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저녁
정찬 장편소설/문학동네 장편소설
동인문학상 수상작가 정찬씨가 등단 15년 만에 완성한 첫 장편소설
1983년 등단 이후 세 권의 소설집을 상재하며 문단의 각별한 주목을 받아온 중견작가 정찬(45세)의 첫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이 출간되었다.
작가 정찬은 그간 우리 문학이 줄곧 외면하고 있었던 ‘신과 구원의 문제’를 줄기차게 파고든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하면서 그 누구보다도 투철한 작가정신의 소유자로 인정받아왔다. 그리하여 1995년 중편 「슬픔의 노래」로 제 26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다시 한번 문단으로부터 탁월한 문학성을 인정받은 바 있는 그가 등단한 지 15년 만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첫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을 내놓은 것이다.
이 장편소설은 한마디로 ‘세기말의 암영(暗影) 위에 우뚝 선 값진 문학적 성과물’이라는 찬사와 함께 ‘90년대 한국문학에 매우 특이하면서도 소중한 문제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다. 왜냐하면 이 작품에는 인간 영혼의 신비와 존재의 궁극(窮極)을 탐색하는 숭엄한 작가정신이 넘쳐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고통과 절망의 끝을 보아버린 한 인간 존재의 거룩한 사랑의 실천과, 신이 예정한 운명의 미로 속에서 인간 내면의 아득한 실존적 고뇌를 치열하게 파고듦으로써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의 문제를 근원적으로 파고들고 있기 때문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일찍이 90년대 문학이 도달해보지 못한 사유와 언어!
중견작가 정찬의 야심작 『세상의 저녁』은 신과 인간의 진정한 관계에 대한 매우 진지한 물음일 뿐만 아니라, 한 인간에게 가해진 천형(天刑)과도 같은 고통에 대한 치밀한 사유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간 세 권의 소설집을 상재하며 다수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자신만의 소설세계의 핵심을 이루는 이와 같은 무겁고 진집한 주제를 작가 정찬은 이번의 첫 장편소설에서 다시 한번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황인후’라는 문제적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가톨릭 신부의 사생아라는 특이한 출생 내력을 가진 그는 간질병을 앓고 있다. 그로 인해 불우한 성장기와 폐쇄적인 성격을 갖게 된 그는 이종사촌의 별장에 칩거하며 살던 중 ‘강혜경’이라는 여자를 알게 되어 부부가 된다. 그들 사이에 아이가 태어난다. 그런데 아이는 선천성 심장기형으로 곧 죽고 만다. 죽음에서 아이를 구해달라고 눈물의 기도를 올리던 황인후는 아이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아 수도원으로 잠적한다. 그후 극심한 자학에 시달리던 황인후는 결국 유리걸식하는 부랑아가 된다.
폐가에서 짐승처럼 살던 그에게 어느 날 낯선 사내가 찾아온다. 그 사내와 대화를 거듭하며 황인후는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길만이 속죄하는 길임을 깨닫는다. 아이를 살려주지 않은 신에 대한 증오가 자신의 기도로 기적을 이루겠다는 교만에서 비롯된 것임을 질책하며 진정한 구원의 문제에 매달리게 된다. 마침내 그의 믿음은 진정한 희생, 가장 낮은 곳에서 온몸으로 이루어지는 거룩한 사랑의 기적을 몸소 행하는 실천으로 나아간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병든 노인들을 보살피다가 눈 쌓인 거리에 쓰러져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같은 기둥 줄거리에 황인후를 낳은 빈첸시오 신부의 회상과 갈등, 신부가 되기 위한 황인후의 피나는 수행, 약혼자를 포기하고 황인후를 선택했고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야 했던 강혜경의 고통, 영유아 연속 살인 경력이 있다는 병든 노인, 황인후의 거룩한 희생을 목격하는 동료 신부 등이 삽입되면서 소설은 이야기의 풍요로움을 획득한다.
