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한국문학의 가장 큰 수확, 은희경의 두번째 장편 출간!
장편소설 『새의 선물』과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로 90년대 한국문학의 가장 큰 수확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 은희경. 그녀의 두번째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가 문단과 독자들의 지대한 기대와 관심 속에 마침내 출간되었다.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5년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 1997년 제10회 동서문학상 수상, 1998년 제22회 이상문학상 수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이 말해주듯, 은희경은 등단 이후 3년여 동안 문단의 화제를 불러일으키는 문제작들을 꾸준히 발표하며 근래 가장 풍요로운 작품활동과 문학적 성과를 거둔 작가로 인정받아왔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전편격으로, 출간 즉시 폭발적인 화제를 모으며 문단과 독자들로부터 찬사가 쏟아진 첫 장편소설 『새의 선물』과, “사랑은 천상의 약속일 뿐”이라며 사랑의 미혹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작가의 가차없는 시선이 신랄함과 재기발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첫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가 모두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한껏 성가를 올린 작가 은희경은 두번째 장편소설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 또 한 번 사랑과 결혼에 관한 현대인의 통념과 상식을 뒤집는 파격적인 상상력으로 독자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전한다.
배신과 반칙이 없는 ‘물 같은 사랑’에 대한 가차없는 풍자와 야유
은희경 소설의 매력과 장점은 “맛깔스럽고 재기발랄한 풍자와 얄미울 정도로 감정을 배제한 냉정한 시선” “진지한 얘기를 유머와 농담으로 풀어내는 특유의 화법” “선량하고 도덕적인 척 치장한 세인(世人)들의 폐부에까지 꿰뚫고 날아가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세태의 본질을 심술궂게 들춰내는 작가의 눈길” 등으로 표현되어왔다. 한마디로 그녀의 소설은 “신랄하고 가차없기 때문에 재미있”으며, 교묘하게 가려진 삶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상식과 통념을 일거에 뒤집어버리는 통찰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이다. 우리 문학사에서 귀하고 값진 이와 같은 은희경식 독설과 묘사는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의 핵심 주제는 ‘사랑’이다. 그러나 흔하디흔한 이 주제를 은희경은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도전적인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녀가 말하는 사랑은 고상하고 감상적이며 한없이 가슴 아리게 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다. 한 사람만을 위해 목숨조차 버릴 수 있는 지순한 순정(純情)은 더더구나 아니다. 이미 『타인에게 말 걸기』에서 “사랑은 천상의 약속일 뿐”이라고 선언했듯이, 은희경식 사랑법은 그 사랑의 낭만성을 뒤엎어버리는 ‘순정의 아이러니’ ‘순정의 역학’으로서의 사랑이다. 정해진 규칙을 따라가는 사랑이 아니라 배신과 반칙이 횡행하는 규범 없는 사랑이다. 비극이 예정돼 있는 하나도 안 되고, 불안하고 부담스러운 둘도 안 되는, 애인이라면 셋이라야 족한 사랑이다. 자유분방한 사랑이며, 이 사회에서 통용되는 획일화된 가치나 허위의식에 신랄한 냉소를 퍼붓는 사랑이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억압과 금기들에 의해 숨겨진 진실을 드러내는 사랑이며, 그 억압들로부터 진정 자유로움을 얻는 사랑이다.
