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앞에서 우리는 언제나 아마추어가 된다.”
우리가 잠시나마 우리였다는 것은,
이미 기적 같은 일 아닐까
마음의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목소리,
29년째 일기 쓰듯 가사를 써온 사람,
싱어송라이터 윤종신의 첫 책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윤종신. 그는 1990년 데뷔 이후 하나의 영역, 한 장르에만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뛰어넘어왔다. 매달 새 싱글을 발표하는 과감한 프로젝트 [월간 윤종신]도 2018년 8월로 100호를 돌파했다.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프로젝트인 동시에 미술, 문학, 영화, 사진 등 다양한 분야와의 콜라보레이션을 시도함으로써 창작자 윤종신의 예술관과 지향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30년 가까이 대중과 가까이서 호흡하며 가장 현재적인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해온 그가, 보다 직접적인 방식으로 말을 거는 책을 선보인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꼭 내 마음 같아’ 하고 위안 받았을 사람들에게 반가운 소식일 터이다. 그간 출간 제의를 숱하게 받았으나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자 고사해왔던 만큼 시간과 공을 들인 책이다. 가수, 작곡가, 작사가, 프로듀서에서부터 예능인, 심사위원까지 종횡무진 오가며 다양한 수식어를 쌓아가고 있는 그이기에 자기계발서, 성공 스토리, 작곡/작사법 등 다양한 방식의 책을 상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 책은 그가 가장 그답게 말할 수 있는 내용으로 채우고자 했다. ‘윤종신’이라는 브랜드를 탄탄히 받쳐주는 밑바탕, 그것은 바로 직접 쓴 가사이다. 가사를 토대로 풀어놓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윤종신의 근본에는 역시 음악이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는 작사가란 바로 그런 걸 대신 표현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마디로 말해버리면 그만인 감정을 최선을 다해 복원하고 기록하고 묘사하는 거죠. 누군가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순간을, 누군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을 감정을, 누군가는 그런가보다 하고 금세 잊어버렸을 느낌을 대신 발견하고 간직하고 재현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들었을 때, 그 가사를 읽었을 때 ‘맞아, 그렇지. 그래, 그런 거지’ 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요.”
(87-88쪽, ‘마침 흘러나온 그때 그 노래’에서)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는 윤종신이 작사한 400여 곡 가운데 특별히 손에 꼽는 40곡의 가사에 글을 덧붙인 책이다. ‘산문+가사’의 형식을 통해 윤종신 특유의 섬세한 가사를 둘러싼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또한 29년째 일기 쓰듯 가사를 써온 작사가의 인상적인 작사노트로써 하나의 가사가 탄생하기까지의 작업방식을 따라가볼 수 있다. 특정 단어, 장면, 계절감에서 시작해 상황이 설정되고 감정선이 자연스럽게 풍성해지는 과정은 모든 창작자들이 귀를 기울일 만하다. 또한 그의 음악을 사랑해온 사람들로 하여금 익숙한 노래를 새로이 듣게 만든다.
타인의 이야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가사
책은 총 네 개의 부로 나뉘어 있다. 1부 ‘우리 편하게 내일 이별해’에서는 사랑과 이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배웅> <내일 할 일> <아마추어> 등의 가사를 토대로 담담히 풀어가는 그의 글은 마침내 “예측할 수 없는 기상이변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는 분명히 괜찮았다가도 괜찮지 않아집니다. 사랑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요”라는 대목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저마다의 스토리가 특별한 우리 각자의 사랑과 이별이 어떻게 하나의 노래 가사에서 보편성과 개별성을 가질 수 있는지 짐작해볼 수 있다.
어쩌면 사랑은 지구의 자전과 공전처럼 우리가 모르는 어떤 자연법칙에 의해 작동하는 게 아닐까요? 아주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우리는 사랑이 움직이는 원리나 법칙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아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우리는 우리를 사랑의 열병으로 이끄는 어떤 감정의 주기를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게 아니라면 사랑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자꾸만 사랑에 빠지는 우리를, 언제까지고 사랑을 반복할 것만 같은 우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61쪽, ‘문득 기상이변처럼 니가 내리면’에서)
2부 ‘수고했어 사랑 고생했지 나의 사랑’에서는 가사 쓰기와 노래 만들기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거리에서> <너에게 간다> <모처럼> 등의 가사를 토대로 “구체적이면서도 구체적이지 않은 가사”의 특별함을 보여준다. “좋은 가사란 노래를 듣는 이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충분히 구체적이되, 사람마다 각기 다른 그림을 상상할 수 있도록 적당히 여백이 있어야 한다”는 대목은, 많은 사람이 윤종신의 노래 가사에서 색다른 감흥을 느끼는 이유로 이해된다.
