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의 웅성임 한 인문학자가 생각하는 3.11 대재난 이후의 삶
- 원서명
- 死者のざわめき: 被災地信仰論
- 저자
- 이소마에 준이치
- 역자
- 장윤선
- 출판사
- 글항아리
- 발행일
- 2016-03-04
- 사양
- 반양장본 | 308쪽 | 188*128
- ISBN
- 9788967353056
- 분야
- 정치/사회, 평론
- 도서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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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정가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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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의 지진이 일본 태평양 연안을 강타했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곳곳에서 땅이 갈라졌다. 도로가 부서지고 전봇대가 쓰러졌다. 차라리 시간이 멈추었다면 좋았을 그때, 10미터 높이까지 치솟은 쓰나미가 덮쳤다. 뒤이어 원전이 폭발했다.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동일본대지진의 참상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5년 동안 재난지역을 둘러싼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도무지 믿기 힘들 만큼 참혹한 광경에 눈물 흘리던 이들이 사라졌고, 재난지역을 다룬 기사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재난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다. 재난은 깊은 상흔을 남겼고, 그것을 결코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 사건은 단지 빠르게 잊히는 중이다. 일본의 저명한 종교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재난지역을 4년간 걸었다. 재난지역 바깥에서 비당사자, 외부자로 머물기를 그만두고 재난지역에 직접 찾아가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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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시즈오카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후,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종교학을 전공했다. 하버드대학, 런던대학, 취리히대학 등에서 객원교수를 지냈고, 일본여자대학을 거쳐 현재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포스트구조주의 및 탈식민지주의를 기반으로 주체와 타자, 문체와 표현 행위의 의미를 묻는 작업을 진행하는 등 일본 종교학과 역사학의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최근에는 식민지조선에 대한 연구와 함께 인간의 불안과 구제에 대한 재해지 신앙론의 분야로까지 연구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 <近代日本の宗敎言說とその系譜>(2003), <宗敎槪念あるいは宗敎學の死>(2012), Religious Discourse in Modern Japan: Religion, State, and Shinto(2013), <종교와 식민지 근대>(공저, 2013), <死者のざわめき 被災地信仰論>(2014)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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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한국어판 서문
들어가며
서장
죽은 자死者의 웅성임│나라, 하세 신앙│히사노하마, 연인들│아라하마, 관음상을 다시 찾다
제1장 재난지역의 목소리들
교토, 지진의 현기증│오나가와, 중유와 모래먼지│이시노마키, 상처 입은 지장상│센다이, 카페 드 몽크
제2장 부재하는 고향
후쿠시마, 나카도리, 방사능이 내린 밤│교토, 희생의 공동체│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주변, 금이 간 고향│후쿠시마 하마도리, 유령이 없는 마을
제3장 죽은 자를 애도하다
쓰가루, 가와쿠라 지장상│무라야마, 사자의 결혼식│미나미산리쿠, 방재청사│도쿄, 메이지 신궁의 봉납의례
종언終焉, 진혼의 노래
미나미소마, 끊어진 교통망│사와다 겐지 라이브Ⅰ, 바다를 향해서│사와다 겐지 라이브Ⅱ, 가만히 입맞춤을│고베, 어둠 속의 루미나리에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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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리뷰
감당할 수 없는 고통과 슬픔 한가운데로 뚫고 들어가
그 의미를 물은 기록!
재난지역을 4년간 돌아본 한 인문학자의 르포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서 ‘역사의 웅성임’을 포착하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책이다.
재난지역을 둘러싼 정성스런 일기만도 아니고, 저자의 진혼여행 기록만도 아니며, 재난지역에서 죽은 자들의 목소리가 되지 못한 ‘웅성임’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_야마가타 다카오 도호쿠대 교수
“이 책은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가 지니는 중요성을 통절히 드러내고 있다.”
