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축미 있는 구성과 사건에 대한 새로운 해석, 거기에 예상을 뒤엎는 결말 처리가 돋보였다”는 평을 받으며 제13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김연수의 세번째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가 문학동네에서 재출간되었다.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 소설집을 관통하는 유일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진실도 말해질 수 없다’일 것이다. 이 세계는 이야기될 수 없는 것이라는 작가적 자의식은, 그러나 허무주의에 쉽게 안착하는 대신 이야기의 가장 마지막 지점까지 우리를 밀어붙인다. 요컨대 말해질 수 있는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그 자리에서 멈춰 서버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야기의 끝의 끝까지 가닿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앞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절망’이란 허무주의에서 이끌어낸 그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단어가 된다.
그가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아무리 해도,
그러니까 자신의 기억을 아무리 ‘총동원해도’
문장으로 남길 수 없는 일들이 삶에서도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을까? 「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속 ‘나’에 따르면, 사람들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어두운 구멍’이 존재하고, 그 구멍의 실체까지 이해하겠다는 건 결코 인간으로서는 이룰 수 없는 무모한 열정이다. 때문에 그는, 남편이 모는 자동차만큼도 그가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세희에게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다. “다른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니, 인간이라는 게 과연 이해받을 수 있는 존재일까?” 누구도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인식 앞에서 소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총 3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것이다. 여기에는 어떤 개인적인 메시지도 남기지 않은 채 자살한 여자친구와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낭가파르바트라는 산에 오르는 ‘그’, 그리고 ‘그’가 남긴 노트를 통해 ‘그’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추측하는 ‘나’가 등장한다. 이 셋 중 그 누구의 마음 상태도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고, 다만 우리는 ‘나’를 통해 ‘그’를, ‘그’를 통해 ‘그녀’에 대해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 지리를 따라가는 일의 지난함과 꼭 닮은,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이 이야기의 협곡을 간신히 헤치고 도달하게 되는 지점은, ‘우리는 여전히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가 될 것이다. 처음의 그 의문에서 360도를 돌아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온 듯 보일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 눈으로 뒤덮인 험난한 산길을 조금씩 조금씩 오르며 이르게 된 지점이 처음 그 자리와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실패가 예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다만 할 수 있는 것은 그 ‘어두운 구멍’을 끊임없이 바라보는 일, 누군가가 남긴 글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일일 것이다. 김연수에 따르면 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타인/세계를 이해하려 하지만 결국 이에 실패하는 것이 곧 사랑이다. 부단히 실패하는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는 이 사랑의 실체를 확인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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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소설은 알 수 없으며 말로 표현하는 것은 더더욱 가능하지 않은 그 진실에 대해 알고자 하고 나아가 말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시도가 아닌가? 당연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를 알면서도 낮은 포복으로 조금씩 조금씩 앞을 향해 나아가는 김연수 소설의 말길을 따라 그 어둠 속 진실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하나씩 하나씩 열린다는 점이다. _‘대산문학상 심사평’에서
■ 본문에서
그때만 해도 나는 그녀의 꿈속까지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의 일들이 그대로 꿈속으로 이어진다면 말이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꿈속에까지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_「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
우리가 그 품안에 안겨 있을 때는 그 어떤 이해도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인간은 어둠에 본능적으로 애착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이율배반적인 애착에 대해 나는 조금 더 생각해본다. 환한 빛, 따뜻한 낮이 아니라 캄캄한 어둠, 서늘한 밤을 향해 우리가 지니는 애착에 대해. _「그건 새였을까, 네즈미」
전쟁터에서 세 발의 총성을 들을 때, 마음속에 그려지는 그림이란 하나도 없어. 그 순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울부짖거나 정신없이 달려가는 것뿐이지. 한 번만이라도 온몸으로 다른 인간을 사랑해봤다면, 마음에 그림 따위가 그려질 겨를은 없는 거야. 그저 움직일 뿐이지. 뿌넝숴. 운명이 드러나는 순간에 언어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지는 거야. _「뿌넝숴不能說」
운명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은 논리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맞서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씨앗이며 고목을, 꽃이며 과실을, 새순이며 낙엽을, 탄생이며 죽음을. 그 속에 인간의 보잘것없는 의지까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147쪽)
몸의 온기로 따뜻해진 이불은 다시 그 몸을 따뜻하게 만든다. 마음이 편안해 보이는 사람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운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깊은 곳 어딘가에는 벌거벗은 마음이 존재한다는 걸 깨닫는 밤이 있게 마련이다. _「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