의 희망의
메세지
이 소설에는 다양한 7번국도들이 등장한다. 좀체
실체를 종잡을 수 없는 그 7번국도들은 소설 속에서 다채로운 존재 변환을
행한다. 작은 나무와 카페의 이름이었다가, 감염력 있는 질병이며, 외계인과
유령들이 출몰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비틀스의 노래 제목이 되기도
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과 우체부 할아버지의 이름도 된다. 이 7번국도들은
그것이 사물이든 인간이든 개념이든 이 소설로 하여금 다층적인 독법을 요구하는
독특한 요소들이며, 시적인 비유라든가 현란한 이미지 조합, 팝송의 가사라든가
에피그램의 인용과 같은 형식적 기교에서의 참신함과 돌발성을 즐기게 하는
자극제로 사용된다. 무질서하게 산개해 있는 듯 보이는 이 7번국도들은, 그러나
주제적 측면에서 총체적이고 내밀한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희망이다. 그 희망은 억압의 기억으로부터, 상실과 폐허의 기억으로부터 현실로
회귀하기 위한 희망이다. 그러므로 작중인물들의 이 7번국도들과의 숱한 조우는
최재현의 노래 <우리 세대>의 가사처럼 어두운 세기말을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의 희망의 메시지"를 상징한다. 그들은 민주화로 상징하는 현실의
지배논리로부터 벗어나 낯설고 끝이 없는 길을 따아 떠나지만 그 길 떠남을
통해 현실의 축으로 세울 수 있는 새로운 희망의 원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장편소설 『7번국도』의 새로움은 형식과 내용의 절묘한
어우러짐에 있다. 전통적 서사 구조를 위반하면서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통해
주제를 응집시키는 이 작가의 역량은 매우 돋보이는 측면이다. 때로 드러나는
형식과 내용의 충돌마저도 이 소설의 긴장감을 유도하고 있는 의도적 장치인
것처럼 보인다. 단적으로 이 소설은 "단일성과 종합을 거부하며 다양한
형식과 제재, 언어들이 가로지르고 있는 장(場)"이다. 바로 이와같은 특징이
젊은 작가 김연수의 작가적 저돌성과 폭발력을 입증해주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