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이 고통으로 측정되지 않을 때
내 꿈도 그와 같다”
2013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채길우 시인의 시집 『매듭법』을 펴낸다. 문학동네시인선의 137번째 시집이자 시인이 등단 7년 만에 펴내는 첫 책으로 2부에 걸쳐 총 47편의 시가 담겨 있다.
시멘트를 가장한 회백색에 이보다 더 탁할 수 있을까 싶게 분명히 말할 수 없음으로, 그러나 혹여 말하지 못하게 함이 아닌지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보게 함으로, 단단히 벽을 치려는 듯, 그러나 외려 벽 너머의 부드러운 흙을 감추려 함이 아닌지 한 발 다가서게 함으로, 뭐랄까 존재와 존재 사이의 밀고 당기는 힘 같은 것이 그래 맞아, 있는데 있다고 말하는 순간 가벼워지고 무력해지고 거짓 같아지고 이 모든 게 허상 아닐까 하여 마침표가 아닌 쉼표로, 세상 그 누구보다 저 자신을 의심하는 데서부터 그래서 저 자신부터 말하게 하고 저 자신의 말을 들어보는 데서 시작하고 끝이 나는 시집.
철저히 ‘첫’이라 할 때의 다소 거칠 수 있으나 좀처럼 숨길 수가 없는, 결코 숨겨지지가 않는, 그러니까 애초의 순정한 시심의 가닥 가닥을 첫 시에서부터 끝 시까지 아니 발견할 수가 없는 시집. 두 페이지짜리 ‘시인의 말’은 있으나 시에 보태는 해설 한마디 안 보태고 끝내버린 시집. ‘시집’인데 자꾸만 ‘고집’이라 발음하게 되는 시집. 그렇게 고집이 뭐였더라, 특히나 시에 있어 부림의 고집은 뭐라 말할 수 있더라, 검색하게 만든 시집. “1.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 2. 마음속에 남아 있는 최초의 심상이 재생되는 일.” 가만, 이렇게나 이 시집을 고집이라 부르게 되는 이유가 1번보다 2번에 가까워서였구나, 안도하게 되고 즐거워지는 시집. 그렇구나, 이 ‘최초’, 이 ‘처음’을 두고두고 못 버림이 이 시집 속에 가득하여 의리도 아닌 것이 정직도 아닌 것이 다짐도 아닌 것이 읽는 이로 하여금 자꾸 어떤 출발점으로, 안 보이는데 자꾸 어떤 0의 기울기 안으로 데려다놓은 거구나 알게 한 시집. ‘최초의 심상’이라 할 때 그 ‘마음’이 너무 밝아 눈을 감게 하는 시집, 그 ‘마음’이 너무 어두워 눈을 뜨게 하는 시집.
“진심이 다 진짜이거나 진실만은 아니라는 것은 얼마나 커다란 위안인가” 하더니 “세상이란 현실과는 상관없이 허구와는 다르게 한없이 얼마나 이따금 기껍고도 사랑스러운가” 하는 시집. 잡을 수 있으나 놓아버리는 시집. 가둘 수 있으나 흘러가게 둬버리는 시집. 안녕? 첫인사를 하는가 하였는데 안녕! 끝인사를 하는 시집. 그의 시「매미 체리」처럼 ‘매미’와 ‘체리’가 한데 놓여 이렇게도 기막히게 발현되는 시집. “그가 입술 없이 우는 빈 배를 접고/ 내가 다물지 못하는 침묵을 높여/ 주린 고백들이 식어가는 계절에도/ 잘 살피지 않는다면 알아채지 못할/ 발아래와 피부 밑으로/ 무의미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아/ 처음 보게 되는/ 그림자 이외의 이름을 가진 것들이/ 많아/ 기쁘다”
“죽은 새를 손에 쥔 채 울고 있는 아이”라 할 때 “손바닥을 버리지도 날리지도 못하”는 그런 상황 속 한가운데서 자꾸 서성이게 하는 시집. 불면을 일으키는 시집이 아니라 그 불면 자체라 할 수 있는 시집. “팔꿈치 살은 꼬집어도 아프지 않다/ 굳은살은 죽은 살이어서 그렇지/ 그래도 아주 죽은 건 아니고 땀구멍이 있어서/ 혀를 대보면 조금 짜겠지만/ 거기는 혀가 잘 닿지 않는 곳”(「불면」) 이렇게 제 시로 제 시집을 가리키는 시집. 대화의 풍성함보다 혼잣말의 자유로움을 기쁨으로 알게 하는 시집. 시 한 편의 절창보다 시 한 편 속 한 연 한 행의 간절함에 매달리게 되는 시집. 읽고 나면 백지보다 이면지를 주섬주섬 챙기게 하는 시집. 온통 무채색인 이 시집 속 이 무채색에 혹여 있는 것이 무얼까 편지를 써서라도 묻게 만드는 시집. 시인보다 독자를 더 움직이게 하는 시집. “내가 쓰는 것이/ 가면이 아니라면/ 내가 쓰지 않을 때의/ 얼굴은/ 어떤 표정일까”(「수원역」) 글쎄, 그렇게나 우리를 간지럽게 하고 우리의 얼굴을 긁게 하는 시집. 제목 속 ‘매듭’ 끝에 ‘묶기’가 아니라 ‘짓기’가 아니라 ‘법’이라 하였으니 저마다의 스타일로 이 시집을 두고 이 시집을 읽는 이의 마음을 두고 해석의 키를 헤아릴 수 없게 던져주는 시집. 이런 시집이 아닐까 하는 와중의 그런 채길우의 첫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