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작은 순식간에 정해졌다.
_세계일보 신춘문예 심사평(소설가 강석경·문학평론가 김화영)
보편성에서 설득력이 나오고 특이함에서 변별력이 있는 서사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_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평(소설가 성석제·문학평론가 김종회)
빛은 상처의 틈새로 들어오는 것. 그러니 울지 마라, 라고
어둠 속에 잠긴 이들을 감싸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
신인작가 이은희의 첫 소설집 『1004번의 파르티타』가 출간되었다. 바흐의 파르티타 2번 d단조(바흐 작품 번호 BWV 1004)를 그 제목으로 한 소설집에는 동명의 작품을 비롯하여 총 일곱 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선긋기」가,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1교시 언어이해」가 당선되면서 작가로서 인상적인 출발을 알린 것이 2015년의 일이다. 신춘문예에 당선되기란 시쳇말로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일보다 어렵다고 말해지는바, 두 편의 당선작을 낸 일도 놀랍거니와 등단한 바로 다음해에 발표한 소설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낸다는 사실 또한 우리를 설레게 만든다. 아마 당선작들이 선사한 감동과 놀라움을 계속해서 경험하고 싶은 이들의 마음이 모여 이루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 문학적 성취도가 상당하여 “당선작은 순식간에 정해졌다”(세계일보 신춘문예 심사평)는 평을 받은 「선긋기」와 “보편성에서 설득력이 나오고 특이함에서 변별력이 있는 서사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서울신문 신춘문예 심사평)는 평을 받은 「1교시 언어이해」, 이 두 편의 작품을 읽고서 한 젊은 작가가 써나갈 문학의 미래를 기대하지 않기란 오히려 어려운 일이 아닐까.
“나는 이렇게 가득 모아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선긋기」는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온 십대 소녀를 화자로 삼은 이야기로, 이은희가 인간의 ‘성장’이라는 사건에 무엇보다 큰 작가적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성장의 미묘한 순간을 섬세하고 기품 있는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품이다. 특유의 예민함으로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듯 보이는 소녀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온 마음을 다한다. 부모는 그런 소녀가 못마땅하다. 소녀가 마음을 주는 존재는 몰래 담배를 피우러 가는 담벼락에서 만나는 길고양이뿐이다. 이러한 소녀의 마음을 한 뼘 자라게 만드는 건 칠층의 여자와 폐지를 줍는 할머니와의 만남이다.
소녀는 칠층의 누군가가 음식물을 던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주민들에게 그것은 “음식물 쓰레기”이며, 그러니 무단 투기하는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여기지만 소녀는 “그것이 더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식탁의 음식물에서 곧잘 기이한 상상을 하는 탓에 제대로 먹지 못하는 소녀이지만 바닥의 음식물만큼은 어쩐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소녀는 “베란다 밖으로 던져진 음식물을 그린다”. 그 그림을 본 칠층의 여자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들에게 평소에 밥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해명한다. 소녀는 여자를 안심시키려는 듯 “저, 지금 아줌마 처음 봐요”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벗어난다.
담배를 피우러 담벼락을 찾은 소녀는 폐지를 줍는 할머니와 마주친다. 소녀의 눈에 할머니의 리어카가 무사한 것이 들어온다. 어느 새벽 누군가 아파트 안의 재활용품을 가져가려는 할머니를 신고하여 경찰이 왔던 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따뜻한 토스트를 반으로 갈라 소녀에게 건네주고 소녀가 맛있게 다 먹는 모습을 본 후에야 자신의 몫을 먹는다. 그러곤 소녀가 길고양이를 위해 놓아둔 참치캔을 보며 “깡통째 주지 마라, 고양이 입 다친다”라고 말한다. 소녀는 그 할머니를 위해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오랜 고민 끝에 소녀가 그리는 것은 선(線)이다. “결이 되고 면이 되도록 빈 종이에 선을 모으는 기분”을 느끼며 소녀는 선을 그려나간다.
