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기차 타는 등뒤에 남아
- 저자
- 김한수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일
- 1998-07-23
- 사양
- 264쪽 | 신국판
- ISBN
- 89-8281-129-x
- 분야
- 소설집
- 도서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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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 정가
-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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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80년대 후반에 등단, 90년대에 들어서도 고집스럽게 리얼리즘이라는 창작방법론을 고수함으로써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젊은 작가 김한수의 두번째 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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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1965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다. 1988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중편 「성장」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봄비 내리는 날』과 장편소설 『저녁밥 짓는 마을』 『하늘에 뜬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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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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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90년대 리얼리즘의 견고한 성채―김한수의 두번째 소설집 출간
80년대 후반에 등단, 90년대에 들어서도 고집스럽게 리얼리즘이라는 창작방법론을 고수함으로써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젊은 작가 김한수의 두번째 소설집 『그대, 기차 타는 등뒤에 남아』가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집은 첫 소설집 『봄비 내리는 날』(창작과비평사, 1992년) 이후 6여 년 만에 묶이는 그의 두번째 소설집으로 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그의 소설세계의 특징과 장점을 선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간 한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소설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배척된 계층의 삶을 생생하게, 그야말로 더럽고 추한 속살까지를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김한수는 특별한 주목을 받아왔다. 그는 이번에 출간되는 두번째 소설집에서도 환상적인 기법의 소설이나 내면으로만 파고드는 소설들이 주류를 이루는 요즘 경향에 편성하지 않으면서 그만의 독자적인 소설 영역을 고수, 가난하고 거칠고 핍박받는 하층민의 삶에서 소중한 인생의 희망을 건져올리는 순정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하면 등단 후 줄곧 그가 굳건히 견지하고 있는 ‘견고한 리얼리즘의 성채’로서의 소설세계를 재확인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번 소설집의 의의가 각별하다고 하겠다.
가난한 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에 대한 집요한 관찰
김한수의 소설은 무엇보다 실패한 인생, 소외받는 자,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놀라우리만치 집요한 시선으로 추적하고 들추어낸다. 도시 문명으로부터 배제된 ‘변두리’의 삶에 꼿꼿이 박혀 있는 그의 소설은 노동자들, 하층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세계 안에 단단히 갇혀 있고, 그 치유를 지향하고 있다. 손목시계를 만드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노동자 연인의 휴일을 그린 「변두리」, 과거 운동을 했던 친구들의 씁쓸한 해후를 다룬 「거대한 입」, 실직자가 되어 쫓겨나다시피 인천으로 내려와 부대찌개 전문점을 운영하며 살아가는 ‘나’의 퇴폐적인 일상을 묘사한 「숨쉬는 화석」 등이 대표적인 경우로 김한수는 “형체가 없는 억울함”을 가슴에 담아두고 사는 밀려난 인물들을 통해 날것으로서의 삶, 시대와 사회의 불합리로 패배한 자들의 억울한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즉 그는 가난한 사람들의 날것 그대로의 삶을 조금의 여과 없이 폭로하면서 퇴폐와 속물적 욕망에 감염된 이 시대의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정어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변두리 삶에 대한 통찰을 확대시켜 우리들의 삶 전체를 제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은 감동적이”라는 소설가 이남희의 지적처럼 김한수 소설의 주무대는 도시 변두리라는 공간이다. 중심부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이 괴로움과 고통을 안고 모여 사는 동네, 이 시대의 퇴폐와 불행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곳인 ‘변두리’의 삶을 김한수는 우울하면서도 분노에 찬 시선으로 관찰한다. 그 관찰에 의해 전개되는 소설은 싱싱한 묘사와 생생한 리얼리티로 생동감이 넘친다. 이야기는 박진감이 넘치고 때로는 충격적이며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꽉 짜인 플롯이 소설의 안정감을 더해주고, 소설 여기저기서 보이는 해학은 차라리 애잔함과 비애 그 자체이다. 이와 같은 김한수 소설의 특징들은 90년대의 다른 소설들과는 격을 달리하는 그만의 독자적인 면모라고 할 수 있다.
변두리 서민들의 소박한 삶에서 우리 시대의 희망을 길어올리는 소설
김한수의 소설집은 일곱 편의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 그의 소설적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세 편의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의 소설세계를 살펴보자.
먼저 「숨쉬는 화석」의 내용은 이렇다. 스무 개나 되는 동이 모여 있는 연립주택의 반지하에 살고 있는 ‘나’는 아내와 함께 부대찌개 전문점을 하고 있다. 어느 날 아내가 노출증에 걸린 변태성욕자로부터 괴로움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신경이 예민해진 ‘나’는 이층에 사는 남자를 의심한다. ‘나’는 현장에서 그를 붙잡아 응징하고 싶다. 그러나 ‘나’ 역시 만화방이나 전화방, 퇴폐이발소 같은 곳에서 빈둥거리는 속물적인 존재다. 소설의 결말에서 마침내 ‘나’와 아내는 그 변태성욕자와 마주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이층에 사는 남자가 아니다. 그 남자를 잡으려다 놓친 ‘나’는 그 순간 이 사회의 변태성욕자는 그 한 사람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개별화된 개인들의 음험한 욕망이 도사리고 있는 세계, 도시 문명의 질병에 감염된 변두리 서민들의 세계는 「1994, 그 가을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나’는 자신이 나서 자란 산동네를 결코 떠나려 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이사 가기를 조르는 아내의 요구를 묵살해버린다. 그러나 한밤의 산동네를 울린 여자의 비명 소리와, 비명을 듣고도 나오는 이 없이 텔레비전의 파란 빛만 쏟아져나오는 산동네의 모습에 ‘나’는 분노에 차서 돌을 던져 창문을 깨버린다. ‘나’는 이 산동네 또한 무관심과 익명의 세계에 갇혀 개인이 단자화되는 도시적 질병에 깊이 감염돼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빈 수레 끄는 언덕」의 무대 역시 주인공이 식당 영업을 하는 거리의 상가이다. 보신탕집 여주인 ‘보배네’는 남편과 시어머니, 두 시동생과 시누이의 등쌀에 짓눌려 살아가면서도 시어머니 몰래 계를 들어 일 년이나 밀린 월세값을 마련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장기자랑에 나가겠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보배네의 이 꿈은 목돈 냄새를 맡은 시어머니 탓에 물거품이 되고 그녀는 마침내 가출을 결행하게 된다. 커다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온 그녀는 다급히 부르는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사라진다.
그 외에도 사랑하는 여자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사내의 사연을 담은 표제작 「그대, 기차 타는 등뒤에 남아」, 도시의 밤풍경만을 전문으로 찍어대는 사진작가가 컴퓨터 통신을 통해 만난 여자와 무료한 섹스를 즐기는 과정을 냉소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세상의 속악함과 삶의 무의미성을 신랄하게 드러낸 「스테인드 글라스의 눈」 등 흥미로운 소재를 다룬 일련의 작품들도 관심을 끈다.
이와 같이 김한수의 소설은 현대 사회의 중심부에서 배제된 ‘변두리’의 삶, 즉 도시 외곽의 하층민들의 삶에 렌즈를 들이대 그들의 고통과 소외와 불행을 예리하게 관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어둡고 황폐한 모습에 대한 남다른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안온한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그 희망의 근거를 서민들의 소박한 삶과 성실한 노동에서 찾고 있는데, 이는 90년대 우리 소설에 있어 그만의 독자적인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대 후반에 등단, 90년대에 들어서도 고집스럽게 리얼리즘이라는 창작방법론을 고수함으로써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유지하고 있는 젊은 작가 김한수의 두번째 소설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