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쓰기가 삶의 과정이자 무기인 작가 양헌석, 13년 만에 만나는 그의 신작 장편소설!
2003년 좌익 집안 남매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자전적 성격의 장편소설 『오랑캐꽃』으로 13년 만에 독자들을 찾았던 소설가 양헌석, 그가 또 한번 13년 침묵 끝에 새 장편 『아메리칸 홀리』를 펴냈다. 1982년에 등단했으니 올해로 작가 인생 34년, 『아메리칸 홀리』가 두번째 장편임을 감안하면 드물게 과작(寡作)인 작가이다.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문제의식을 충분히 통과해낸 뒤에야 비로소 써내려갈 수 있다는 의지로도 볼 수 있을 터, 뉴욕 맨해튼에서 인종차별에 의한 테러를 당한 한 언론인의 목소리를 담은 이번 작품은, 2002년 도미, 파이낸셜뉴스 워싱턴 특파원, 뉴욕 중앙일보 편집위원, 미주 국민일보 편집국장 등을 지낸 작가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아메리칸 홀리’는 성탄절에 흔히 보는 뾰족한 육각형 잎에 빨간 열매를 맺는 나무이다. 작가는 포식자와 피식자가, 지배하는 자와 지배당하는 자가 존재하는 크고 작은 집단을 하나의 ‘정신병동’으로 상정하고, 그 정신병동을 아메리칸 홀리 나무가 에워싼 채 지켜보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리며 이 작품을 썼다고 술회한다. 9·11테러 이후 미국 내 이민자 사회, 그중에서도 미주 한인 사회, 그 속의 한 일간지 미국 지사, ‘준(準)사이코패스’ 소리를 들으며 성공가도를 달려온 ‘나’의 내면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맨해튼의 환상적인 스카이라인 아래에 숨겨진 선악의 맨얼굴과,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불안과 불신의 병폐를 치밀하게 파헤친다.
악의 불꽃이 내 안에서 늘 일렁인다. 겸손을 가장한 오만, 자신을 숨기고 싶은 음습함, 작은 마찰에도 가볍게 몸을 일으키는 증오심 등 수많은 자아들이 메두사 머리처럼 독을 내뿜고 있다. (…) 난 언제나 그런 내가 두렵다. 입을 열 때마다 청산유수인 당신은 그런 당신이 두렵지 않은가?
—‘작가의 말’에서
악의 제국, 악의 축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포식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 보이나
모 일간지 미국 지사 편집국장인 ‘나’가 어느 날 괴한의 습격을 받는다. 병원에서 눈을 떠보니 양쪽 아킬레스건이 잘렸고 성기를 자르려고 시도한 상흔도 발견되었다. 증거 부족으로 경찰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나’는 지난 삶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원한을 가질 만한 사람을 떠올려본다. 낯선 미국 땅에서 경쟁자들을 비인간적으로 짓밟으며 살아온 ‘나’는 용의선상에 올릴 이름이 적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의 추적 과정은 점차 ‘나는 누구인가’라는 실존적 물음으로 귀결되며, ‘나’는 자신이 찾는 범인이 사실상 자신이 만든 범인일 수밖에 없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는 이 작품의 외형적 소재인 9·11테러, 그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역학관계와 묘하게 맞물린다.
소설은 ‘나’와 용의자들 사이에 있었던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일들을 차례로 보여준다. ‘나’가 처음부터 이기적이고 배타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한때 ‘나’는 타락한 종교인이나 비자 사기를 친 한인 변호사를 고발하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 그 변호사의 입지가 위태로워지면서 불법인 줄 알면서도 그에게 비자를 부탁할 수밖에 없었던 이민자들의 상황도 나빠졌다. 그들 중 누군가가 범인일 수 있다. 그러나 대개 ‘나’는 자기에게 쓸모가 없거나 경쟁 상대가 될 인물을 사내 정치로 교묘히 상처 입히고 재기하지 못하도록 짓밟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B이다. B는 과거의 ‘나’처럼 지식인의 양심과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중요시한 인물이다. ‘나’는 그런 B를 참을 수 없었다. ‘나’의 모략에 휘말린 B는 결국 회사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추적 끝에 ‘나’는 B를 용의자로 지목, 그에게 직접 복수하고자 한다. “그가 죽을 만한 이유가 있다면 이 살인은 당연히 인과응보인 것이다. 그가 만약 죽을 만한 이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정글에서 죽는 가젤이 이유를 알고 죽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아무쪼록 그가 죽을 만한 이유가 있기를 바란다. 그런 존재감마저 없다면 어찌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냥 초원에 뛰노는 한 마리 가젤에 불과한 것이다. 역설적으로 본다면 그런 선량함 자체 또한 그가 죽어야 할 이유가 아니겠는가” 하고 되뇌는 ‘나’. ‘나’는 어느 깊은 밤, 바닷가 절벽에서 B의 목에 칼을 겨눈다. 이 사건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범인은 누구이며, ‘나’가 복수라는 미명 아래 B를 죽이기까지 하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 속 여러 등장인물 가운데 ‘나’와 B만이 이름이 없다(‘나’는 ‘이국장’ ‘이선생님’ 등으로 불리지만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동전의 앞뒷면, 혹은 거울 속에 비친 모습과 같은 이 두 사람은, 정신적으로는 같은 뿌리를 갖고 있으나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자라난 자아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또다른 정신세계인 B를 없애려는 ‘나’, 그럼으로써 ‘나’가 버티고 살아내려는 세계. 그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가 낯설지만은 않다. “그의 정신세계가 무죄라면, 그냥 삶과 세상이 부조리한 것일 뿐. 나에게 세상이 부조리했듯이 그에게도 세상이 부조리했을 뿐이지”라는 ‘나’의 발언을 우리는 부정할 수만은 없다. ‘나’를 냉혈한이라고, 악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정의를 향하고, 옳은 일을 하고, 선한 것을 좇는 것이 약한 자, 도태되는 자의 몫이 되어버린 이 일그러진 세계에 사는 우리가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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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아메리칸 홀리』는 매우 독특한 소설이다. 뉴욕에서 한 언론인이 테러를 당한 후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 외형상 골격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추적하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다. ‘9·11’이라는 서사를 바탕으로 한 양헌석의 이 작품은 강자의 눈에 비친 냉혹한 세상을 군더더기 없는 문장으로 묘파하고 있다. 선하거나 약한 자의 시각으로 그려진 통상적인 소설과는 달리 악의 심연을 형상화해내는 쉽지 않은 독창성을 보인다. 악의 완성이란 특이한 주제에 도전한 작가 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그의 오랜 공백을 메워줄 성공작이다.
-조정래(소설가)
한국의 고급 지식인이 자본주의 심장 맨해튼에 이민자로 살면서 처절한 테러를 당하며 시작되는 『아메리칸 홀리』는, 테러범을 추적하는 과정이 숨가쁘게 이어져 읽는 이로 하여금 한순간도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동시에 인간 내면에 병존하는 복합적인 선과 악의 아포리아를 자본주의 삶 속에 깊숙이 박혀 이미 뼈가 돼버린 우리에게 제기하면서……
정신병원 앞에 무심하게 서 있는 ‘아메리칸 홀리’는 그 상징이다.
이 근원 화두가 맨해튼뿐만 아니라 지금 이곳, 우리 앞에 제기된 것이라고 깨닫게 해주며 양헌석은 이 땅의 큰 소설가로 귀환하였다. 그 당당한 모습에 가슴이 얼얼해지며 심장이 두근댄다.
-강형철(시인, 숭의여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