「선긋기」는 아마 이 지점에서 진정한 등단작의 의미를 성취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은희가 소설가로서 자신의 출발점으로 삼은 곳이 바로 여기인 듯싶다. “최초의 선을 어디에 어떻게 긋느냐에 따라 그림이 결정될 터였다”라고 말하는 소녀의 모습에 젊은 소설가 이은희의 모습이 비치는 듯하다. 미술 처음 하는 사람이나 하는 선긋기를 왜 네가 하느냐는 아이들의 질문에 소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이렇게 가득 모아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수직적인 선이 아니라 옆에서 옆으로 흐르는 수평적인 선, 소설가 이은희에게는 문장이 바로 그 선일 테다. 이은희가 이렇게 써낸 이야기를 주고 싶은 존재가 누구인지, 「선긋기」는 부드럽게 가리켜 보이고 있다.
“아직도…… 사랑하고픈 마음이 남아 있는데,
혹시 그것으로도 괜찮겠습니까.”
일찍 엄마를 잃고 외할머니와 힘겹게 살아온 소녀 연이가 주인공인 「푸른 문을 열면」,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데다 친구라 믿었던 이들에게는 배신을 당해 죽음을 생각하는 소년이 등장하는 「1004번의 파르티타」 등이 이 「선긋기」와 같은 계열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종착점은 고작 죽음이라는 사실, 그렇기에 우리는 모두 나이를 불문하고 미성숙한 존재라는 것. 그러니 삶의 매 순간 성장을 향해 꽉 닫힌 문을 열어젖히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이은희의 연약한 주인공들은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아마 작가로서 이은희가 인간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리라 짐작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연이는 케이크와 차를 파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 카페에는 푸른 문을 그린 그림이 하나 걸려 있다. 바랜 그림 속의 문틈으로는 뽀얀 빛이 새어나오고 있다. 언젠가 카페의 벽지를 누군가 칼질로 찢어놓아서 생긴 흉터를 가리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어느 날 카페의 단골 중 한 명인 노신사가 위스키를 넣은 홍차를 여러 잔 마시고는 난동을 부린다. 자신이 선물하는 케이크를 연이가 받아주지 않자 던져버린 것이다. 그 소동으로 그림이 떨어져 유리가 깨어지고 케이크의 붉은 물이 들어 그림은 망가진다. 이제까지 연이에게 우호적인 듯싶었던 노신사는 사실 비틀린 우월감으로 그녀를 대했을 뿐임이 드러난다. 연이는 어지럽혀진 바닥을 치우며 기억 속의 할머니, 그리고 자신에게 ‘울지 마라’라고 말해주던 엄마를 떠올린다. 그리고 망가진 그림을 바라보며 자신이 어느덧 푸른 문을 지나왔음을 깨닫는다. 고봉준은 해설에서 이 작품을 언급하며 “이것은 극복/승화가 아니라 위로, 그것도 자신의 내부로부터 힘을 발견하는 자기 위로라는 점에서 새로운 감수성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1004번의 파르티타」에 등장하는 소년의 삶에서는, 「선긋기」의 소녀(길고양이, 폐지 줍는 할머니)나 「푸른 문을 열면」의 연이(울지 마라, 라고 말해주던 엄마, 바람떡을 만들어주던 외할머니)에게 주어졌던 부드럽고 따뜻한 삶의 조건들이 모두 제거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년이 태어나던 날에는 다리가 끊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후 다리는 보수되지만 사람들은 그날의 사건에 대해서 되도록 말을 아끼려고 한다. 이는 마치 소년의 영혼에 가해진 사고처럼 소년의 얼굴에서 웃음을 거둬간다.
동물병원 원장인 소년의 아버지는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이었고, 남편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소년의 어머니는 불안정한 정신 상태로 결국 자살을 택한다. 소년에게는 기돈 크레머를 함께 들을 수 있는 친구가 생기지만 그것은 소년의 착각일 뿐이었다. 친구는 소년에게 언제나 거짓말을 일삼았던 것이다.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다가 책상서랍 안에서 잃어버렸던 헤드폰을 발견한 소년은 어렴풋이 그 진실을 감지한다. 따뜻하고 다정한 마음을 갈구하던 소년의 주변에는 그런 척 위장하며 소년을 손쉽게 속이고 그저 필요한 것들만을 얻어가던 이들이 있을 따름이었다.
