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소설상은 제1회 수상작으로 은희경의 『새의 선물』, 제2회 수상작으로 전경린의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를 내놓 음으로써 문단과 독자들의 주시를 받는 대형신인의 탄생을 알리는 무대로 확고히 자리잡아왔다. 그에 따라 제3회 공모에서도 미등단 신인은 물론 기성작가들도 상당수 참여해 이 상에 쏠리는 높은 관심과 열기를 반영했다. 특히 제3회 수상자로 결정된 윤 애순씨는 1, 2회 수상자가 한 차례씩 문단 데뷔 절차를 거친 검증받은 신인이었던 데 비해 이번 수상으로 비로소 문단에 첫발 을 내딛는 새내기 작가라는 점에서 청량감을 한층 더하고 있어 주목된다.
장편소설 『예언의 도시』는 심사위원(김화영, 오정희, 윤흥길) 전원으로부터 다른 응모작보다 문학적 기량에 있어 월등하며 최근 우리 장편에서 보기 힘든 힘있는 주제의식과 뛰어난 서사성을 구비하고 있다는 호평을 받으며 상당수의 기성작가의 작품을 제치고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자로 잰 듯한 간결한 문장의 절제미와 함축미, 그것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묘사 능력 이 돋보이며 인간과 삶과 역사를 바라보는 남다른 통찰력이 큰 장점으로 받아들여져 또 한 명의 대형신인의 탄생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총평이었다.
윤애순(尹愛淳)씨는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 대학원 영문과 에서 수학했다. 그후 미국, 스위스, 캄보디아 등 세계 각지에서 외국 생활을 했다. 1998년 킬링 필드로 상징되는 혼돈의 나라 캄보디아에서의 체류 체험을 바탕으로 쓴 첫 장편소설『예언의 도시』로 제3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함으로써 문단에 데뷔했다.
선이 굵고 힘이 있는 소설! 비극적 사랑의 대서사시!
제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장편소설 『예언의 도시』는 총탄과 붉은 피로 점철된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혁명과 사랑, 음 모와 배반이 뒤엉킨 장대한 비극적 대서사시이다. 메콩의 붉은 강과 욕망의 밀림인 캄보디아라는 이국의 풍경 속에서 다양한 등 장인물의 욕망과 관능의 에너지가 원색적인 아름다움과 비의적 색채 속에 녹아들면서 살아 있는 리얼리티를 창출하고 있다.
"까마귀떼의 저주가 캄보디아의 하늘을 덮으리라"는 불길하고 음험한 예언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1975년의 크메르루 즈와 함께 시작된 비극으로부터 훌쩍 건너뛰어 1995년 4월로 속도감 있게 사건이 진행되면서 내전의 참상과 우기의 음습한 열대 기후에 휩싸인 캄보디아의 메콩 강 유역을 배경으로 낯선 이국 풍물 속에서 맺어지는 캄보디아인과 한국인들 사이의 관계를 면밀 하게 추적한다. 모험, 사랑, 섹스, 음모, 배반, 살인 등 한계상황 속의 인간들이 의당 보일 법한 갖가지 사건들이 다양하게 펼쳐 지며, 또한 절제된 묘사와 과감한 생략법으로 사건이 진행되는 전 과정에서 끊임없이 긴장과 흥미를 유발시키고 있다. 더욱이 메 콩의 붉은 강과 톤레삽 호수의 역류하는 물길에 비쳐지는 비의적이면서도 황량한 아름다움 속에 혁명과 사랑과 희망에 실패하고 배신당한 사람들의 쓸쓸한 연가(戀歌)가 깊은 울림과 감동을 전하면서 오랜 여운을 남긴다.
예언의 도시를 피로 적시는 어두운 사랑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실감으로 살아 움직이고 있다.
타(늙은이라는 뜻)는 젊은 시절 사랑에 실패하자 혁명가의 길로 뛰어든다. 그는 수용소로 끌려온 옛사랑의 여자 아니와 그녀의 남편 쿤을 다시 만나지만 쿤은 탈출하고 아니를 자기 손으로 죽일 수밖에 없게 된다. 그녀가 남긴 자신의 딸 스라이 를 안고 밀림 속으로 도망친 타는 변경의 바땀방 지방에서 숨어 살다가 마침내 프놈펜에 있는 아니의 옛집으로 돌아온다. 세월이 지나 스라이는 관능적이면서도 순진한 젊은 여자로 성장했다. 그녀는 수화도 배우지 못한 채 몸짓으로 의사표현을 하는 벙어리 이다.