<거리에서>는 제가 쓴 가사 중에서도 특히 구체적이면서도 구체적이지 않은 가사입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사연이 담긴 길을 하나쯤 가지고 있는 법이고, <거리에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자연스레 그 길을 떠올리게 하니까요. 누군가는 신촌의 골목길을, 누군가는 압구정동의 대로변을, 누군가는 을지로의 지하도를 떠올릴 거예요. 공간만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 길에 얽힌 시간과 감정과 사람도 함께 떠올리겠죠. 저는 작사가란 사람들에게 ‘상상 휴게실’을 만들어주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상에 필요한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가이드랄까요. 사람들에게 ‘노래’라는 상상의 공간을 제공해주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가늠해보고 경험해보고 즐겨보도록 돕는 거죠.
(70쪽, ‘널 그리는 널 부르는 내 하루는’에서)
3부 ‘너에게 듣고 싶은 너의 생각’에서는 윤종신의 가족과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어느덧 오십대에 접어든 중견 뮤지션이자 세 아이의 아빠로서 윤종신이 요즘 고민하는 건 무엇인지, 새로이 발견한 인생의 또다른 면들은 또 무엇인지 풀어나간다. ‘우리’보다는 ‘나’가 우선이었던 이삼십대를 지나 ‘살아갈 사람’을 위해 ‘살아온 사람’으로서 배려하고 나누고 싶다는 그의 솔직한 심정은 젊은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그의 작업과 맥이 통한다. <나의 이십대> <Slow Starter> <서른 너머… 집으로 가는 길> 등의 노래 가사에 숨겨진 비하인드 스토리가 담겨 있다.
모든 삼십대에게는 밑이 뻥 뚫린 가방이 주어지는 것 같아요. 우리는 나만의 가방이 생겼단 사실에 신이 나서 뭐든 열심히 담아보려 하지만, 가방은 좀처럼 묵직해지질 않죠. (…) 하지만 이 가방에 담긴 건 먼 훗날 보일 거예요. (…) 분명히 텅 비어 있던 가방인데, 아무것도 없었던 가방인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뭔가를 담으려 했던 그 모든 시도와 노력이 정말 하나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쌓여 있더라고요.
혹시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가운데 삼십대가 있다면, 너무 불안해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자꾸 돌아보지 않아도 된다고, 자꾸 확인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결코 쉽진 않겠지만 아니 많이 어렵겠지만, 자신을 믿고 계속 꾸준히 걸어갔으면 좋겠어요. 발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주저 말고 가봤으면 좋겠어요. 가방 안에 내 시간과 경험을 차곡차곡 쌓는다는 생각으로요.
(166-167쪽, ‘정해진 걸까 내 일 그리고 내 길’에서)
4부 ‘나란히 가로가 어울린 우릴’에는 윤종신의 예술관과 가치관에 대한 이야기를 담겨 있다. 2010년 시작한 [월간 윤종신]과 2016년 시작한 미스틱엔터테인먼트의 [LISTEN]이 어떤 목적과 기대로 생긴 것인지, 창작자로서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지, 다양한 장르를 끊임없이 흡수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후배 아티스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30년 가까이 아티스트로 살아오며 그가 가슴속에 품게 된 예술에 대한 생각들을 담았다.
각각의 노래는 ‘세로’가 아닌 ‘가로’로 놓여 있어야 합니다. 수직으로 줄 세워져 있는 게 아니라 수평으로 나열되어 있어야 합니다. 자꾸 남을 밟고 위로 올라가려다보니까, 조금 더 높이 올라가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다보니까, 우리는 자꾸 자기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만들게 되는 거예요.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남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겁니다. 원래 노래는 내 이야기를 하려고 만드는 건데 말이죠.
(217쪽, ‘나란히 가로가 어울린 우릴’에서)
꼭지별 제목은 가사의 핵심 문장으로, 제목만 보고도 어떤 노래인지 짐작하는 독자들이 있으리라. 1, 2부와 3, 4부 사이에 실린 그의 작업실 두 곳의 사진을 통해 아티스트 윤종신이 낮과 밤 각각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곡 작업을 하는지도 엿볼 수 있겠다. 넓고도 멀리 내다보며, 한결같이 대중의 감성에 반응하고, 지치지 않는 창작열로 그에 응답해온 아티스트 윤종신. 그의 다음 행보가 벌써부터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