소설의 줄거리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고통의 그 끝까지 체험한 황인후, 강혜경이라는 두 인물이 뜨겁게 흘리는 인간의 눈물에서부터 아이의 죽음으로 인한 신의 눈물까지를 아우른다. 그리하여 신과 인간, 선과 악, 기적과 구원, 사랑과 희생 사이의 연관성을 진지하게 탐사해나간다.
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주제를 작가 정찬은 흡인력 있는 이야기 전개와 선명하게 드러나는 인물의 성격, 군더더기가 없는 적확한 문체, 일찍이 90년대 문학이 도달해 보지 못한 치열한 사유의 높이, 밑줄을 긋고 싶은 ‘잠언’ 등으로 형상화한다. 이같은 그의 주제 의식과 소설 미학은 90년대 한국 소설의 주류는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90년대 한국 소설문학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선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씨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이 소설은 “본능과 물질로서의 존재로 자신을 비하시키며 절망을 모방하는 최근의 유행성 문학 안에서 한 줄기 감동의 눈물을 자아낸다.” 정찬의 소설은 스스로 하나의 주류인 것이다.
사랑하는 여인의 눈물에서 신의 눈물까지, 지독하게 슬픈 사랑의 이야기
소설의 주인공 황인후의 삶과 의식의 궤적 외에도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다. 황인후의 아내 강혜경의 지순한 사랑이 그것이다.
불우한 처지의 황인후를 사랑해 그와 한 몸이 되고 그의 아이를 낳기까지 했던 강혜경. 그녀는 황인후의 발작을 목격한 그 순간부터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약혼자와 유복한 가정을 모두 버리고 황인후를 헌신적으로 사랑한다.
문학평론가 김주연씨가 “사랑은 슬픔이다. 어떤 사람을, 혹은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슬픔의 감정 없이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황인후의 아픔에 동참하여 그의 모든 것을 슬퍼한 강혜경의 사랑은 아름답다. 자신을 내버리고 가버린 부모를, 자신의 간질병을 저주하지 않고 온갖 자학 끝에 결국 타인에 대한 희생양으로 삶을 내놓은 황인후의 사랑은 슬프도록 아름답다”라고 정확히 간파한 것처럼 강혜경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행위는 커다란 감동을 자아낸다. 이 소설이 지독하게 슬픈 사랑의 이야기로도 읽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혜경의 사랑은 세속의 사랑일지나 그 사랑은 희생과 속죄의 사랑이기에 ‘완전한 사랑’일 수 있으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감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영혼의 신비와 존재의 궁극(窮極)을 탐색하는 삼엄한 작가정신
등단한 지 15년이 된 중견작가 정찬에게 소설은 구원을 위한 대속행위 외에 다른 무엇이 아니다. 그의 소설은 그 무엇으로도 훼손되지 않은 신성한 세계로 나아가는 ‘신성한 길’이다. 그의 첫 장편소설 『세상의 저녁』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것은, 인간 영혼의 신비와 존재의 궁극(窮極)을 탐색하는 삼엄한 작가정신이며, 소설 쓰기가 곧 그 신성한 길임을 끝내 지켜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신성의 힘을 그는, 등장인물 황인후의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 “신은 내 몸 속에 깊은 상처를 만들어놓았어. 발작에서 깨어날 때마다 난 그 사실을 아프게 깨닫지. 하지만 그것은 힘이기도 해. 왜냐하면 상처는 세상의 질서를 경멸하는 힘을 나에게 주거든. 신의 상처를 지닌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이지. 난 그 힘을 한순간도 잊지 않았어. 꿈속에서조차.”
‘세상의 저녁’에 암울하게 드리운 고통과 절망의 끝을 보아버린 작가 정찬이 이 소설에서 던지는 수많은 질문은 그래서 결코 예사롭지 않다. 우리는 이 작품을 읽고 하나의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 “신은 진정 죽었는가?” 니체에 의해 신의 죽음이 선포된 이래 근대 문학은 구원의 담지자인 양 행세해왔다. 작가 정찬은 되묻는다:“신을 누가 죽였는가?” 그는 말하는 듯하다. “신은 인간의 희생 속에 살아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