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닌 곳으로.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든."
환상과 실재, 소설과 현실을 잇고 엮는 독보적인 감각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맨』 『그리고 남겨진 것들』, 장편소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를 통해 지극히 평범하고도 소외된 인간을 정교하게 축조된 환상의 세계로 데려와 이야기를 펼쳐 보인 작가 염승숙. 지난해에는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평론(「없는 미래와 굴착기의 속도-박솔뫼 『도시의 시간』론」)으로도 등단하면서 텍스트와 세계를 읽어내는 촘촘한 겹눈을 가졌음을 인정받은 바 있다. “늘 어제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고, 쓰면서 어제보다 나아진 인간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밝힌 수상 소감은, 소설을 쓰는 일과 문학작품을 통해 다시 한번 세계를 조망하는 일이 전혀 다르지 않음을, 진지한 작가이자 성실한 연구자의 시선을 가진 염승숙의 읽고 쓰는 삶의 순환을 엿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의 두번째 장편소설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노동하지 않는 어른은 말 그대로 ‘햄ham’이 되어버리는 기발한 착상으로 시작하여 무력감이 도저한 이 시대의 청춘들을 핍진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장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충실함과 풍성함, ‘소설’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서사적 재미와 특유의 리듬으로 충만한 이 작품은, 작가가 가진 그 고유한 겹눈으로 읽어내고 써낸 세계를 만나는 일은, 이제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고통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몰라야만’ 하는 세대
노동하지 않으면 햄이 되어버리는 질문도 해답도 없는 세계
살아남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인간,
억지로 숨을 참으면서 참혹을 견디는 자의 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_정이현(소설가)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노동하지 않는 어른은 모두 햄이 되어버리는 세계의 이야기다. 마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속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갑충으로 변해버리듯, 불그스름한 가공식품 햄이 되어버리는 것. 반대로 다시 일하기 시작하면 햄은 사람으로 변한다. 뉴스에서는 매일 ‘오늘의 안개’ ‘오늘의 사고’ ‘오늘의 햄’이 보도되고, 신원 미상의 햄들에 관한 정보가 느릿느릿 자막으로 지나가는 이 안개로 가득하고 장벽으로 가로막힌 공간 속, 주인공 ‘추’는 제빙 공장, 이삿짐센터,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전전하며 일하던 어느 날 ‘홀맨’을 구한다며 나타난 선배 ‘약’과 조우한다. 숙식 제공에 채용 증명서를 써준다는 약의 말에 추는 “여기가 아닌 곳으로. 여기만 아니라면 어디든” 하는 마음이 되어 홀맨의 업무가 무엇인지 따져 묻지도 않은 채 그가 이끄는 곳으로 몸을 옮긴다.
햄이 되지 않는 것.
그것만이 다행스러운 현재다.
이 세계에 대항하는 단 하나의 방어태세로서 나는 노동한다. (131쪽)
추는 베어지고, 뭉개지고, 닳아버린 햄이 나뒹구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는 허허벌판의 게임장 앞에 당도해 그저 대기하라는 명령만을 받는다. 새벽 두시, 마감 시간이 되어 “시간 다 돼갑니다” 라고 손나팔을 하고 외치던 다음 순간, 누군가가 거칠게 달려들어 추의 뺨을 갈기며 욕하기 시작한다. “이 개새끼, 이 햄 같은 새끼, 이 햄보다 못한 찢어 죽일 개새끼가 재수없게!” 화난 손님을 말리지 않는 것이 이곳의 룰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추는 자신의 일이 ‘인간 샌드백’이 되어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는 하염없이 버티어 선 채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때리면 맞고, 맞으면 신음했다. 통증과 지루함은 동시에 왔다. 아픈데 지루하고, 지루한데 아팠다. 몸이 괴로운 것도 끝내는 따분해졌고, 그 따분함에도 싫증을 느끼는 때가 잦았다. (218쪽)
하지만 추는 하루하루의 삶을, 상처를 서둘러 봉합해버리며 그 일을 계속해나간다. 그러니까 추의 지속, 성실은 학습된 무기력일까? 아니면 가감이 없이,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수동적 능동의 다른 모습일까? “누구나 ‘무엇’이 되어야” 하기에 “되지 않으면 햄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의 세계 속에, 비정하고 비참한 하루하루 속에 추는 그렇게, 그토록 ‘있는다.’