한편 남상훈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소외감과 분노, 그리고 결혼의 실패와 동시에 그 배신의 피해자가 되어 몰래 한국을 떠나 캄보디아에 온 부동산 중계인이다. 그는 프놈펜에서 스라이의 집에 방을 빌려 기숙하면서 위험한 사업에 뛰어든다. 숙영 은 온갖 불안과 위험이 도사린 캄보디아의 수도에 처음으로 도착한 한국 외교관의 아내다. 그녀는 선천적 불구자인 자신의 아이 를 미국의 기숙사에 보내놓은 상처를 안고 낯선 이국의 땅에서 방황한다. 섬약하고 여린 그녀는 남상훈을 향한 사랑과 열망에 사 로잡힌다.
이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가슴 깊은 곳에 나름대로의 상처와 아픔을 지닌 실패한 삶을 살아간다. 이들을 에워싸고 서로 총뿌 리를 겨누며 권력다툼에 혈안이 된 프놈펜에서 야망, 사랑, 연민, 관능, 음모, 절망 등이 뒤얽힌다. 이같이 다양한 인물들이 어 수선하고 한 치 앞을 예상키 어려운 위험한 캄보디아의 정치 상황 속에서 욕망의 밀림을 헤쳐나가듯 사랑과 음모의 웅혼하면서도 비극적인 삶을 치밀하게 변주한다.
특히 "튀는 공처럼 억제하지 못하는 에너지로 금장 터져버릴 것 같"은 매력적인 벙어리 소녀 스라이와 남상훈과의 사랑, 여리디 여린 숙영의 남상훈에 대한 아픈 사랑은 총격이 난무하는 캄보디아의 프놈펜에서 어두운 비극을 예고하면서 이 소 설의 절정을 이룬다. 그들 사이를 붉은 강처럼 흐르고 있는 욕망의 물줄기는 역사와 운명의 비극성을 꿰뚫는 작가의 투시력을 표 상한다.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이국의 풍경 묘사 속에 똬리 틀고 있는 상처받은 존재들의 비극적 운명과 피로 얼룩진 역사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이야말로 이 소설만의 특유의 장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소설의 지평을 한껏 넓힌 수작!
이 작품은 앙드레 말로의 실존적 드라마 『왕도』의 압축된 문체와 속도감, 그 비극적 색채를 연상시킨다. 처음부터 비극적인 예언과 힘이 실린 단문의 스피디한 문체가 서로를 떠받쳐주면서 독서의 수준을 성큼 끌어올린다.-김화영(문학평론가)
캄보디아의 역사와 민중의 삶 그리고 그 소용돌이에 뛰어들어 좌초하며 희망의 빛을 건져올리는 한국인 남상훈과 숙영의 모습 들이 이국의 정취 속에 황량한 아름다움으로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혁명과 사랑과 희망에 실패하고 배신당한 사람들의 연가로 서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오정희(소설가)
모험, 사랑, 섹스, 배반, 살인 등 한계상황 속의 인간들이 의당 보일 법한 갖가지 사건, 이른바 모두스 비벤디가 다양하게 전 개된다. 그러면서도 자로 잰 듯한 간결한 문장의 절제미와 함축미,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묘사 능력이 돋보인다.-윤 흥길(소설가)
위와 같은 심사위원들의 평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장편소설 『예언의 도시』는 압축된 문체와 속도감, 선이 굵고 힘이 있는 서술로 다양한 알레고리와 상징 속에 비극적 운명의 표정들을 읽어내는 작가의 명민한 눈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값싼 감상성을 경계하며 서사성을 중시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이국의 정치적·역사적 참혹한 배경 속에 인간의 존재론적 상처와 삶의 비극을 정치한 문장과 극적인 구성으로 형상화하고 있어 독특한 감동과 매력을 전해준다. 이와겉은 미덕은 다음 세기를 준비하 는 우리 문학의 풍성한 성과로서 받아들여지며 또한 이 작품은 보기 드물게 우리 소설의 지평을 한껏 넓힌 수작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