『새의 선물』의 열두살 진희가 삼십대 어른이 되어 펼치는 자유분방한 사랑
소설의 주인공은 삼십대 후반의 이혼녀이자 대학교수인 강진희. 『새의 선물』에서 이미 예고되었듯이 “나는 삶이 내게 별반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열두 살에 성장을 멈췄다”고 당당히 선언한 소녀 진희가 성장한 어른의 모습으로 재등장한 것이다. 그녀는 애인이 셋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유분방한 여자이다. 남자를 쉽게 잊는 냉정한 여자이며, 육 년 동안이나 같이 산 남편과 이혼 수속을 마치고 와서도 보충수업까지 하는 독한 여자이며, 사랑하면서도 헤어짐을 무릅쓰는 강한 여자이다. 그러면서도 애인이 그리우면 몸을 던져 달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열적인 여성이며, 올드 팝을 좋아하는 감성적인 여자이고, 상처를 입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빨리 대범한 척하는 소심한 여자이기도 하다. 소설에서, 분리된 화자의 이중성은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표현된다.(이는 『새의 선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진희에게는 세 명의 남자가 있다. 첫번째,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은 외모의 현석. 그는 대학교수로 미남이고 지적이지만 소심한 인물이며 그 소심함을 냉소로 위장하고 있다. 진희는 그와는 미래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는 관계이며 언제라도 원할 때에 자기의 감정을 철회할 수 있는 매력적인 관계로 설정한다. 두번째, 시사 주간지 사회부 기자인 세 살 연하의 유부남 종태. 여자를 감동시키지 못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스타일의 인물로 “바람처럼 왔다가 방귀처럼 냄새만 남기고 아무 데서도 찾을 길 없이 허망하게 떠나버리는 일을 남자다운 일이라고 확신”하는 쾌활한 성격의 남자이다. 진희는 그를 자신과는 기호와 취향이 다르지만 편안한 상대로 여긴다. 마지막으로, 전남편 상현. 소설 속에서는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으나, 진희가 그와의 재회를 위해 카페에서 기다리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장식하는 인물이다.
모든 사랑은 반칙이다! 사람이 아닌 사랑을 사랑하라
주인공 진희는 이 세 남자를 동시에 사랑한다. 사람보다는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세 명의 애인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운명적 사랑이나 무거운 순정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롭게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사람에 얽매일 필요가 없으므로 애인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며, 그럼으로써 순정이니 운명적 사랑이니 하는 사랑에 대한 일체의 환상을 깨부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랑에 가장 커다란 병균은 사랑에 대한 환상이기 때문이다. “환상이 하나하나 깨지는 것이 바로 사랑이 완결되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은희경은 사랑에 관한 치명적인 환상을 없애기 위해 사랑을 상대로 위악적인 실험을 하는 것이며, 스스로 기꺼이 ‘악역’을 맡아 삶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조롱과 냉소를 퍼붓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한 심리묘사를 통한 ‘속내 까발리기’라는 은희경식 독설이 마냥 신랄한 냉소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씁쓸한 우수와 그윽한 감동이 함께 있다. 특히 현석의 아이를 중절 수술한 후 현석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그것을 거절하는 진희의 대사는, 원래 시니컬함 속에는 감동적인 삶의 진실이 배어 있게 마련이라는 진실을 보여주는 극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뒤통수를 후려치는 통쾌한 역설에 의해 은희경의 소설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히는 것이지만, 읽는 이들을 사로잡는 보다 중요한 요소는 바로, 끝내 삶의 진실을 놓지 않는 은희경의 문학적 진정성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랑과 결혼에 관한 통념을 뒤집는 은희경의 파격적 상상력!
세 명의 남자를 동시에 사랑하며 우리 시대에 쉽게 허용되지 않는 자유분방한 사랑법을 구사하면서도 섹스에 관해 “사랑의 감상적인 처녀지이며 고급한 마지막 지점”이라는 고결한 생각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진희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사랑과 결혼에 관한 우리들의 통념과 상식이 얼마나 허위로 가득 찬 것인지 쉽게 깨닫게 된다. 우리들의 무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무수한 억압들을 거침없이 까발리며 이 시대의 흔하디흔한 사랑법에 반기를 든 은희경의 ‘마지막 춤‘은 더없이 우아하고 정열적이며 경쾌하고 육감적이며 슬픈 춤이다.
1997년부터 동아일보에 일 년간 연재되었던 장편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연재중 빗발치는 독자들의 전화가 있었다고 한다. 작가가 ‘연재를 마치며’에서 밝힌 것처럼, 진희의 사랑법에 대해 공감과 비난이 팽팽했거니와,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과 기대를 짐작할 만하다. 특히 매일매일 연재를 따라가며 진희의 마음의 움직임에 이끌렸던 한 독자가 진희가 중절 수술한 날 술을 많이 마셨다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이 소설의 제목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는 팝가수 드리프터스(Drifters)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