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주요 문학작품의 견고하고도 성실한 지침서, 김화영 교수의 첫 문학평론집 출간
지난 십여 년 동안 지칠 줄 모르는 소설 읽기로 비평의 공간을 넓혀온 김화영 교수의 첫 평론집 『소설의 꽃과 뿌리―나의 시대의 소설가들』이 출간되었다.
시인으로서, 문학평론가로서, 불문학자이자 탁월한 번역가로서 우리 문화계에서 중심적 역할을 맡아온 김화영 교수는 이번 평론집에서 독특한 감성과 사유, 빼어난 문체로 성실하고 예민한 관찰자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십여 년간 소설읽기의 자취를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 평론집은 김화영 교수가 보여주는 깊이 있고도 유려한 비평의 글들이 어디로부터 연유되었고 그것이 어떻게 축조되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마련한다.
이번 평론집에서 김화영 교수는 평론가로서의 직업의식에서가 아닌 ‘그저 좋아서’ 책을 읽었다는 말로 책읽기의 즐거움을 표현한다. 그렇게 촉발된 책읽기가 되풀이되면서 선별과 평가가 이루어지고, 작가와 작품 속으로 끝없이 탐색해나가 ‘내게 흥미로운’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명에 이르는 길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소설의 꽃과 뿌리』는 쏟아져나오는 문학작품의 홍수 속에서 좋은 책을 선별하고 그 독서의 즐거움이 정신적 두께를 제공해주길 갈망하는 여러 독자들에게 좋은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와 작품으로의 끝없는 유랑, 그 뿌리찾기의 창조적 작업이 이루어낸 아름다운 비평
『소설의 꽃과 뿌리―나의 시대의 소설가들』은 산문집 『바람을 담는 집』과 프로방스 대학 박사학위 논문 『문학 상상력의 연구―알베르 카뮈의 문학세계』에 이어 문학동네가 세번째로 선보이는 ‘김화영 문학선’이다. 이 책은 김화영 교수의 글들 가운데 그 정수만을 모아 출간하고 있는 선집 중 유일한 평론집일 뿐 아니라, 십 년여간의 지속적인 평론활동 중에서 한국 현대소설을 집중적으로 논한 첫번째 평론집이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제를 ‘나의 시대의 소설가들’로 내세운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번 평론집에서는 김화영 교수에게 오랜 독서의 뿌리가 되어주고 폭넓은 작품의 세계를 유랑하는 밑거름이 되어주었던 우리 시대 주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깊이 있고 면밀하게 탐색해가고 있다. 또한 한 작가의 여러 작품들에서 반복되는 이미지를 찾아내 그것을 형성하는 뿌리와 연결시키는 한편, 다시 그 뿌리와 전체를 얽어주는 틀을 형성해내는 창조적인 비평을 보여주고 있다.
‘내게 흥미로운’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명을 위해 김화영 교수가 주목하는 계기들은 다양하다. 작가의 새로운 작품, 삶과 시대 속에서 솟아오른 새로운 문제, 어떤 정서의 매듭, 이미지나 어휘들의 무늬, 문장의 리듬이 환기하는 떨림과 여운,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작품, 이 작가 속에는 무언가 깊숙이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 숨어 있다는 끈질기게 남는 느낌…… 이런 것들이 그 작품을 쓴 작가의 ‘내면적 세계’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이렇게 한 작가가 문제로 떠오르면 김화영 교수는 그의 모든 글들과 책들을 모아놓고 그 세계 속을 유랑하면서 그 의식과 동화되려고 노력한다. 작품과의 오랜 친화가 그의 비평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때부터 독서 자체가 일종의 삶이 되고, 개개의 작품은 그 전체의 판도 속에서 비로소 그 의미와 문제를 드러낸다.
“소설가는 소설을 완성시켜놓는 순간에야 비로소 소설가가 되는 것이다”고 말하는 김화영 교수는 자기 자신의 상상과 글쓰기의 진실과 대결하는 고독한 작가에게 눈을 돌린다. 그런 작가만이 갖는 어떤 ‘세계’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관계의 망을 찾고, 작품의 외형적 아름다움에서 그 아름다움에 생명적 힘을 공급해주는 뿌리의 역선(力線)을 더듬어 복잡하고도 다양한 뿌리의 얽힘을 풀어간다. 김화영 교수의 독서는 끊임없는 다시 읽기이며, ‘다시 읽기’로 하여금 소설의 외형을 해체하여 재편성하는 것이 그의 비평이다. 이렇게 철저히 작가와 작품의 내면에 충실하여 전면적인 ‘다시 읽기’와 ‘자세히 읽기’로부터 한 작가의 의식이 구체적인 세계와 만나는 궤적까지를 총괄해낸 오랜 작업의 결과물이 이 한 권의 평론집으로 묶여 이제야 선보이게 된 것이다.
전체가 2부로 나누어진 『소설의 꽃과 뿌리』는 1부 작가론, 2부 작품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작가론에서는 오정희, 신경숙, 한승원, 김주영, 한수산, 송하춘, 서영은의 주요 작품들을 대상으로 하여 작가의 내면에 각각의 작품들을 위치시켜놓는다. 2부 작품론에서는 이제하의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이문열의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김주영의 『홍어』, 유재용의 「관계」, 김채원의 『형자와 그 옆사람』, 은희경의 『새의 선물』을 다루고 있다. 특정한 한 작품을 놓고 그 작품의 의미망과 작가의 작품세계와의 연결고리를 찾고, 역시 두 관계를 얽어주는 내면에 존재하는 뿌리의 구조를 밝혀내고 있다.
고요와 집중의 책읽기, 정교하고 미학적인 글쓰기가 조화롭게 결합된 비평문학의 정수
문학평론가 이남호 교수는 김화영 교수를 가리켜 “언어의 수도원에 은거하는 수도승” 같다고 하였다. 그만큼 그가 구사하는 언어는 정교하고 섬세하며 현실의 잡음과는 동떨어져 보인다.
책머리에서 밝힌 것처럼 비평의 역할이란 반복되는 이미지들을 서로 관계맺어서 하나의 전체 판도 속에 위치시키는 일이며 삶과 언어가 마주쳐서 형성한 수많은 감각적 요소들을 통일된 조망 속에 놓아보는 일이다. 김화영 교수는 이 책에서 한낱 ‘이야기’일 뿐인 듯하던 소설이 빛과 소리의 감각으로 되살아나 울리도록 만든 언어의 공명상자, 다시 말해서 소설이라는 악보를 연주해본 하나의 방식, 혹은 창조의 꿈을 일궈놓고 있다.
또한 고요와 집중의 책읽기, 정교하고 미학적인 글쓰기가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는 김화영 교수의 이번 평론집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다른 삶을 꿈꾸게 하며, 어떤 ‘그리움’까지도 일깨워주는 깊이가 있다. 현실의 온갖 크고 작은 논쟁들에도 치우침 없이 오로지 작가와 작품, 그 텍스트 안으로의 넓고 깊은 탐색에서만 우러날 수 있는 아련한 비평문학의 정수를, 그 창조적 꿈의 결실을 『소설의 꽃과 뿌리』에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