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락된 말, 배제된 공간, 소외된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
문학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 여기서 가능한’ 최선의 대답을 찾다
2003년 『작가세계』를 통해 비평활동을 시작한 이래 진지한 사유와 탄탄한 문장으로 꾸준히 의미 있는 평론을 써온 문학평론가 소영현의 새로운 평론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본격적인 문학평론집으로서는 두번째인 이 책에서, 소영현은 하위자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깊이 천착한다. 문학은 승리자의 편이 아니며, 늘 소외되고 배제된 자들의 편이었다. 그가 평론을 쓰며 염두에 두었던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하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시대의 삶은 야만화하는 동시에 위계화하고 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면한 현실 앞에서 ‘동물로 살거나’ ‘이끼로 살거나’ ‘차라리 고독사’를 당하는 수밖에 없다. 소영현은 동시대 소설들 속의 화자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어떤 목소리로 말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인다. 그들에게 진정한 삶의 시간은 멈춰 있다. 소영현은 이 뼈아픈 비평의 기록들이 우리 사회에서 잊혀서는 안 될 기억이라고 믿는다. 하위자들의 시간은 어떻게 도래하는가. 문학의 자리에서, 문학을 벗어난 자리에서 우리 모두에게 절박한 질문이라 할 만하다.
1부는 ‘소설, 공동체, 휴먼’이라는 제목 아래 한국소설에 나타난 종말론적 상상력과 연대 없는 공동체들, 외계인이나 동물, 프롤레타리아 로봇이나 쓰레기-인간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소설 속 화자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담았다. 각 작품들에 대한 평이라기보다는 2010년대 한국사회에 대한 비평적 재구축에 가까운 묵직한 글들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실제적 재난이든 도래한 위험에 대한 불안이든 위험의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불평등이 국가적, 지역적, 계급적 위계를 재편하는 동시에 그 위계 자체를 강화하고 증폭시킨다는 점이다. 위험과 재난은 평등하지도 민주적이지도 않다. 자본은 불평등의 위계를 확장하고 자연화하기까지 한다.(「데모스를 구하라」, 31쪽)
2부는 ‘몫 없는 자들의 전언’이라는 제목 아래 본격적으로 하위자들을 다룬다. 특히 서발턴 개념을 들어 풀어내고 있는 여성-몸에 대한 사유는 현재 한국문학 평단에서 가장 시의적인 연구라고 할 만하다. 늘 하위자일 수밖에 없었던 여성 주체, 쫓겨나고 팔려나가고 소외받는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약자-하류계층’으로 이어지며 세계에서 배제당한 비루한 존재들에게 희망이 있는가를 조심스레 묻는다.
여성의 몸이 생계수단이 된다는 말은 여성이 생존의 최전선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기껏해야 폭력적 위계구조 위에 세워진 형식적인 것임에도 폭력적 울타리마저 열망하게 되는 것은 생존의 최전선에 놓인 삶이 너무 참혹하기 때문이다. 몸이 생계수단인 여자들은 매 순간 인간임을 포기해야 하는 어떤 문턱에 직면하게 된다.(「서발턴을 위한 문학은 없다」, 123쪽)
3부는 ‘공동체의 유령들’이라는 제목 아래 우리 시대의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부재-사라짐’을 다뤘다. 가부장의 부재를 중심으로 풀어낸 글들도 있지만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은 이곳에서도 역시 드러난다. 김숨의 『철』, 서하진의 『요트』, 구효서의 『별명의 달인』 등 단행본을 중심으로 써내려간 글들을 주로 모았다.
고백하자면, 『철』의 세계는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박정희식 근대화의 시간을 지나왔던 나의 일상을 단박에 파노라마처럼 끄집어내는 회상 기제였으며, 그를 통해 나는 완전히 망각했던 그 시절의 일상이 퍼즐처럼 짜맞춰지는 기시감을 경험했다. (……) 그 풍경을 통해 나는, 개체로든 집단으로든 단 한 번도 온전한 주체가 될 수 없었으며 그럼에도 전적으로 사물-대상으로만 존재한 것도 아니었던 존재들, 한국의 자본주의 발전사와 생애 주기 혹은 생의 주요한 시간들을 함께해야 했던 아버지 세대, 그들의 행복하고도 불행했던 과거사의 양면을 동시에 만날 수 있었다.(「철의 시대를 기억하라」, 219쪽)
4부는 ‘공공감정과 공통감각을 찾아서’라는 제목 아래 비교적 짧은 비평들을 모았다. 주로 『문학동네』 『창작과비평』 『문학과사회』 등 문학잡지나 신문에 실렸던 글들이다. 다양한 주제와 소설 들을 통해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문학적 논의를 담았다.
예술과 현실 사이에는 시차가 있고 매개가 있다. 부가설명이 필요 없는 사실이다. 머지않은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자면 쉽게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 그 가운데서도 언어예술은 현장의 의미를 언제나 뒤늦게 감지한다. 예술은 미약한 손 촛불이 검은 장막을 걷어내는 광명이 될 수 있음을 사후적으로나 깨닫게 된다. 용산참사 이후 출렁이며 파고를 달리한 집합감정에 대해서도 뒤늦게야 추수할 수 있었다. 한 시인의 탄식처럼 예술은 역사의 현장에 대해 언제나 늦된 아이다.(「예술과 공동체들」, 322~323쪽)
전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 처음으로 이전보다 풍요롭지 못한 삶을 살아야 할 세대. 말을 잃은, 살 곳을 잃은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늦된 문학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간절히 묻는다. 우리-하위자들의 멎어 있는 시곗바늘을 힘차게 돌릴 수 있는 힘은, 어쩌면 이 물음으로부터 생겨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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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평집은 누락된 말, 배제된 공간, 소외된 존재에 대한 관심을 문학의 이름으로 풀어보고자 했던 사유실험의 흔적들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염두에 둔 채 ‘지금 여기서 가능한’ 최선의 답안을 찾고자 했으며, 유용한 해답이 될 만한 단서들을 사유의 힘이 닿는 한 찾고자 했다. 비평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꽤 멀리 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이 질문은 비평작업을 위한 베이스캠프가 되어 있었다. 문학 범주에 대한 질문의 궤적이 한 비평가의 것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기억이자 기록이라 믿기에 이 글들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낸다. _‘책머리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