이제 소년의 곁에 남은 것이라고는 더이상 살 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듯 그가 주는 간식을 거부하던 유기견 유키뿐이다. 절망에 빠진 소년은 유키를 안고 다리 위에 올라 생각한다. 신이 만약 “네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대봐”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꾸해야 할까. 망가진 다리처럼 애초에 망가진 채 태어나 살 자격은 물론 죽을 자격도 없는 존재가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던 소년은 문득 “제겐 망가진 추억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걸로 괜찮겠습니까” “아직도…… 사랑하고픈 마음이 남아 있는데, 혹시 그것으로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은희는 삶의 어둠을 밝히는 빛은 생살이 찢겨나간 고통의 증거, 바로 벌어진 상처의 틈새를 통해 들어온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연약한 영혼의 성장을 이야기하며 인간이라는 존재를 섬세하게 그려 보이는 이은희는 「1교시 언어이해」 「꿈꾸는 리더의 실용지침」 「오빠」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 인간을 둘러싼 세계에 대한 긴장의 끈 또한 바투 잡고 있는 듯하다. 해설에서 고봉준은 “이은희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 사회-시스템의 변방을 부유하는 미약한 위성들(satellites)이거나, ‘운’좋게 그 시스템에 진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을 지배하는 권력의 메커니즘에 의해 희생되는 ‘미생(未生)’의 청춘들이다”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예리한 사회적 감각을 가리키는 것이라 이해해도 좋을 이 설명은 이은희가 앞으로 펼쳐 보일 작품세계가 결코 만만하지 않을 것이라 예상하게 만든다. 매 순간 인간이란 무엇인가 물으며 써내려가는 빈틈없는 문장들, 동시에 억압적인 세계를 향해 대결의 자세를 흩뜨리지 않는 올곧은 이 작가의 첫 소설집을 세상에 내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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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는 때에 저는 예술적 경험들을 떠올립니다. 기억 속에 예술적 경험이 존재한다면 그 빛나는 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들을 버티게 해준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 창작의 시간도 예술적 경험이지만 제게 무엇보다도 빛나는 추억은 사랑이 무엇인지 느꼈던 일들입니다. 어느 날 고개를 들었을 때 밤하늘에서 커다란 달을 발견한 일처럼, 자꾸 떠오르는 것들에 관해 생각하는 동안 첫 소설집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_‘작가의 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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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빛’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그 위로가 이 폭력적인 세계를 견뎌내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 그것을 통해 “내게, 울지 마라, 라고 말해주는 힘……”으로 남은 엄마와 ‘나’가 연결된다는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엄마가 날 사랑했던 일은 등불 하나 지닌 것처럼 힘이 되었다. 유릿조각을 주우며 나는 그 힘에 관해 생각했다.” 이것은 극복/승화가 아니라 위로, 그것도 자신의 내부로부터 힘을 발견하는 자기 위로라는 점에서 새로운 감수성이다. _고봉준(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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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선긋기 해? 미술 처음 하는 사람이나 하는 거잖아? 나는 이렇게 가득 모아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누군가 알아들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선긋기」, 29쪽)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빛이 두려웠지만 언젠가는 그 문을 내 손으로 열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품안의 푸른 문 그림을 향해 마지막으로 말해야 했다. 울지 마라.(「푸른 문을 열면」, 109쪽)
네가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대봐. 다리 위의 신이 말한다면, 그는 한 가지만 묻고 싶었다. 제겐 망가진 추억 말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도 그걸로 괜찮겠습니까……? 돌아보면 그는 썩지 않으며 강물 속을 흘러온 것과 마찬가지로 살아왔다. 그는 그의 몸에 새겨진 기억들이 매일 그를 밀고 왔다는 것을 생각했다. 아직도…… 사랑하고픈 마음이 남아 있는데, 혹시 그것으로도 괜찮겠습니까. 대답처럼, 망가진 그 다리가 출렁거렸다.(「1004번의 파르티타」, 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