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도 겪어도 나란 사람은
뭔가 되게 크게 잘못된 것 같아
이랑은, 참 여러 가지를 하며 사는 사람이다. 영화를 찍고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그림을 그린다. 이것 전부 그의 직업이다. 열일곱 살에 출가해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영화연출과에 입학해 영화를 찍었으며, 취미로는 노래를 만들며 다방면에서 줄곧 예술가로 살아왔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한 가지만 하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만 할 수는 없다. 이랑은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것들을 선택했고, 예술가로서 자신의 영역에서 그것들을 잘 지켜내고 있다. 이랑에게 있어서 이 세상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런 이랑이 이번에는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이 책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는 이랑이 자신에게 혹은 세상에 던지는 끝없는 질문이다.
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뭔가 되게 잘못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때. 이 세상에 어쩌다가 태어나서, 인생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놓곤, 어디로 흘려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때. 가족을 만나고, 친구를 만나고, 연인을 만나고, 그들과 헤어지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걸까 싶은 순간.
세상 모든 사람들은 수많은 선택과 결정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하면서, 각자 삶의 궤도를 그려나가고 있는 것 같다. 문득 돌아보았을 때에 그 궤도는 본인이 보기에 꽤 자연스럽고 당연한가?
질문을 던져본다. 세상에는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많아, 질문은 끊이질 않는다. 가끔은 살아 있다는 것 사실 자체가 굉장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도 본인이 선택한 것이 아닌 생을,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하고 있다. 아빠는 왜 그런 사람이고, 엄마는 왜 이런 사람인지, 학교는 왜 다녀야 하며, 왜 매일 아침에 잠에서 깨어 일어나야만 하는 건지 궁금하다. 보고 싶은 사람을 보기 위해서는 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알고 싶다. 조금씩 변하는 사람들, 그것을 예측해낼 수가 없다는 사실이 이상하다. 질문에 대한 답은 없고 질문의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부풀어나는 하루들이다. 각을 곤두세우고 세상을 바라본다. 결국, 뭔가 되게 크게 잘못된 것 같다.
모든 상황의 중심에 있음에도 자기 자신을 완벽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겪어도 겪어도, 예측하지 않은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은 매번 벌어진다.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매번 돌봐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내가 나를 살려내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두들 자신을 어떻게 돌보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대체 무엇을 해야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책 속에서 이랑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 희극배우가 관객 앞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보이듯, 편하고 자연스럽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한다. 노래를 만들 때처럼 누워서 중얼중얼,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상하면 이상한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예술가로서, 생활인으로서, 그냥 사람으로서의 이야기를. 이것은 그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고로, 자신의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때론 시선을 돌려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친구에 대해 이야기해보지만, 결국 다시 본인의 이야기로 돌아와버리고 만다.
그렇지만 이 책은 일기와 같은 ‘기록’보다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에 가깝다. 이야기하는 것을, 글을 쓰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랑의 에세이는 저자가 겪는 감정과 욕망으로 가득하다. 그냥 웃었고, 울었다. 절망했고, 즐거웠다. 죽고 싶었고, 엄청 살고 싶었다. 일본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서로를 실컷 좋아한다.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기운 빠지게 울다가 동기들과 밖으로 나와 장난치며 힘껏 웃고 다시 들어가 친구의 영정사진 앞에서 실컷 운다. 스쿠버다이빙을 배우며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다시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겠다 다짐했으나 안정을 되찾자마자 다시 바다로 뛰어든다. 죽고 싶다며, 사라지고 싶다며 괴로워하다가 어느 날은 겨우 한의원에서 침을 맞으며 ‘살려주세요’라 외친다.
이는 삶에 병적으로 찾아오는 변덕이 아니다. 조울도 아니다. 그냥, 살아가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인생을 잘 살아내려는 즐거운 놀이이자 악다구니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고 싶은, 괜찮은 상태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이다. 이 에세이에 담은 저자 이랑의 이야기가, 멈출 수 없는 생에 위로가 되기도 한다.
전작 『이랑 네컷 만화』 『내가 30代가 됐다』에서 시크하고 때론 웃음이 나는 그림을 그려왔던 이랑은 이번 『대체 뭐하자는 인간이지 싶었다』에도 에세이에 더불어 그림을 덧붙였다. 키우는 고양이 준이치와의 모습, 친구와의 아옹다옹한 에피소드, 일기장에 적어두어 간직해온 메모 등을 기반으로 구성한 그림들에 특유의 시크함이 전해지며 동시에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그러나 중간중간 코끝이 잠깐 찡한 여운도 담겨 있어, 그림으로도 많은 이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다.
책 속에서
나는 삶의 여러 요소 중에 즐거움을 가장 추구하며 살고 있다. (중략) 즐거운 삶이 내가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인 듯하다. 즐거운 삶의 초상이란 게 매일 웃음이 나고 춤이 절로 나오는 그런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찡그리고 있는 표정과 더 가깝달까. 일테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표정 같은 거다. 어떤 생각을 하고 그것을 글로 적으며 또다시 생각하고, 생각이 막히면 친구랑 대화를 나누며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쓴다. 이 글의 제목을 생각하고 삽화는 어떻게 그릴까 고민한다. 그렇게 온전히 한 페이지를 만들고 난 기분은 ‘즐겁다’.
