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라는 고전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
이 책은 기록상 윤동주가 남긴 첫번째 시인 「초 한 대」부터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시에 주목하는 책들은 많지 않다. 우리가 윤동주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것이 착각인 경우가 많은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고등학교 교과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책들도 「별 헤는 밤」 「서시」 「참회록」 「쉽게 쓰여진 시」 등 이미 알려진 작품들에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가능한 한 많은 윤동주의 시를 소개하며, 그의 전 생애를 어떠한 편견이나 선입관 없이 좇고자 했다. 특히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사촌형 송몽규의 신춘문예 등단에 자극받아 시작(詩作)에 더욱 몰두했던 윤동주의 모습 등을 생생하고 편안한 문체로 그리며,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이 되도록 했다.
‘동시 시인’으로서의 윤동주에 주목한 것도 이채롭다. 지금까지 거의 다루어진 적 없는 동시인 「조개껍질」 「병아리」 「개」 「만돌이」 「거짓부리」 등을 읽으며, 윤동주가 왜 동시 시인인지 논증한다. 그의 전체 작품 중 30퍼센트 가까이를 동시로 분류할 수 있으며, 동시를 발표할 때는 ‘동주(東舟)’ 혹은 ‘동주(童舟)’라는 특별한 필명을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이다. 아울러 그의 남동생인 일주와 광주 역시 동시를 썼다는 점도 재미있다. 윤동주를 이해하려면 그의 동시에 주목해야 한다. 동시에 드러낸 어린아이처럼 맑은 마음은 동시가 주를 이루었던 초기작에서뿐만 아니라 윤동주의 시 전체를 관통하는 원형질이 된다.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고자 했던
‘진짜’ 윤동주를 들여다보다
윤동주는 1939년 9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어떠한 글도 남기지 않는 ‘침묵기’를 거친다. 이 기간에 윤동주의 내면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는 「팔복」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산상수훈을 패러디해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를 여덟 번 반복하는 이 시를 두고 대부분의 해설서들은 불신앙에 기초한 풍자시라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윤동주의 시 전체를 아우르는 ‘슬픔’의 정서를 이해한다면, 오히려 이 시를 정반대로 해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동주는 「투르게네프의 언덕」에서처럼 주머니에 지갑과 시계를 가지고도 이것들을 내어줄 용기가 없어 적선하지 못하는 여린 마음, 즉 가난하고 ‘슬픈’ 사람들을 쉽게 동정하지 못하는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섣부른 구제가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헤아렸던 것인데, 「팔복」에서 말하는 “슬퍼하는 자”가 바로 윤동주가 마음 쓰고 위로하고자 했던 대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는 결과적으로 “슬퍼하는 자”들이 행복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따뜻한 위로의 시라는 주장이다.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용됐던 윤동주의 재판 판결문에 대한 해석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연구자들이 이 판결문을 두고 사실관계에 대한 일제의 조작이 있었을 거라고 추론했지만, 저자는 대부분의 내용이 실제 사실에 근거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판결문에서 그려진 윤동주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르게 적극적이고 강한 투사의 모습이지만, 무장투쟁을 주장한 김약연의 제자이자 송몽규의 친우였다는 사실로 미루어볼 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지금껏 정설로 굳어진 해석들을 찬찬히 뜯어보며 편중된 사실들을 바로잡고 있다.
왜 아직도 윤동주인가
윤동주는 스물여덟이라는 짧은 생을 살며 110여 편의 시를 남겼다. 그가 쓴 시들은 대체로 서정시의 형태였지만, 절대로 나약한 것은 아니었다. 순정한 평화를 그리워한 동시에서도 “왜떡이 씁은데도/자꾸 달다고 하오”(「할아버지」)처럼 미묘한 반일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것이 결국은 윤동주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지만, 윤동주의 시는 “서정적으로 올바른” 것들이었다. “서정적으로 올바른 시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를 안다.”(문학평론가 신형철) 윤동주의 시는 “슬퍼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었고, 그의 삶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윤동주를 기억하고, “그가 누웠던 자리”(「병원」)에 누워보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