폐허에도 아름다움이 있다면
절망에도 리듬감이 있다면
비참에도 사랑이 있다면
“청춘인데 청춘이 아니고 인간이되 인간이 아닌” “가난한 무력이 이 도저한 세계에서 꿈꿀 수 없음에까지 이르”게 된 디스토피아. 짙은 안개에 둘러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이 낯선 공간이, 질문도 해답도 없는 세계에 놓인 인물들이 보여주는 선택과 행동과 마음이, 지금 바로 이곳의 현실이기도 하다는 것을 독자는 소설을 읽는 한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짙어졌다 옅어지기를 반복하는 안개 속 끊어질 듯 이어지는 대화, 조금씩 뒤틀리고 허물어지는 단어, 돌연 피어오르는 사랑의 기억. 끝끝내 이어지고야 마는 일상 속의 크고 작은 비참 속에 놓인 그들을 조금은 뜨거워진 눈으로, 조금은 시린 마음을 부여잡으며 우리 역시 끝끝내 목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초승달’만큼만 보여요.
햄이 말했다.
사람도, 세상도, 모두 초승달 정도로만 보인다니까요. 가늘고, 얄브스름하게…… 나도 모르게 고개가 갸우뚱 비뚤게 틀어져버려요. 그런다고 더 잘 보이지도 않지만. (207쪽)
2011년, 월가 점령 시위에 울려퍼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던 그 유명한 바틀비의 전언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지금 2018년, 더욱 나빠지기만 할 뿐인 지금의 시대에는 더 나아간 새로운 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혹은 그 거리의 함성에 대한 화답이 바로 이것이지 않을까, 하고도 생각해본다. 그러니까 바로 “여기에 없도록 하자”는 말. 단호한 절망의 말로도 간곡한 청유의 말로도 보이는 이 문장이, 소설가 염승숙이 지금껏 보여주었던 환상과 실재의 직조의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 다정과 비정이 겹쳐 보이는 한 문장이 아닐까, 곰곰 곱씹어본다. 그 질문을 품은 채 이제 우리가 안개 속으로 걸어가 흠뻑 젖어들 차례다.
■ 작가의 말
인간은 나약하지만 에너지를 발산하며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필연적으로 불행하다. 그러니 고독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있고 서로를 위로할 줄 아는 것이겠지. ‘여기에 없도록 하자’라고 나는 썼지만 부디 여기에 있어주었으면 하는 미약한 바람으로 이 이야기를 당신에게 보낸다. 나와 같지 않은 동시에 전혀 다르지 않을 당신들에게. 부끄럽지만 이런 방식으로밖에는 나는 사랑을 말할 수 없다.
