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희 시인의 신작 시집 『도미는 도마 위에서』를 펴낸다. 시인의 열번째 시집이기도 한 이번 책은 그 제목에서부터 상징하는 바가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된다. 도미와 도마라는 단어의 찰나를 짚어 읽지 않더라도 이 둘을 발음하는 순간 훅 하고 치고 들어오는 어떤 주제적인 측면이 강하게 전달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이때의 주제는 짐작하셨겠지만 삶과 죽음이 큰 토대를 이루겠다. 도마 위에 놓인 도미 한 마리를 상상해봤을 때 그 즉시 구현되는 생과 사의 동시성. 도미는 도마 위에서 한 송이 꽃처럼 화려하게 피었다 지지 않는가. 그 꽃 피처럼 고통스러운 붉음이라고 해도 도미는 도마 위에서 늠름하게 살다 죽지 않는가. 도미와 도마라는 말의 유희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서로를 살게 하고 우리는 서로를 죽게 하는 운명의 소유자들임은 분명한 것 같다. 이러한 비극으로부터 우리들의 예술이, 우리들의 시라는 노래가 구슬프게 흘러나올 수 있었던 것일 테니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겠다. 그렇게 이 한 권의 시집은 비가이자 연가로 농축된 한 편의 장대한 서사시라 하겠다.
『도미는 도마 위에서』에는 총 87편의 시가 담겨 있다. 크게 4부로 이루어진 이번 시집 속 각 부의 제목부터 살피자면 그 해석에 있어 보다 손쉬운 이해를 도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1부는 ´빛이 뜨거우니 아프겠구나´라는 제목 하에 23편의 시가 담겨 있는데, 시편 전부에서 일상이라는 칠흑 같은 바다를 탐조등 같은 눈으로 매일같이 비추고 있는 시인의 부지런함을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가 아는 ´꽃´이고 우리가 아는 ´사랑´이고 우리가 아는 ´달력´이고 우리가 아는 ´밤´이고 우리가 아는 ´하필´인데 더는 까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 당연한 정의를 속속들이 까고 있는 시인의 재미 들린 바지런함. 그리하여 "무서운 밤이 흰 떡국처럼 참 따뜻하다"는 시인의 말을 오래 붙들게도 되는 바, "죽음의 문제는 죽음 혼자 풀 수 없고 삶의 문제도 삶 혼자서 풀 수가 없듯이 아무도 아무것도 혼자 어둠을 밝힐 수는 없다"는 시인의 말을 희망처럼 새기게도 되는 바.
2부는 ´애도의 시계에 시간은 없다´라는 제목 하에 20편의 시를 담아냈다. 그렇다. 애도에 유통기한이 있겠는가. 「세월호에서 산다는 것」이라는 제목의 시도 2부의 세번째 자리에 들어차 있거니와 우리에게 주어진 "애도의 시계는 시계 방향으로 돌지 않는다". "시계 방향으로 돌다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다가 자기 맘대로 돌아간다". 결국 "애도의 시계에 시간은" 없는 것이다. 애도는 어떤 방법으로도 잴 수 없고 가늠할 수 없는 ´막막한 시간´이란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평생 ´세월호´라는 배 위에 함께 올라탄 공동체일 것이다. "다치면서 깊어지는" 마음, 그 으리으리한 슬픔을 "저녁 광장에 조명을 켠 광화문처럼" 평생 눈에 넣는 사이인 것이다.
3부는 ´당신도 나도 아무도 아니고´라는 제목 하에 22편의 시를 담아냈다. 굳이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자면 아마도 ´인생´일 것이다. "에이, 인생, 다 그런 거지 뭐," 하는 장면들을 우리 앞에 좌판처럼 깔아주고 한번 봐, 하는 시편들로 그득하다. 생(生)은 이런 것이고 사(死)는 이런 것이다, 구구절절 말하는 법이 없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우리 스스로 보게 하는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게 한다. 귀로 들으라는 것이 아니라 일단 몸으로 들으라는 얘기일 거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고독하면서도 찬란하다고 한다"는데 그러거나 그럼에도 일단 몸을 쓰라는 얘기일 거다. "무량무량 하지(夏至) 감자가 익어가고 있다 오늘도 밭에 나가봐야 한다", 그렇게 나가보면 일단 좀 알아먹지 않겠냐는 얘기일 거다.
4부는 ´그때 손은 기도까지를 놓아준다´라는 제목 하에 22편의 시를 담아냈다. ´기도´하는 두 손 모음으로 시인이 세상을 향할 수 있는 데는 ´사랑´이라는 힘의 완력이 컸을 터, 시인은 ´이미´와 ´아직´ 사이라는 길 아닌 길 위에서 헤매는 우리들의 그 허둥댐을 "누구에게나 시간은 그렇다오"라며 위로할 줄 안다. ´이미´와 ´아직´이라는 시간 사이를 사는 우리들은 그 사이에 엎질러진 물 같은 존재들이 아닌가 하여 "누구나 물은 엎지를 수 있다"며 "태양의 반대편에서 피어나는 무지개의 기지개를 들고 일어나자"고 말한다. 무지개의 기지개라. "검은 비 끝나면 무지개가 오겠지. 비도 지치면 밤도 그치겠지. 그 까만 밤 흰 떡국 같은 따뜻함을 후후 불어 떠먹고 난 우리는 날개의 물기를 퍼득퍼득 털어내고 있는 아침 새떼들의 몸서리를 보게도 되겠지.
『도미는 도마 위에서』를 통해 선보인 김승희 시인의 시편들은 소리 내어 읽을 때 더한 울림으로 허리가 꺾인다. 발산하는 시집이 아니라 수렴하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어른의 말이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관찰하는 데 더한 집중력을 발휘하는 시집이기 때문이다.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데뷔하여 올해로 등단 44년을 맞은 시인이 열 권의 시집을 펴내기까지의 지난한 시간을 감히 추측해본다. 무엇보다 시인은 세상의 아픈 곳곳을 지나치지 않았다. 제가 가진 말법과 글법으로 이를 다 아울렀다. 직접적인 용어들로 역사의 현장을 고통의 현실을 지시하고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미학적인 스타일로 세상과의 오랜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이 한 권의 시집 속에 웅크려 있는 우리들 세상을 본다. 이 한 권의 시집을 ´꽃들의 제사´라 다른 용어로 상징화했던 시인의 마음을 좇아본다.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슬펐을까. 그러나 이 온갖 감정을 제 속으로 삼킨 시인의 몸은 부드럽고도 단단한 흙만 같다. 이 시집을 읽는 동안 우리는 아마 흙 위를 걷고 있는 기분일 거다. 눈으로 읽고 발로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