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시인이 탐구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인간세계와 문학세계의 전모를 더듬어보는 시간
40년 차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과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팬층이 두텁게 자리한 작가다. 그래서 그의 신작 소식은 늘 화제에 오르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고 책을 다 읽은 충족감이 사라지기도 전에 독자들은 다음 책을 기다린다. 시인이자 장서가로 유명한 장석주 시인 또한 다르지 않다. 그는 하루키의 새 소설이 나올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그 책을 사고 밤새워 읽는다. 시인은 그동안 하루키의 등단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1979)에서부터 2017년 출간된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그의 소설을 다 읽었고 그 외에도 에세이, 인터뷰, 대담, 연구서 들을 두루 찾아 읽으며 꾸준히 그에 대한 글을 써왔다.
시인에 따르면 하루키의 소설에는 “한껏 고양된 이념의 시대가 종언을 고한 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속화된 자본주의 세계로 떠밀려온 사람들, 그중에서도 집단이나 국가의 폭력과 평범한 악에 저항하면서 자기의 존엄성을 지켜내려는 연약한 개인의 저항에 대한 서사” 즉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고, 인간의 존엄성과 숭고함을 기리는 이야기이며, 생이 품은 우연과 불가사의한 이야기”(15쪽)가 담겨 있다. 이처럼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한 인생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지만, 그는 소설가로서 동시대인들의 정서를 들여다보고, 직접적인 희망을 말하지 않더라도 힘껏 인생을 건너갈 용기를 준다. 이 책 『외롭지만 힘껏 인생을 건너자, 하루키 월드』는 장석주 시인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탐독하고 탐구해온 작업의 결과이기도 하다.
한 작가의 책을 좋아하면, 그 작가의 전 작품을 찾아 읽는 것. 그것을 바로 ‘전작주의 독서법’이라고 한다. 이것은 작가의 작품세계는 물론 세상을 향한 시선의 변화도 함께 엿볼 수 있다, 또한 독자의 머릿속에서 형성된 작가의 작품세계가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이해도에 기여하며 새로운 발견 또한 가능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작주의 독서법으로 책을 읽는 독자들이 많은 작가 중 하나일 것이다. 장석주 시인 또한 그의 책을 마치 맛있는 음식을 탐식하듯이 읽어왔다.
『외롭지만 힘껏 인생을 건너자, 하루키 월드』는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하루키 월드의 시작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세계 전반을 다룬다. 시인은 이에 앞서 잘 알려진 일화를 소개한다. 하루키가 1978년 4월 진구 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보다가 갑자기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재즈 카페 <피터 캣>의 영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와 부엌 식탁에서 첫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써내려간 이야기다. 이 일화를 통해 일종의 계시가 내려온 찰나 즉 ‘에피파니’의 순간으로 표현하며, 재즈 카페의 영업자가 소설가로 전업한 계기를 설명한다. 그리고 문학이 거대담론의 시대에서 미시담론의 시대로, 역사의 영역에서 개인 자아의 영역으로 선회하는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의 시대상과 맞물려 1979년 등장한 무라카미 하루키를 소개한다.
한 사람이 소설가가 되는 순간에 대하여, 그 시기에 그가 속해 있던 변화하는 시대상에 대하여, 그 시대로 인해 사람들이 겪은 상실과 고독과 허무에 대하여, 그리고 그의 작품을 수용하는 독자와 비평가들의 입장에 대하여 소개하는 것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문학 세계를 소개하는 1부가 끝난다. 이어서 2부 두 개의 달이 뜬 세계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과 함께, ‘비’와 ‘우물’ 그리고 ‘어둠’의 이미지, ‘중국’ ‘두 개의 달’ 등 중요한 상징물과 자주 다뤄지는 이미지에 대해 설명한다. 이러한 상징에 대한 이해는 책에 소개된 작품들뿐만 아니라 이후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을 읽을 때의 이해도 돕는다. 또한 『태엽 감는 새』에서 『1Q84』 『기사단장 죽이기』로 이어지는 흐름은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의 변화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되는 계기가 된다.
마지막 3부 고양이와 재즈 그리고 마라톤에서는 더 나아가,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다룬다. 그의 에세이 작품들에 대한 소개와 그의 취향을 비롯해 하루키를 좀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근대의 한국과 일본의 해석을 통해 각 국가의 작가들이 상호 영향 관계에 있다는 해석이 따른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연보를 정리하여 작가 하루키의 족적을 연대별로 정리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친절한 누군가가 나에게
“오늘 날씨도 좋은데 동물원이라도 가볼까요?”라고 말한다면,
동물원도 좋지만 나는
“오늘 날씨도 좋은데 하루키 소설이라도 읽어볼까요?”라고 말할 것이다
시인은 이렇듯,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다방면의 분석을 통해 그의 작품을 좀더 깊이 읽을 수 있도록 독자를 안내한다. 다양한 해석과 감상에도 이 책은 탐구서를 넘어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자고 권하는 책이다. 장석주 시인은 독자들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자고 권하고, 깊이 읽자고 권하고, 나중에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는 손짓을 보낸다. 이야기로서도 충분히 아름다운 세계, 그러나 한 걸음을 더 걸어들어가면 새로운 지평이 펼쳐지는 세계. 바로 ‘하루키 월드’이다.
우리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읽으며 느끼는 이상한 멜랑콜리, 그리고 쓸쓸하지만 다정한 매혹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작가 하루키의 인간과 문학세계를 좀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 장석주 시인과 당신이 함께, 한 작가의 다음 책을 기다리는 팬으로서 같이 만나는 시간, ‘하루키 월드’로 당신을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