_38쪽, <살고 싶습니다> 중에서
하루는 카메라를 바닥에 놓고, 주방에서 계속 왔다갔다 일하는 나의 발을 하루종일 찍었다. 후에 그걸 빠르게 돌려보니 역시 춤의 리듬을 찾을 수 있었다. (중략) 2집 앨범 작업을 하면서 일을 하며 만나고 헤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곡을 쓰게 됐고, 일을 하며 능숙해지고 멋있어지고 하지만 결국 멋있는 직업인이 되어 늙어 죽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다 갑자기 그 영상을 찍었던 게 떠올랐다. 일을 하면서 발견한 춤. 좁은 주방에서 열두 시간 췄던 춤. 문득 나의 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춤도 보고 싶었다. 그 이유로 최근 한두 달, 매주 카메라를 들고 주변 사람들이 일하는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그들이 일하는 모습에서 춤을 찾아내기 위해.
_108쪽, <우리의 일은 춤이 된다> 중에서
우리는 지나치게 가끔 연락을 했고 그동안 나는 그애를 생각하며 노래를 하나 만들었다. 그 노래는 저절로 만들어졌다. 어느 날 아침, 반쯤 깬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그애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 그대로 하나의 노래 같았다. 그애의 이름은 이전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외국어였고 나는 뜻도 모르는 그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며 그 이름이 노래 같다고 생각했다.
_156쪽, <니가 뭔데> 중에서
나는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해 여러 감정을 갖고 있다.
일을 하지 않을 땐 한없이 멍청이가 된 것 같고, 일을 하고 있으면 배고픈 내 주둥이에 김밥 한 줄을 처넣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있는 기분이 든다. (중략) 일이 없으면 무섭고 화가 났고, 일이 있어도 무섭고 화가 났다. 나에게 일을 주는 사람도, 일을 주지 않는 사람도 모두 이상하게 생각됐다.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혼자 울거나, 울다가 노래를 부르거나 했다. 노래는 나의 분노와 공포를 잠재우기 위한 치료법이었다. 혼자 노래를 지어 부르는 것이 스스로에게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잠이 드는 수많은 밤에 노래를 지어 불렀다.
_190-191쪽, <울다 웃다 그리고 묻는다> 중에서
지금 왜 혼자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왜 엄마와 함께 누워 있지 않은지. 왜 사랑하는 친구는 멀리에 있고, 왜 그를 만나려고 일을 하고 돈을 벌고 돈을 모아야 하는지. 왜 일을 하면 영혼을 파는 기분이고 일을 하지 않을 땐 멍청이 같은 기분이 되는지. 왜 고양이의 수명은 인간보다 짧아서 그 귀여움을 길어야 십몇 년밖에 볼 수 없는지. 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이랑이라는 사람은 수많은 사라지는 것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사라지게 되는지. 왜 면으로 된 모든 음식은 맛있고, 공항에 가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지고, 운동을 하면 체력이 증진되고, 춤을 추면 땀이 나고, 만화책은 사서 모으고 싶고, 항상 선물을 받고 싶고, 다른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궁금한지.
질문은 끝이 없다.
질문은 계속 늘어만 간다.
_200쪽, <그리고 다시 묻는다> 중에서
길을 걷다가 갑자기 춤을 추고 싶어질 때가 있다. 특히 모두가 귀신처럼 같은 방향으로 끝없이 걸어가는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이나 넓은 횡단보도에서. 아무도 뛰지 않는 커다란 박물관에서. 언제부턴가 그것을 왜 하면 안 되는지도 모른 채 모두 뛰지도 않고 춤도 추지도 않게 된 것만 같다. 그 점이 매우 슬프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모든 교과과정에 춤을 추는 수업이 있다면 좋겠다. 발레같이 정형화된 무용이 아니더라도 몸을 움직이는 수업이 있다면 좋겠다.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의자에서 떨어지는 춤이 있다면 좋겠다. 책상에 올라가는 춤이 있다면 좋겠다.
_202쪽, <우리는 조용히 걸어서 돌아간다> 중에서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법 중에도 식습관을 기록하게 하는 것이 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기록을 통해 확인해가며 앞으로 더욱 살아나갈 힘을 갖게 하려는 목적인 것 같다. 물론 식습관을 기록함으로 자신을 ‘잘 먹이는’ 효과도 있고 말이다. 결국 삶은 자신을 잘 먹이는 일인 것일까?
나는 오늘 한끼를 먹었다.
피자를 먹었고, 콜라와 맥주를 마셨다.
약간의 변비 기운이 있어 조금 힘들게 두 번 똥을 누었다.
_280쪽, <먹고 내보내는 삶>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