■ 추천사
해변에 앉아 모래를 파내려가던 날이 있었다. 모래땅은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바닥은 푹푹 허물어지고 구멍은 점점 깊어지기만 했다. 저 밑에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기는 할까. 그 막막하고 캄캄하던 공허의 공포를 이 소설에서 다시 느낀다.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세계에 산다는 말은 텅 빈 세계에 산다는 것과는 다른 뜻이다. 그것은 차라리 ‘없음’으로 꽉 찬 세계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그 세계에 나만 외따로 남겨졌다는 뜻이다. 그렇게라도 살아남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 쓰는 인간, 억지로 숨을 참으면서 참혹을 견디는 자의 생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어떤 고통의 순간에도 인간은 외따로 있는 또다른 인간을 발견하고 작은 눈빛을 건네는 존재임을 작가는 믿는다. 그러니 이토록 절실한 청유형의 제목은 ‘나’를 닮은 ‘너’에게 건네는 부탁이자 다짐, ‘같이’하겠다는 연대의 표현일 것이다. 여기 아닌 다른 곳을 상상하기 위해, 여기를 벗어나기 위해 이제 우리는 소리쳐야만 한다. 여기에 없도록 하자, 우리, 꼭 그렇게 하도록 하자. _정이현(소설가)
■ 목차
여기에 없도록 하자
작가의 말
■ 책 속에서
아무래도 좋지 않나, 이래도 저래도 나쁘지 않은 건 나쁘지 않은 것. 모두가 햄이 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나, 햄이 되어서도 생은 지속되어 햄의 시간을 견뎌야만 하는 일이 오로지 나쁘다면 나쁜 것. 그리고 그런 나쁜 것 속에서 가장 나쁜 건 햄이 되지 않기 위해서만 일하고, 결국 햄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더 나을 것도 없는 나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었다. _30쪽
비겁했는지도 모른다고 이제 와 생각한다. 서로가 입을 다물어버림으로써, 해야 할 말을 하지 않고 감춤으로써, 우리는 비겁해졌다. 돌아서고 외면하며 멀어졌다. 그것을 선택했다. 그 무엇도 시작하지 않기 위해서. 서로에게 가닿을 그 무엇도 진행시키지 않기 위해서.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필연코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닮아 있는,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서로의 존재 그 자체가, 그 맞물림이. 하지만 되지 않는 것에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뜻도 있다. 도무지 어찌해도 어쩔 수 없게 되고야 마는 것. 제아무리 애태우고 애를 써도 그렇게 돼버리고야 마는 것. 그러나 이마저도 비겁한 포즈인 것만은 애처롭도록 분명한 것이다. _103~104쪽
나아진다.
……나아진다?
나아진다니 무엇이?
나아진다는 것에는 좋아진다는 의미도 포함이다.
그러나 좋아진다니 무엇이?
좋아진다는 것에는 진전한다는 의미도 포함이다.
그러나 진전한다니 무엇이?
진전한다는 것에는 발전한다는 의미도 포함이다.
그러나 발전한다니 무엇이?
발전한다는 것에는 나아간다는 의미도 포함이다.
그러나 나아간다니……
어디로? _119~120쪽
이 세계에 결말이랄 게 있다면 말입니다. 결말이 있는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야말로 비현실적입니다. 이 시대에 소망은 소멸해버린 어떤 것이니까. 현실에서는 결말이라는 게 딱히 없지 않습니까? 인생의 결말은 죽음이고, 별다를 게 있다고 기대하는 건 무모한 짓입니다. 그러니 왜 햄이 아니어야 하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죽지 않는다면 결국 살아나가는 것뿐. 햄으로 생을 이어나가는 것뿐. 그 구질구질함뿐. 안 그렇습니까? _140쪽
일을 한다는 건 그렇습니다. 어디에서 무엇이 되는 거죠. 어디에서 무엇이 되지 않고 일을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나로서 무언가 하는 것은 일이 아니죠. 그것은 생활이지 노동의 영역은 아닙니다. 노동은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어 움직이고, 그러한 수고로써 대가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온전히 나이지 않고, 나일 수 없고, 나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러니 일을 한다는 건 고달프다는 것입니다. _198~199쪽
이해해야 하는 일은 아니다. 이해되어야 하는 일도 아니다. 햄이 되거나 되지 않는 것도 이해 가능한 범위에 있는 건 아니다. 이해와 몰이해 사이에는 아무런 생의 법칙도 없는 것이다. 이해하든 못하든 누군가는 햄이 되고 누군가는 햄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일을 하고 누군가는 일을 하지 못한다. 누군가는 부리고 누군가는 노동한다. 누군가는 맞고 누군가는 맞지 않는다. 경악스러운 것은 단지 그뿐이다. _296쪽
그냥, 우리는 그냥 여기에 있는 거야.
나는 주문을 되뇌듯 중얼거렸다.
없을 수는 없으니까.
말하는데 어쩐지 서글퍼졌다. 케이는 잠자코 듣더니 내 말을 받아 반복해 읊조렸다.
우리는 그냥 여기에 있는 거야…… _298~2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