_사토 히로오 도호쿠대 교수
동일본대지진이 남긴 상흔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에 멈춰버린 시계가 있다. 잿빛 잔해로 남은 마을, 아무도 없는 교정에 덩그러니 서 있는 천사상, 오염된 땅, 버려진 어선……. 동일본대지진이 남긴 상흔이다.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의 지진이 일본 태평양 연안을 강타했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곳곳에서 땅이 갈라졌다. 도로가 부서지고 전봇대가 쓰러졌다. 차라리 시간이 멈추었다면 좋았을 그때, 10미터 높이까지 치솟은 쓰나미가 덮쳤다. 뒤이어 원전이 폭발했다. 지진이 일어난 것은 14시 46분. 쓰나미가 덮친 것은 15시 37분. 이 50여 분 동안 생사生死가 갈렸다.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살아남은 이들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다. 방사능을 피해 살던 땅을 떠나야 했고, 생업을 잃었다.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동일본대지진의 참상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5년 동안 재난지역을 둘러싼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도무지 믿기 힘들 만큼 참혹한 광경에 눈물 흘리던 이들이 사라졌고, 재난지역을 다룬 기사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연대’나 ‘재난 공동체’라는 말들은 허공을 떠돌아다니다 흩어져버렸다. 무너진 건물 옆으로 천사상만 서 있을 뿐, 사람은 없다. 재난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다. 재난은 깊은 상흔을 남겼고, 그것을 결코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 사건은 단지 빠르게 잊히는 중이다. 일본 내 원전은 2015년부터 순차적으로 재가동되기 시작했으며, 재건은 대도시나 번화가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 모두가 센다이 시의 재건을 이야기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는 해안지역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쓰나미가 가장 먼저, 가장 거세게 덮쳤던 해안지역 마을들은 여전히 귀환 곤란 지역으로 지정된 채 폐허로 남아 있다. 부흥 경기로 떠들썩한 도시와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도시가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날 쓰나미로 이 집 딸이 죽었어요. 약혼자가 매일같이 와서 꽃을 바치고 있지요. 곧 결혼할 예정이었습니다. 모두가 재난지역, 재난지역 하고 떠들지만 아무도 모르는 재난지역,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재난지역도 있습니다.”
그러나 재건 작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모든 지역이 재해 이전 상태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폭발한 원전에서 나온 대량의 방사성 물질은 흙에도, 부서진 건물 잔해에도, 바닷물에도 흘러들어갔다. 제염 작업을 한다고 해도 지표면에서 몇 센티미터를 걷어내는 것이 고작이다. 이제는 ‘연대’라는 말 대신 건물 잔해나 오염토를 재난지역 안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말, 중간저장시설을 우리 지역에 설립할 수 없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보상금을 둘러싼 갈등관계가 생겨났고, 당사자와 당사자가 아닌 이들 사이에 괴리가 커졌으며, 원전 주변에 살던 주민들은 피난 간 지역에서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재난지역은 일종의 게토가 되어버렸다.
이는 동일본대지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 전후 일본사회는 오키나와에 미군 기지를 설립하거나 한국전쟁의 특수를 이용함으로써, 혹은 일본 각지의 주변부에 원전을 지음으로써 경제적 번영을 구가했다. 그 과정에서 희생을 강요당한 이들, 즉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람들의 목소리는 일본사회 중심부에 결코 닿지 못했다. 말하자면 동일본대지진이 드러낸 것은 우리 발아래에 잠재한, 우리를 언제 덮칠지 모르는 위험만이 아니다.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시스템이 전후 일본사회의 번영을 지탱해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망각되었다.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아무도 찾지 않는 유품을 생각하면 복잡한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쓰나미 피해지에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한 사람들도 있겠죠.”
2011년 3월 11일, 리히터 규모 9의 지진이 일본 태평양 연안을 강타했다.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었다. 곳곳에서 땅이 갈라졌다. 도로가 부서지고 전봇대가 쓰러졌다. 차라리 시간이 멈추었다면 좋았을 그때, 10미터 높이까지 치솟은 쓰나미가 덮쳤다. 뒤이어 원전이 폭발했다. 여기까지가 우리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동일본대지진의 참상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5년 동안 재난지역을 둘러싼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도무지 믿기 힘들 만큼 참혹한 광경에 눈물 흘리던 이들이 사라졌고, 재난지역을 다룬 기사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다. 재난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다. 재난은 깊은 상흔을 남겼고, 그것을 결코 완전히 지워낼 수는 없다. 사건은 단지 빠르게 잊히는 중이다. 일본의 저명한 종교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는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재난지역을 4년간 걸었다. 재난지역 바깥에서 비당사자, 외부자로 머물기를 그만두고 재난지역에 직접 찾아가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